세계사를 뒤바꾼 엄청난 힘
茶(차)

엄격한 의미의 차는 차나무의 어린잎을 따서 증기로 찌거나 햇볕에 말려 더운물에 우려낸 음료에 국한한다.
차의 주요 물질인 카테킨은 항산화력이 비타민 E의 200배, 비타민 C의 100배에 달할 만큼 강력해 꾸준히 마시면 각종 성인병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글. 채희숙 <특산물 기행> 저자
“차 한 잔 하자”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공언(空言)이 되어버릴 것임을 서로 예상하는 “밥 한번 먹자”는 인사말 대신 “차 한 잔 하자”는 좀 더 현실적인 제안으로 마음을 전하고 있다. 그리고 그 ‘차 한 잔’을 할 기회가 오면 커피숍으로 가 대부분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하지만 역사를 되돌아보면 우리가 그렇게 쉽게 혼용하고 가볍게 잊어버릴 수 없는 중요한 가치가 차 한 잔에 담겨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미국 보스턴에는 ‘보스턴 티 파티 뮤지엄’이 있다. 눈앞으로 바다가 시원스럽게 펼쳐진 항구의 박물관에서는 246년 전에 일어난 사건을 상황극으로 재현하고 관람객이 체험도 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해 인기를 끈다. 배에 올라 포장된 차 상자를 바다에 던지는 퍼포먼스는 우리에게 ‘보스턴 차 사건’이라는 명칭으로 잘 알려진 바로 그 장면이다. 1773년, 북아메리카 대륙을 지배하던 대영제국은 국가 부채를 충당하기 위해 ‘차 조례(Tea Act)’를 제정하고 미국 식민지에 적용했다. 중국의 차를 영국 정부가 독점권을 준 동인도회사만 공급할 수 있도록 단일화하고 기존의 공급선이던 네덜란드와 미국의 상인들에겐 높은 관세를 부과한 것이다. 밥줄이 끊어지게 된 상인들과 직접세로 인해 식민지 자치권을 잃게 된 미국의 지식인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같은 해 12월 16일 저녁 7시, ‘자유의 아들들’이라는 100여 명의 행동대원들은 아메리카 원주민 복장을 하고 동인도회사 소유의 무역선에 올라 화물칸에 쌓인 342개의 차 상자를 박살 내 그 안에 있던 우이옌 차들을 바다에 버렸다. 16억 원어치에 달하는 차가 뿌려진 보스턴 앞바다는 얼마 동안 희미한 갈색을 띠었다고 한다.
실제 차 조례는 일반 시민들이 차를 싼값에 마실 수 있도록 긍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영국과 식민지 간 민감한 정치 문제로 비화해 이후 1년 동안 보스턴 티 파티를 모방한 소규모 차 사건들이 뉴잉글랜드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일어났다. 결국 영국은 1774년 보스턴 항을 폐쇄하고 메사추세스 자치정부를 해산했다. 이듬해인 1775년에는 미국 독립전쟁이 일어난다.
차나무 어린잎 우려낸 음료로 국한
영국에 대한 저항심을 키우는 도화선이 되고, 프랑스혁명에도 영향을 미친 보스턴 티 파티의 나비효과는 미국의 새로운 커피 문화도 만들어냈다. 영국에서 들어오는 차를 불매하는 대신 다양한 대체 차를 찾다가 커피를 묽게 추출해 최대한 홍차와 비슷한 맛을 내는 아메리카노를 즐기게 되었다. 인도에서 영국을 거쳐 미국으로 들어오는 차가 비싼 반면 옆나라 쿠바와 브라질에서 대량 재배되는 커피는 구하기 쉽고 값이 쌌기 때문에 많이 마셨을 뿐이라는 설명도 있지만, 각각 공화당과 민주당을 지지하는 미국의 두 정치단체 이름이 ‘티파티’와 ‘커피파티’일 만큼 미국에서도 널리 통하는 커피 속설이다. 우리는 인삼차, 우엉차, 연꽃차 등 우리거나 달인 마실 거리를 전부 차라고 부르지만, 엄격한 의미의 차(茶)는 차나무의 어린잎을 따서 증기로 찌거나 햇볕에 말려 더운 물에 우려낸 음료에 국한한다. 세계 어디에서나 쉽게 맛볼 수 있는 음식이지만 이름도, 종류도, 맛과 향도 매우 다양해 알면 알수록 어렵다. 그래서 차나무의 학명인 ‘카멜리아 시넨시스(Camellia sinensis, 중국의 동백나무)’를 변화무쌍한 ‘카멜레온(Chameleon)’에 비유하기도 한다.
BC 2500년경에 존재했다고 전해지는 전설 속 인물인 신농(神農)이 독초에 중독되어 쓰러져 있을 때 바람을 타고 날아온 찻잎을 먹고 깨어났다는 설이 널리 인용되는 차의 시원이다. 무려 5,000년 전에 차를 약으로 이용했다는 얘기다. 차는 참선(參禪)에도 빠지지 않는 소재가 되어왔다. 6세기경 중국에서 활동했던 인도 출신의 승려 달마대사가 잠들지 않고 수행하기 위해 눈꺼풀을 잘라 땅바닥에 던졌는데 그 자리에서 차나무가 자랐다는 전설은 유명한 이야기다. 다도(茶道)나 선차(禪茶)는 차를 단순한 음료 이상의 철학적 정신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용어들이다.
카테킨의 항산화력은 비타민 E의 200배, 비타민 C의 100배에 달할 정도로 강력해 평상시 차를 꾸준히 마시면 각종 성인병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강력한 항산화력 지닌 슈퍼푸드
신농의 전설이 그렇듯 차는 약용으로 시작되었다. 허준의 <동의보감>에는 영약이라 극찬되어 있고, 미국 <타임>이 선정한 슈퍼푸드에도 녹차가 올라 있다. 차의 5대 물질로 불리는 폴리페놀(카테킨), 아미노산(테아닌), 카페인, 당류, 비타민의 효능이 항산화, 콜레스테롤 수치 저하, 혈액순환 촉진, 피부 개선, 체중 조절에 큰 효과를 보이기 때문이다. 카테킨의 항산화력은 비타민 E의 200배, 비타민 C의 100배에 달할 정도로 강력해 평상시 차를 꾸준히 마시면 각종 성인병을 예방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테아닌은 카페인의 작용을 억제해 중추신경의 자극을 약화시키고 체내 흡수가 서서히 일어나도록 돕는다. 차가 커피 못지않게 카페인 함량이 높지만 공부하는 수험생이나 집중력 약한 아이들이 마셔도 안전한 이유다. 200여 개 국가에서 연간 300만 톤 이상 소비되는 차가 우리나라에서는 가야국 시대부터 시작되었다. 수로왕의 비인 허왕후가 자신의 나라 인도에서 가져온 차 씨를 심어 재배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신라 흥덕왕 때 당나라에 사신으로 간 김대렴이 차 종자를 가져오자 왕이 귀히 여겨 지리산에 심게 하면서 차 문화가 번성했고, 고려시대에는 거리 곳곳에서 차를 마실 수 있을 정도로 소비가 왕성했다.
지리산 중심으로 불교와 함께 성장해온 차 문화는 조선의 숭유억불 정책에 따라 쇠퇴했다가 다산 정약용과 초의선사, 추사 김정희라는 걸출한 인물들에 의해 조선 후기에 화려하게 부활한다. 일제강점기와 광복, 전쟁과 미국 문화 유입 등으로 화학 음료와 커피에 그 자리를 내주었던 한국의 차는 웰빙 붐을 타고 귀환, 지금은 음료뿐만 아니라 요리에도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약용식물로 시작해 정신수양 도구로, 웰빙 음료로 변신을 거듭하며 세계사를 뒤바꾸기도 한 엄청난 물건이 지금 눈앞에서 사랑스러운 쿠키의 얼굴로 우릴 보고 웃고 있는 것이다. 적조했던 지인과 “차 한 잔 하자”는 인사를 나누었다면, 아메리카노가 아닌 진짜 차를 한 잔 마셔보자. 찻잔 속에 티 파티 현장과 달마대사가, 추사 김정희가 아른거릴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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