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격차 부르는
모빌리티 혁신

글. 이동현(중앙일보 산업1팀 차장)
지금 시각은 새벽 4시. 벌써 일곱 번째 에러다. ‘퍼스널 오토모티브 프로파일’을 업로드해야 하는데 에러가 계속된다. 빌어먹을 인공지능(AI) 24시간 대응 서비스는 복원 프로세스를 진행하라는 말만 반복한다. 당최 그게 돼야 말이지. 예전 프로파일을 불러오려는데 에러가 발생하기는 마찬가지다. 프로파일 업로드가 되지 않으면 차를 움직일 수가 없다. 3시간 뒤면 셰어링 차가 도착할 테고, 그전까지 개인 프로파일을 업로드해야 운행이 가능하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날인데. 아들 집에 들러 손주를 태우고 놀이공원에 가기로 했다. 이후엔 마트에 들러 장난감도 사줘야 하고, 손주 놈이 좋아하는 피자집에도 가기로 했다. 프로파일부터 해결돼야 경로 입력도 하고 식당 예약도 할 텐데, 큰일이다.
아들에게 전화해봐야 짜증만 낼 게 뻔하다. 그러게 왜 평소에 자동 백업을 제대로 해두지 않았느냐고 하겠지. 난들 아나. 대규모 업데이트가 된 이후에 자동 백업이 초기화됐을 줄 몰랐다. 그 얘기를 해도 왜 미리 확인 안 했느냐는 소리만 반복하겠지. 아들 놈 잔소리도 지겹다. 예전처럼 내 차로 내가 운전하는 거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다. 인간의 운전을 금지하는 법안이 발효된 지도 5년째다. 자율주행보다 인간의 운전이 사고를 낼 확률이 높다나. 다 헛소리다. 무사고 40년 경력을 뭘로 알고. 요즘 인간의 운전은 정해진 트랙에서 엔터테인먼트로만 가능하단다. 말세도 이런 말세가 없다. 내 차가 있으면 어떻게든 움직여볼 텐데. 탄소세에 환경세, 자원세까지 내 차를 소유하려면 1년에 세금만 수천만 원이다. 재벌이 아니고서야 내 차 소유는 꿈도 못 꾼다. 주차장에만 서 있는 자동차가 지구를 파괴한다니, 어릴 적 SF영화에서도 못 들어본 얘기다. 하긴 차가 있으면 뭐 하겠나. 65세 이상 탑승자는 사고 확률이 높다는 이유로 엄격한 시험을 통과해야 차량을 구입할 수 있단다. 어젯밤 화상 통화에서 한밤만 자면 놀이공원에 간다며 밝게 웃던 손주 놈 얼굴이 어른거린다. 아버님은 왜 늘 그러시냐며 핀잔 주는 며느리 표정이 보이는 것 같다. 마누라는 침실에서 코까지 골며 잘 자고 있다. 내 속도 모르고. 어떡해야지. 셔틀버스를 불러야 할까. 아들 내외에게 한 소리 듣기는 마찬가지겠지. 정말 엉망진창이다.
복잡한 사용자경험(UX), 익숙지 않은 이용자
앞에 적은 내용은 사실 극단적인 상상이다. 모빌리티 혁신을 맞아 지금까지 ‘소유’하던 개념이던 이동수단은 ‘공유’의 개념으로 바뀌고 있다. 자동차의 전장 장비가 발달하면서 머신(Machine)에서 전자제품(Electronics)으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전장 장비의 증가는 당연하게도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를 불러온다. 이미 지금의 자동차도 노인들에게는 버거운 기능들을 담고 있다. 올해 현대자동차가 출시한 쏘나타에는 개인 프로파일 기능이 담겨 있는데 공유 차량을 염두에 둔 기능이다. 하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일반 운전자는 많지 않다. 중·장년층 가운데엔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을 수 있다.
지난해 파리 모터쇼에서 다임러그룹은 신형 메르세데스-벤츠 차량에 탑재될 새로운 사용자경험(UX)인 ‘MBUX’를 선보였다. 1년 뒤 MBUX는 신형 GLE클래스를 비롯한 양산 차량에 실제로 탑재됐다. 사용자경험 자체는 놀랍다. 초대형 디스플레이는 터치 기능을 지원하고, 센터 콘솔의 터치패드와 스티어링휠의 터치 컨트롤 버튼은 운전자의 주의를 흐리지 않고서도 원하는 기능을 작동할 수 있게 한다. 복잡한 사용자경험에 익숙지 않은 이들을 위한 음성인식 조작 기능도 담았다. 자연어 인식이 가능한 AI가 공조 장치부터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창문 개폐에 이르는 대부분의 기능을 음성인식만으로 가능하게 해준다. 이쯤 되면 ‘스마트 기기’로 자동차가 변신한 셈인데, 문제는 이 사용자경험을 배우는 게 결코 쉽지 않다는 데 있다. 단순히 시동키를 돌리고 기어레버를 조작해 움직이던 과거의 자동차에 비해 현재의 자동차는 너무 복잡해졌다. 메르세데스-벤츠의 MBUX는 분명 놀랍고, 스마트 기기에 익숙한 20·30 세대에겐 편리한 기능이지만 이를 배우기 어려운 연령층도 존재한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에서나 있던 ‘디지털 격차’가 이동수단에서도 등장한 것이다.
기술은 인류의 행복을 위해 만들어야 한다
모빌리티 혁신이 계속되면 이 ‘디지털 격차’는 일찍이 토머스 쿤(1922~1996)이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예견했듯, 계단식으로 진행될 게 뻔하다. 한 계단을 따라잡지 못하면 다음의 디지털 격차를 따라잡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뒤처지게 된다. 이미 스마트폰에서 이런 디지털 격차는 현실화하고 있다. 이동수단 역시 이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모빌리티 혁명의 이상은 자원 소모를 최소화하면서 효과적인 이동수단을 개발하는 것이다. 막대한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선 지금처럼 자동차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선 안 된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통합된 모빌리티 서비스는 스마트폰 같은 개인용 디바이스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자율주행 셔틀이 됐든, 셰어링 카가 됐든 모바일 앱으로 집까지 부르거나, 아니면 특정 장소까지 ‘마이크로 모빌리티’(대중교통이나 차량이 닿지 않는 최종 목적지까지의 이동수단)를 이용한 뒤 차량으로 갈아타고 다시 ‘라스트 마일’ 이동수단을 이용하는 식이다. 물론 과금도 통합으로 이뤄질 것이다.
다시 위에서 적었던 ‘극단적인 상상’으로 돌아가보자.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는 저런 현실을 겪지 않을 것이다. 우리 생전에 저런 미래 모빌리티가 상용화되긴 쉽지 않다. 혁신은 생각보다 빠르지만 예상하는 것만큼 금방 오진 않는다. 하지만 언젠가는 저런 상상이 현실이 될 수 있다. 세대의 차이, 빈부의 차이, 교육의 차이가 혁신의 편의를 누리는 데 차별 요소가 된다면 이런 문제 역시 해결해야 한다. 기술은 인류의 행복을 위해 만들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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