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도 괜찮아!
차이의 수용과 <논어>

글. 안상헌(Meaning독서경영연구소장) / 일러스트. 이혜헌
마음을 읽는 상상력
영화배우 주윤발이 주연을 맡았던 영화 ‘공자-춘추전국시대’에는 어린아이가 순장(殉葬)에 희생되는 장면이 나온다. 다행히 아이는 탈출하고 공자에게 몸을 의탁한다. 귀족들과 국사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공자는 순장에서 탈출한 아이를 데려와 ‘산 사람을 묻는 것은 잔인한 풍습’임을 강조하며 아이의 주인에게 놓아줄 것을 부탁한다. 아이는 당시 노나라의 실력자였던 계씨 가문의 소유 노비였고, 계씨 집안은 고대의 풍습에 따라야 한다며 공자의 제안을 거부한다. 그러자 공자가 계씨 가문의 관리에게 묻는다.
“돌아가신 대인께서 평소에 당신과 항상 가까이 있고 싶다고 할 정도로 친분이 두터우셨지요?”
“그렇소.”
“그럼 돌아가신 대인을 따라 당신도 무덤으로 가셔야지요? 당신이 그러시겠다면 나도 이 아이를 내어드리겠소.”
그러고는 관리들을 둘러보며 우리에게도 이미 익숙한 말을 던진다.
己所不欲 勿施於人(기소불욕 물시어인)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남에게 시키지 말라.”
내가 어떤 일을 해보니 힘들고 괴로워서 하고 싶지 않다면 남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남에게도 시켜서는 안 된다. 당연한 말같이 들리지만 그것이 쉽지 않다. 인간은 자기 생각만 하지 다른 사람의 마음은 헤아릴 줄 모르기 때문이다. 이것은 일종의 상상력이다. 내 마음을 통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상상력.
인간관계가 괴로운 이유
직장인 중에 인간관계로 힘든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 조사기관이 직장에서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이냐는 설문조사를 해보았더니 일보다 인간관계라고 답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고 한다. 직장뿐만 아니다. 학교, 친구, 가족 등 사람이 모인 곳 어디서든 생기는 것이 사람 사이의 갈등이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인간관계가 이토록 힘든 걸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서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 수학 문제가 그렇고, 상대성이론이 그렇다. 이런 문제에 직면하는 사람은 괴로울 수밖에 없다.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만나면 힘들어한다. 인간이 학문을 시작한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공부였다. 차라리 수학과 과학은 나은 편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고 그 사람들은 각자 다른 개성을 가졌다.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 함께 생활하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고 수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직장생활을 조금만 돌아봐도 알 수 있다. 우리는 나와 다른 생각, 다른 생활 방식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이해가 안 돼’라며 거리를 둔다. 심지어 좋지 않은 이야기를 퍼뜨리기도 한다. 나와 다른 존재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 이것이 인간관계를 괴롭게 만드는 근본 이유인 것이다.
<논어>와 인간관계
공자와 제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 <논어>는 인간관계에 대한 통찰로 가득 차 있다. 사람과의 관계가 왜 중요하고 어떻게 좋은 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지를 예리한 시각으로 분석해서 알려준다. 그래서인지 경영인들은 삶에 깨달음을 준 최고의 책으로 서슴지 않고 <논어>를 꼽는다. 도대체 이 오래된 책에 무슨 내용이 담겼길래 25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찬사가 끊이지 않을까?
不患人之不己知 患己不能也(불환인지불기지 환기불능야)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을까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아주지 못함을 걱정하라.”
우리는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화를 내곤 한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내가 팀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데’, ‘내가 얼마나 많은 성과를 냈는데’. 이런 말들은 직장인들의 술자리에서 쉽게 들을 수 있다. 모두 자신의 노력과 마음을 남들이 알아주지 않음을 한탄하는 말이다. <논어>는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아주지 못함을 걱정하라고 한다. 나를 중심에 두지 말고 상대방을 중심에 두라는 말이다. 내 마음만 생각하지 말고 상대방의 마음부터 살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상대방을 알아줄 수 있고 상대는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한탄하는 일이 없게 될 것이다. 그때 상대방도 나를 이해하고 알아줄 것이다.
인간관계의 해법은 ‘나’가 아닌 ‘남’을 중심에 두는 것이다. 이것이 공자가 말하는 인(仁)이고 예(禮)이다. 인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 예는 그것이 사회적 규범으로 펼쳐진 것을 말한다. 내가 아닌 타인을 우선에 두고 생각할 수 있다면 서로 이해하고 아껴주는 직장이 되고, 모두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공자의 생각이었다.
화이부동의 정신
君子 和而不同, 小人 同而不和(군자 화이부동, 소인 동이불화)
“군자는 사람들과 화합하지만 서로 같지 않고, 소인은 같아 보이지만 사람들과 화합하지 못한다.”
서로 화합하되 같아지지는 말라. <논어>는 인간관계의 구체적인 해법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람들과 함께 지내다 보면 ‘우리’라는 의식이 싹튼다. 함께 일하고 땀 흘리는 동료들은 더욱 그렇다. ‘우리’를 강조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 ‘우리’가 아닌 것들이 생긴다. 무리를 짓게 된다는 말이다. 나와 생각이나 스타일이 비슷한 사람들은 우리가 되고 그렇지 않은사람은 남이 된다. ‘우리’ 안에 들어오지 못하는 사람들과 거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 공자가 말하는 군자는 사회에 필요한 일을 할 수 있는 선비를 의미한다. 소인은 자기만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소인은 서로 비슷한 부류들끼리 몰려다니며 무리를 이루는데, 밖으로는 같아 보이지만 안으로는 화합하지 못하고 다툰다. 자기와 다른 사람을 만나면 ‘너는 왜 그러냐?’며 갈등을 일으킨다. 나와 다른 모습, 다른 생각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가졌으니 다른 생각을 수용할 수 없다.
군자는 다르다. 사람은 서로 다르며 같을 수 없음을 잘 안다. 성격이 독특하고, 생각에 차이가 있어도 그러려니 한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자신과 다른 모습에 경탄하고 격려한다. 그러면서도 그들과 같아지려고 하지 않는다. 나는 나이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존중하되, 그들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지켜나가는 것이다. 그럴 수 있을 때 ‘나’는 ‘우리’가 된다. 직장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당연히 생각과 스타일이 다를 수밖에 없다. 서로 다름이야말로 경쟁력의 원천이다. 생각이 같다면 여러 사람이 있을 이유가 없다. 다른 생각이 있기에 다양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낼 수 있다. 직장은 수많은 문제가 연속해서 일어나는 곳이다. 변하는 환경마다 발생하는 문제들을 풀어내려면 서로 다른 생각들이 제시되어야 하고 그 속에 놀라운 아이디어들이 깃들어 있다. 그러자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다른 생각을 자극해야 한다.
친하되 비교하지 말라
君子 周而不比 小人 比而不周(군자 주이불비, 소인 비이부주)
“군자는 여러 사람과 두루 친하면서 서로 견주지 않고, 소인은 서로 견주면서 두루 친하지 못한다.”
사람은 비교하는 데 익숙하다. 백화점에서 물건을 살 때도 비교하고, 신입사원을 선발할 때도 비교하고, 아이디어를 말할 때도 비교한다. 우리는 매일 뭔가를 할 때마다 비교한다. 왜 그럴까? 더 뛰어난 것을 선택하기 위해서다. 안타까운 것은 뛰어난 것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탈락하는 것이 생긴다는 것이다. 공자의 말처럼 소인은 서로 비교하는 데 익숙하다. 그러다 보니 자기와 다른 것을 멀리하여 두루 친해지지 못한다. 반면 군자는 서로 비교하지 않기 때문에 여러 사람과 두루 친하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관념이 없다. 상황에 따라 내가 틀릴 수 있고, 네가 옳을 수도 있음을 안다.
제자였던 자공이 사람들을 비교하자, 공자가 말한다.
陽也, 賢乎哉 夫我則不暇(사야 현호재 부아즉불가)
“사(자공)는 똑똑한가 보구나? 나는 그럴 겨를이 없다.”
자기 인생을 사는 사람들은 남들을 비교할 틈도 이유도 없다. 자기 삶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만족하지 못할 때, 진솔하지 못할 때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고 남들과 비교한다.
나는 어떠한가?
<논어>는 어려운 철학이나 까다로운 사상을 다룬 책이 아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공부와 사람 사귐의 마음가짐 같은 것을 다룬 실용적인 책이다. 이런 오해를 받게 된 것은 공자가 유학의 아버지로, 성리학의 성인으로 추앙받으면서 신격화되었기 때문이다. 공자가 바랐던 것은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그것을 함께 배우자는 것이었다. <논어>의 첫머리에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 학이시습지 불역열호)’라고 배움의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배움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살면서 경험에만 의존한다면 배움이 깊어지기 어렵고 우연히 들어맞은 것을 진리로 알다 큰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다. 배움이란 오랜 세월에 걸쳐 일어난 일들의 원인과 결과를 따져보고 정리한 세상의 이치와 순리를 익히는 것이다. 인간관계에도 이치가 있으며 갈등을 풀어내는 순리가 있다. <논어>는 그것에 대해 말하고 있을 따름이다.
“군자는 일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고, 소인은 남에게서 찾는다.”
모든 공부의 시작과 마무리는 자기 성찰과 수양이다. 자신을 돌아보지 않으면 제대로 된 공부가 될 수 없고 공부한 것을 갈고닦지 않으면 발전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진짜 공부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행동하고 있는지를 아는 것에서 시작된다. 뻔히 아는 내용이지만 막상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 정말 내가 배워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문제의 원인을 다른 데서 찾는 데 익숙하다. 일이 꼬이는 것도, 하루가 괴로운 것도, 인생이 힘든 것도 모두 남의 탓으로 돌리기 쉽다. 그러는 편이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것보다 덜 상처받는다. 하지만 그럴수록 문제는 풀리지 않고 상황도 좋아지지 않는다. 내가 그토록 비난하는 타인과 상황은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우리 자신뿐이다. 그런 점에서 <논어>의 메시지는 실천하지 못하는 나를 일깨워준다.
‘차이를 인정하고 다름을 수용하며 서로 비교하지 말라.’
나는 어떠한가? 이것이 <논어>를 통해 살펴야 할 성숙한 관계를 위한 성찰과 수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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