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나를 연결해주는 통로 ‘창문’

어릴 적 즐겨보던 만화 속 주인공 빨간 머리 앤은 늘 창문을 열고 하늘을 향해 말한다. “어떤 아침이든 아침이 있다는 것은 정말로 멋진 것 아닌가요?”
앤에게 창문은 바깥세상과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공간이며, 긍정적인 하루를 다짐하는 공간이었다. 그렇게 앤은 아침에 일어나서 한참을 창문에
두 팔을 괴고 풍경을 바라보는 일로 하루를 시작했다. 창문이 없는 지하 사무실의 공간에서 오랜 기간 일을 한 적이 있다. 있을 때는 몰랐는데 막상
없으면 그리운 것 중 하나가 창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린이들과 함께 가짜 창문을 그렸다. 그렇게 오랫동안 창문이 없는 곳에 있다가 드디어
창문이 있는 2층의 공간으로 이사 갔던 날, 너무 좋아서 매일 창문을 열어놓고 일했던 기억이 난다.
글. 이소영(소통하는 그림연구소-빅피쉬 대표, <그림은 위로다> 저자)
폴 고갱 / 바다의 열린 창문에 있는 꽃 / 73 x 92cm / 캔버스에 유채
오르세 미술관
폴 고갱의 숨겨진 창문을 찾아서
화가들이 그린 그림 중 창문을 그린 그림을 찾는 일은 비교적 간단하다. 컴퓨터 검색창에 ‘Window’ 또는 ‘Painting’이라는 단어만 쳐도 상당히 많이 나온다. 하지만 이 그림은 수많은 화가가 그린 창문 그림 중 가장 독특하다. 캔버스의 앞이 아닌 뒷면에 비밀스럽게 그려졌기 때문이다. 반 고흐와 함께 후기인상파로 분류되는 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이 1888년에 그린 작품이다.
폴 고갱은 캔버스의 앞면에는 ‘Hay-Making in Brittany’을 그렸고 뒷면에 바다가 보이는 창문 앞에 있는 꽃병을 그렸다. 주식 중개인으로 일하던 고갱은 화가의 꿈을 안고 취미로 그림을 그리다가 삼십대 중반이라는 나이에 화가의 길을 본격적으로 걸었다.
이런 그의 이야기에 영감 받은 소설가 서머셋 몸은 고갱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달과 6펜스>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1886년 여름, 고갱이 프랑스 북서부에 위치한 브리타니 지역에서 머물던 시절 그린 그림이다. 무명 화가인 고갱에게는 도시보다 물가가 싼 시골에 매력을 느낀 고갱은 브리타니 풍경을 자주 그렸다.
아마도 가난했던 화가인 고갱은 그림을 그릴 캔버스가 부족했을 것이다. 그래서 앞면에는 브리타니 풍경을 뒷면에는 바다 풍경이 보이는 창문을 그렸던 듯하다. 양면으로 입을 수 있는 리버서블 재킷처럼 감상자들이 2배로 감상할 수 있는 일석이조 작품이 되었다. 고갱이 그린 창문을 다시 보자. 바다 멀리 떠 있는 배들은 여유로워 보이고, 파도는 잔잔하다. 그리고 그 풍경을 볼 수 있는 창문 앞에는 화려한 꽃이 가득하다. 고갱은 아마도 이런 풍경을 그리며 마음의 여유를 느꼈을 것이다. 그 어떤 소란스러운 풍경도 창문 너머로 보면 아름답다.
앙리 마티스 / 모자를 쓴 여인 / 1905 / 캔버스에 유채
앙리 마티스가 사랑한 창문
창문을 많이 그린 화가 중에서는 야수파를 대표하는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 ~1954)도 빼놓을 수 없다. “내 평생 가장 괴로웠던 것은 난 다른 화가들처럼 그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앙리 마티스의 말이다. 그가 스스로를 평가했듯이 마티스는 늘 도전하는 화가였다. 자신이 파란색을 칠했다고 해서 바다가 아니고, 초록색을 칠했다고 풀이 아니라고 말했던 마티스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색에 대한 고정관념을 탈피하며 동료들과 함께 야수파 화가로 미술사에 남았다. 그가 그린 초상화는 지금 봐도 놀라울 정도로 한 사람의 얼굴이 다양한 내면의 색으로 표현되어 있다.(그림1) 또한 그는 그림에 다양한 문양을 넣어 장식성과의 조화를 추구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은 가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실내이고 야외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그림2) 마지막으로 마티스가 가장 멋지게 해낸 일은 70대가 지나 몸이 안 좋아지면서 규모가 큰 유화를 그릴 수 없게 되자 종이를 잘라 ‘컷 아웃 드로잉’이라는 자신만의 콜라주를 완성한 점이다.(그림3) 이렇게 마티스는 평생에 걸쳐 다양한 도전을 하며 화풍을 발전시켰다. 그래서인지 나는 마티스가 그린 작품 중 유독 창문을 그린 그림에 애정이 많다. 그에게는 창문이 새로운 세상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과연 내가 있는 이곳을 넘어 저 세상으로 향해 갈 수 있을까? 이 창문을 넘어야만 다른 세상을 만날 수 있다’고 말하는 마티스 내면의 소리가 그림에서 들린다.
마티스를 비롯한 야수파 화가들은 항구가 있는 프랑스 남부의 해변 ‘콜리우르’를 좋아했다. 마티스는 능력 있는 후배 앙드레 드랭에게 콜리우르에서 함께 작업하자는 편지를 보냈고, 마티스를 존경하던 드랭은 화가가 되기를 반대하는 아버지를 설득해 콜리우르에서 여름을 함께 보내며 콜리우르를 주제로 한 풍경화를 여럿 남겼다. 오른쪽의 작품들은 마티스가 그린 콜리우르다. 열린 창문 너머로 콜리우르 바다가 보인다.
하지만 같은 콜리우르라도 어떤 시간에 그렸느냐에 따라 달라서 흥미롭다. 또한 마티스가 그린 작품과 앙드레 드랭이 그린 작품을 보면 자연스럽게 콜리우르의 풍경이 그려진다.
  • 앙리 마티스 / 가지가 있는 실내 / 1911 / 캔버스에 유채
  • 앙리 마티스 / 푸른 누드 III
    / 1952 / 종이에 과슈 콜라주
  • 앙드레 드랭 / 콜리우르의 배
    / 1905 / 캔버스에 유채
  • 콘스탄틴 유온 / 자연으로 가는 창문 / 1911 / 캔버스에 유화
    / 65x100cm
  • 앙리 마티스 / 열린 창 콜리우르 / 1905
    / 캔버스에 유채 /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 앙리 마티스 / 열린 창 콜리우르 / 1905
    / 캔버스에 유채
콘스탄틴 유온 / 창문(모스크바에 있는 화가 부모님의 아파트) / 1905
/ 보드에 파스텔 / 49x64cm / 모스크바 트레이카 갤러리
그 화가의 서정적인 창문
앙리 마티스처럼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러시아에서는 따뜻한 그림으로 인기가 많았던 화가 콘스탄틴 유온(Konstantin Yuon, 1875~1958)이 그린 창문 풍경을 소개한다. 콘스탄틴 유온은 프랑스를 여행하던 시기에 카미유 피사로(Camille Pissarro, 1830~1903)를 비롯한 인상파 화가들과 교류하며 인상파 화풍을 익혔다. 그래서인지 유온의 그림은 어디선가 많이 본 프랑스의 풍경화가 같다. 아마도 인상파 특유의 부드러운 터치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오늘 만난 화가들은 저마다 다른 창문을 그렸다. 누군가는 여행지에 가서 만난 풍경을, 누군가는 자신의 부모님 집의 창문을, 누군가는 상상의 창문을 말이다. 창문을 중심에 두고 실내와 바깥 풍경을 탐구하는 일은 나의 내면과 외부의 세상을 끊임없이 여행하는 것과 같다. 그렇게 세상과 창문을 통해 소통하다 보면 어지러운 마음과 복잡한 풍경 속에서도 나름의 질서를 찾게 된다. 마음이 복잡한 날에는 창문을 보며 마음의 온기와 세상의 공기를 만나게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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