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충만하게 만드는 에너지
배움과 <명상록>

글. 안상헌(Meaning독서경영연구소장) / 일러스트. 이혜헌
철학자 왕,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서양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플라톤은 이상적인 국가가 되려면 철학자가 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철학자처럼 진리를 사랑하고 추구하는 자만이 세속의 감정에 흔들리지 않고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어가는 일에 매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 물정 모르는 철학자가 왕이 된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일 것 같지만 플라톤이 죽고 수백 년의 시간이 흐른 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 그 주인공이 바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121년~180년)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의 오현제 중 한 명으로 불린다. 황제인데도 불구하고 딱딱한 바닥에서 잠을 잤고 사치를 멀리하며 청빈한 삶을 실천했다. 이런 삶을 실천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그가 철학자였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이성에 의지하며 제 역할에 최선을 다하라는 스토아철학의 메시지를 실천한 ‘철학자 왕’이었다. 그는 하루를 마치면서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며 반성하고 기록으로 남겼는데, 이것이 유명한 <명상록>이다. 일종의 일기이자 사색록인 <명상록>에서 유달리 돋보이는 점은 배움에 대한 강조다.
"나는 할아버지 베루스 덕분에 순하고 착한 마음씨를 갖게 되었다. 나의 아버지에 대한 평판과 추억 덕분에 겸손과 남자다운 기백을 갖게 되었다. 나의 어머니 덕분에 경건과 선심, 나쁜 짓뿐 아니라 나쁜 생각을 삼가는 마음과 나아가 부자들의 생활 태도를 멀리하는 검소한 생활 방식을 갖게 되었다."
<명상록>의 열 쪽가량은 누구에게서 무엇을 배웠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들로 채워져 있다. 아우렐리우스는 어렸을 때부터 주변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듣고 행동의 중요한 지침으로 받아들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성찰은 황제가 되어서도 변치 않았고 오히려 더욱 철저하게 배움의 자세를 갖게 했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기 온 우주는 변화이고 인생은 의견이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한다. 하지만 그 변화에는 일정한 법칙이 있다. 그 법칙을 알고 따를 수 있다면 작은변화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세상의 변화에 민감하다. 변화를 관찰하고 따르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것으로 인해 의견이 생기고 감정이 흔들린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사실이 아니다. 의견이다. 우리는 세상을 사실 그대로 파악하지 않는다. 의견으로, 감정으로 세상을 본다. ‘오늘도 열심히 해보자’는 팀장의 말을 사실 그대로 파악하는 대신 ‘팀장님은 지나치게 일만 생각해’로 받아들인다. ‘이럴 때는 이렇게 하는 게 좋아’라는 동료의 말을 내게 부족한 점을 꼬집는 것으로 이해한다.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자기 생각과 감정이다. 직장생활의 수많은 오해와 스트레스들이 여기에 기인한다. 배움은 자기 생각을 넘어 객관적으로 사실을 바라보게 한다. 세상을 보는 시각이 주관적이거나 일방적이라면 현명하다고 볼 수 없다. <명상록>은 주관적이고 감각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 세상을 보라고 말한다.
"어떤 외적인 일로 네가 고통받는다면, 너를 괴롭히는 것은 그 외적인 일이 아니라 그에 대한 네 판단이다."
배움이 필요한 이유
자신의 판단이나 감정을 넘어, 있는 그대로 보고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네 의견을 버려라. 그러면 ‘내가 피해를 보았다’는 느낌이 사라질 것이다. ‘내가 피해를 보았다’는 느낌이 사라지면 피해도 사라질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지 않는다. 나의 시선으로 보고 나의 생각으로 판단한다. 일종의 선입견이다. 이런 선입견에서 벗어나려면 자기 생각을 버리는 수밖에 없다. 가능한 판단을 내려놓으려는 노력이 감정의 소용돌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이다. 이때 판단을 유보하는 것이 일시적인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꾸준히 반복해서 세계관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강조하는 것이 배움을 통한 자기 철학이다.
"우리의 길잡이가 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오직 한 가지, 철학뿐이다. 철학이란 우리내면의 신성을 모욕과 피해에서 지켜주고, 쾌락과 고통을 다스리고, 계획 없이는 어떤일도 하지 않고, 거짓과 위선을 멀리하고, 남이 행하든 말든 거기에 매이지 않고, 나아가 일어나거나 주어진 것을 마치 자신이 온 곳으로부터 온 것인 양 기꺼이 받아들이고, 무엇보다 죽음을 모든 피조물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해체 외에 다른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기고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는 것이다."
철학이라고 하면 거창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그가 말하는 철학은 자기 삶의 길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데 도움을 주는 현실적인 것이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고 그 방향을 통제할 수 있을 때 삶의 만족도는 높아진다. 오늘 일어난 일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알 때 하루는 유쾌한 것이된다. 돈이 많고 지위가 높은 사람들도 자기 삶을 통제할 수 없다면 괴로울 수밖에 없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휘둘리지 않고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 힘, 그것이 철학이며 이는 세상의 원리를 파악하는 배움에서 온다.
세상의 질서를 따르는 것이 최고의 삶
동양의 현자 장자는 ‘세상 모든 것은 일어날 때가 되었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말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일어날 때가 되지 않았다면 일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논리다. 이것이 장자가 말하는 세상의 질서고, 인간은 그 질서의 주인공이 아닌 조연에 불과하다. 철학은 무엇인가를 이루어내야 한다는 인생의 부담감을 덜어준다. 그런 의미에서 <명상록>도 장자의 세계관과 크게 다르지 않다.
"누가 자연의 작용을 두려워한다면 그는 어린아이 같은 사람이다. 죽는다는 것은 자연의 작용일 뿐 아니라 자연에 유익한 것이기도 하다."
삶과 죽음은 일어날 때가 되면 일어나는 것이다. 내가 살고 싶다고 살아지고, 죽고 싶다고 죽는 것이 아니다. 우주와 자연은 원래 그런 것이고 그 질서에 따라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단지 우리 감정이 그것을 이렇다 저렇다 해석할 뿐이다. 이때 이성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성은 우리가 감정에 빠지지 않도록 하고 세상의 질서를 파악하도록 돕는다. 죽음이 자연의 작용임을 알려주고 자연에 유익하다는 것도 말해준다. 덕분에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도 피해야 할 이유도 사라진다. 살아 있는 동안 이성의 판단에 따라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며 공부하는 것이야말로 <명상록>이 말하는 최고의 삶이다.
"자신 속의 신성과 사귀면서 그 신성에 진심으로 봉사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사람만큼 불쌍한 존재는 없다."
고단한 세상 어떻게 살 것인가?
사람은 누구나 자유롭게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세상은 그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해야만 하는 일도, 할 수밖에 없는 일도 많다. 그런 의무감이 괴로움을 낳는다. 이런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욱 자유를 추구하지만 고통만 커진다. 의미 있는 삶은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의무에 충실한 데 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의무에 충실하면서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직장에서 책임을 다하는 동료가 그렇고, 자식만을 보고 살아온 우리의 부모님들이 그렇다. 자유만이 인생을 행복하게 해준다는 것은 착각이다. 의무에 충실한 삶 또한 의미와 충만을 가져다준다.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을 때 느끼는 뿌듯함은 무엇과도 바꾸기 힘든 경험이다.
"늘 소박하고, 선하고, 순수하고, 진지하고, 가식 없고, 정의를 사랑하고, 신을 두려워하고, 자비롭고, 상냥하고, 밑은 바 의무에 대하여 용감한 사람이 되도록 하라. 철학이 너를 만들려고 했던 그런 사람으로 남도록 노력하라. 인생은 짧다. 지상에서의 삶의 유일한 결실은 경건한 성품과 공동체를 위한 행동이다."
<명상록>은 배움을 소중히 여긴 황제가 자신의 삶을 올곧게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이다.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저 | 숲 | 2005년
황제이자 스토아학파 철학자였던 아우렐리우스는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로마를 책임지고, 인생의 대부분을 전쟁터에서 보내야 했다. <명상록>에는 자신의 결함에 대한 경계, 스토아 학파의 입장에서 자신에게 들려주는 충고와 반성, 자신에게 교훈이 될 만한 짤막한 글귀와 인용문, 그리고 신의 섭리, 인생의 무상함, 도덕적 정진, 인류에 대한 관용 등 우주에 홀로 선 고독한 인간에게 필요한 삶의 자세들이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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