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들의 밤은 우리의 낮보다 아름답다

‘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작가의 산문집 제목이기도 한 이 문장을 나는 꽤 오랫동안 믿고 있다. 밤에 우리는 모두 변한다. 무거운 고민이 해결되기도 하고,
가슴 아픈 사연이 잊히기도 하며, 지끈거리던 문제도 밤을 통과하면 단순해질 때가 있다. 우리 모두에게는 밤이 꼭 지나가야 하는 관문이다. 그 관문을 지나야
성장하고 다시 기회가 찾아오며, 다시 새 삶을 시작한다. 모두가 지나가는 이 밤을 붙잡고 그린 화가는 누가 있을까?
글. 이소영(소통하는 그림연구소-빅피쉬 대표, <그림은 위로다> 저자)
빈 센트 반 고흐 /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 / 1888 / 캔버스에 유화 / 72x92cm / 오르세 미술관
빈 센트 반 고흐 / 아를의 포룸 광장의 카페 테라스 / 1888 / 캔버스에 유화
/ 80.7x65.3 cm / 크뢸러뮐러 미술관
아를의 여름밤을 그리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아마도 고흐가 아닐까. 빈 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는 1888년 화상이었던 동생 테오의 도움을 받아 파리에서 남부 아를의 ‘노란 집’으로 거처를 옮긴다. 그는 이곳에서 방 4개를 빌려 고갱을 초대하며 ‘화가 공동체’를 열망했다. 1888년 여름에 그린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은 고흐가 고갱을 기다리며 설레는 마음에 남긴 작품이다. 나는 이 그림을 볼 때마다 하늘에서 북두칠성을 찾기 바쁘다. 수면 위로 비친 별빛의 물결이 어쩜 이리도 강할까? 고흐는 자신이 선택한 것만 더 강조되게 보이는 눈을 가진 듯하다. 무더운 밤, 집 근처 한강에 나갈 때마다나는 고흐의 이 여름밤을 상상한다. 그러면 세상 모든 강에 고흐와 함께 있는 기분이다. 고흐는 약 15개월 동안 아를에서 200여 점이 넘는 많은 작품을 남겼다. 미술사학자들은 이 시기를 고흐의 ‘아를(Alres) 시기’라고 부른다. 아를은 고흐에게 꿈의 장소이자, 가장 아름다운 창작의 장소였다. 고흐는 아를의 포룸 광장(Place du Forum)에 있는 이 카페를 참 좋아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곳에는 고흐를 인정해주는 세상에 몇 안 되는 친구가 있었다. 있는 그대로의 그를 인정하는 장소가 바로 이곳인 것이다. 고흐는 노랑과 짙은 파랑, 이 두 가지 보색을 활용해 표현했다. 두 색이 지니는 대비 덕분인지 밤의 카페지만 낮보다 더 활기 있고 에너지가 넘쳐흐른다. 그러나 아를에서의 행복은 짧았다. 성격 차이로 인한 고갱과의 갈등으로 극도로 예민해진 고흐는 자신의 왼쪽 귀를 자르는 끔찍한 일을 저지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고갱에게도 이 사건은 큰 상처로 남는다. 고갱이 아를을 떠나자 고흐는 아를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다.
아를에서 그린 여름밤 풍경화로 우리는 열정적이었던 신인 화가 반 고흐를 만난다.
명성과 인정이 아득히 멀리 있는 별처럼 느껴져도, 고흐는 가난과 질병을 견디며 묵묵히 그 별을 따라 뜨겁게 걸었다. 아를에서의 밤은 고흐에게 제일 좋은 선생이었다.
“푸른 밤, 카페 테라스의 커다란 가스등이 불을 밝히고 있어. 그 위로는 별이 빛나는 파란 하늘이 보여. 바로 이곳에서 밤을 그리는 것은 나를 매우 놀라게 하지. 창백하리만치 옅은 하얀 빛은 그저 그런 밤 풍경을 제거해 버리는 유일한 방법이지. (…) 검은색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아름다운 파란색과 보라색, 초록색만을 사용했어. 그리고 밤을 배경으로 빛나는 광장은 밝은 노란색으로 그렸단다. 특히 이 밤하늘에 별을 찍어 넣는 순간이 정말 즐거웠어.” -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 중
긴장감이 감도는 밤을 그리다
존 앳킨스 그림쇼(John Atkinson Grimshaw, 1836~1893)가 그린 밤은 고흐가 표현한 밤과 사뭇 다르다.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 긴장되는 여름밤 같다. 영국이 낳은 밤을 그린 도시 풍경화의 대가다. 리즈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림쇼는 제대로 된 미술 교육을 받지 않았다. 나처럼 제대로 된 미술 교육을 받고 미대에 입학한 사람이 듣기엔 배 아픈 소리지만 밤의 색채를 그만큼 깊이 있게 표현하는 화가는 드물다. 그가 처음으로 택한 직업은 철도회사 직원이었다. 그림쇼는 화가가 되는 것을 반대하는 어머니의 뜻대로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에 입사한다. 그는 회사를 다니며 틈틈이 화랑들의 그림을 구경하며 안목을 쌓는다. 하지만 마음속에 생긴 화가의 꿈은 쉬이 작아지지 않았다.
존 앳킨스 그림쇼 / In Peril / 1879 / 캔버스에 유화 / 76.2×127cm / 리즈 시티 갤러리
그림쇼는 1861년인 25세 때 화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고 근무하던 철도회사를 그만둔다. 숨어 있던 능력이 바로 빛을 발한 것일까? 1862년에 첫 전시를 했는데 그림에 대한 평가가 좋았고 꽤 인정을 받았다. 그림쇼는 선배 화가들인 ‘라파엘 전파’의 영향을 받았다. 라파엘 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는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 등장한 화파로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라파엘로(Raffaello Sanzio da Urbino)의 화풍을 지향하는 그룹이 아니라 그들의 이상화된 미술을 비판하고, 라파엘로 이전 시대의 미술로 돌아가자는 주장을 했던 화가들이다. 그들은 자연을 정확히 관찰하고 세부적인 묘사에 충실했던 중세 고딕 및 초기 르네상스 미술로 돌아갈 것을 강조했다. 그들을 가장 지지했던 것은 비평가 존 러스킨이었다. 존 앳킨스 그림쇼는 라파엘 전파처럼 초기에는 자연을 정확히 묘사하는 데 열중했고 라파엘전파 화가들처럼 작품의 영감을 현대 시와 문학에서 찾곤 했다. 그의 작품 중에서 알프레드 테니슨(Alfred Tennyson)의 시(詩) ‘레이디 샬롯(The Lady of Shalott)’의 한 구절을 그린 작품이 그 예이다.
존 앳킨스 그림쇼
그림쇼는 이런 과정을 통해 점차 자신만의 화풍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 그림쇼의 개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작품은 바로 위에 소개한 이런 밤을 그린 풍경화였다. 그는 1865년경부터 영국의 밤 풍경을 주제로 연작을 남긴다. 그는 주로 글래스고, 리버풀, 리즈, 런던, 스카버러, 휘트비를 배경으로 했는데, 풍경을 스케치할 때 사진기를 활용해 더욱 실감나는 묘사를 진행한다. 그의 작품이 너무 사실적이어서인지 그가 사진을 보고 스케치를 하는 것에서 나아가 아예 사진을 빈 캔버스에 투영해 건물과 나무를 스케치했다는 소문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소문에도 불구하고 그는 당대 밤 풍경을 그린 화가 중 상당히 유명했다.
그림쇼보다 현대에 이르러 더 많이 알려진 밤의 화가 제임스 맷닐 휘슬러(James Abbott McNeill Whistler, 1834~1903)는 그림쇼가 그린 달빛 그림을 보기 전까지는 자신이 밤 풍경의 대가라고 생각했다고 말할 정도로 그는 동시대 작가들에게서도 존경을 받았다. 실제 그림쇼와 휘슬러는 한때 작업실을 함께 쓰기도 했다. 그림쇼는 런던, 리즈, 리버풀, 글래스고와 같은 도시를 돌아다니며 밤의 정취와 빛, 색채를 자신만의 조형 언어로 기록한다. 그가 밤 풍경을 그린 시기는 전구가 발명된 후지만 대중적으로 보급된 시기보다는 이르기에 오늘날 우리의 밤보다는 훨씬 어두웠을 것이다. 오랜 시간 불을 밝히는 가로등이 지금보다 귀하던 그 시절 밤은 얼마나 긴장감이 역력했을까? 적막하고 어두운 시간을 비추는 하늘에 홀로 존재하는 달빛은 사람들의 든든한 친구였을 것이다. 여름밤 하루쯤은 그림쇼의 작품을 떠올리며 혼자 달빛 아래에서 걷는 시간을 가져도 좋겠다.
존 앳킨스 그림쇼 / 레이디 샬롯 / 1875 / 캔버스에 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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