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돼지의 해,
떡국의 맛

기다란 가래떡을 엽전 모양으로 썰어놓고 떡국을 만들어 가족들과 먹는 풍습은 우리 설날 아침의 빼놓을 수 없는 풍경이다.
가늘고 길게 생긴 가래떡에는 무병장수의 의미가 담겨 있고, 이 가래떡을 엽전 모양으로 썬 것은 떡국에 풍요를 바라는 마음을 담기 위한 것이다.
글. 남기현(매일경제신문 기자, <음식에 담아낸 인문학> 저자)
조선 시대 이후 우리 조상들은 설날과 한식, 단오, 추석을 4대 명절이라 하여 이날을 아주 정성스럽게 보냈다. 특히 2019년은 60년 만에 찾아온 기해년(己亥年)이다. 기(己)는 오방색(황·청·백·적·흑) 가운데 황(黃), 즉 노란색을 의미한다. 해(亥)는 12지간의 마지막 동물인 돼지다. 따라서 기해년은 노란 돼지, 즉 황금돼지의 해로 불린다. 우리 조상들은 전통적으로 황금돼지의 해를 ‘복덩어리의 해’로 여겼다. 재물이 넘치고 건강도 되찾는 ‘일석이조’의 행운이 가득한 해로 인식했다는 얘기다. 이런 기해년의 첫 명절인 설(구정)은 여러 면에서 의미가 깊어 보인다. 집안 어르신들의 건강을 기원하고, 어르신들로부터 듣는 덕담들이 ‘황금돼지의 해’에 맞이하게 될 행운의 출발점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설날 하면 떠오르는 대표 음식
설날 하면 떠오르는 대표 단어는 세뱃돈과 떡국일 테다. 세뱃돈은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주는 특별한 용돈이다. 어른들이야 한 살 더 먹는 것이 ‘괴롭고도 슬픈’ 일이겠지만, 천진난만한 아이들에겐 더없이 즐겁고 기쁜 이벤트다. 어른이 되면 왜 그리 해보고 싶은 일이 많은지, 아이들은 손꼽아 어른이 되길 학수고대한다. 때문에 아이들에게 설날은 추석보다 훨씬 더 기다려지는 명절로 통한다. 그토록 먹고 싶은 나이도 먹고 어른들에게 세배하고 돈까지 받으니, 아이들에겐 그야말로 일석이조의 기쁨이다. 나이 먹는 게 싫은 어른들과 정반대다. 무병장수와 풍요를 상징하는 떡국에도 나이와 관련한 의미가 내포돼 있다. 조선 시대 세시풍속을 담은 <동국세시기>에는 떡국을 뜻하는 ‘첨세병(添歲餠)’이란 단어가 나온다. 세월, 즉 나이(歲)를 더하는(添) 떡(餠)이란 의미다. 조선 정조 때 문장가로 이름을 떨친 이덕무는 ‘첨세병’이란 제목의 시조에서 다음과 같이 읊기도 했다.
  • 첨세병 천만번 방아질에 눈빛이 둥글게 되니
    신선 부엌의 금단과 닮았네
    해마다 나이를 더하는 것이 싫으니
    슬프구나 이제는 먹고 싶지 않네
이덕무는 또 다른 저작 <세시잡영>에 ‘섣달그믐만 되면 슬퍼진다’고 썼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에 대한 서글픈 감회와 인생의 무상함에 대한 사색이 담긴 작품이다. 2000년 6월에 발매된 2집 앨범에서 그룹 플라워가 어릴 땐 어른이 되고 싶고, 어른이 되어선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슬픈 아이러니(운동화)’로 표현한 것을 보면, 나이에 대한 감성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다.
지역마다 떡의 모양과 조리법 달라
전통 방식에 따르면 떡국의 기본 육수는 ‘장국’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매순이 쓴 <열양세시기>에 ‘장국이 펄펄 끓을 때 엽전처럼 얇게 썬 떡을 장국에 넣는다’고 쓴 것에서 장국 육수를 추론해볼 수 있다. 김매순은 ‘때론 꿩과 닭고기, 소고기 등으로 맛을 낸다’고 쓰기도 했다. 일단 장국이 육수의 기본이긴 했지만, 다양한 고기로 육수를 만들어 먹었음을 짐작케 한다. 우리 조상들은 대부분 긴 가래떡을 엽전 모양으로 썰어 떡국을 만들었지만, 개성 사람들은 유독 조롱박처럼 생긴 조랭이 떡국을 즐겼다. 개성(옛 개경)은 고려의 수도였다. 때문에 고려에 대한 추억을 누구보다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도시가 바로 개성이다. 이런 면에서 태조 이성계가 고려를 멸하고 조선을 건국했을 때 개성 민심은 썩 좋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세시풍속사전>에 따르면, 홍선표는 1940년에 쓴 <조선요리학>에서 ‘가래떡을 어슷어슷 길게 써는 것은 전국적이지만 개성에선 고려의 신심(臣心)으로 조선을 비틀어버리고 싶다는 뜻에서 떡을 비벼서 끝을 틀어 경단 모양으로 잘라내어 생떡국처럼 끓여 먹는다’고 썼다. 고려에 대한 적개심이 조랭이 떡국을 탄생시켰다는 주장으로 이해된다.

개성이 조랭이 떡국으로 유명하다면 충청북도는 미역과 들기름을 넣어 진하게 우려낸 떡국이 유명하다. 그런가 하면 전라북도는 두부 떡국을 해 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육수는 닭을 우려내 만들고 여기에 두부를 납작하게 썰어 넣은 부드러운 맛을 더한다. 경상북도에선 엽전 모양이 아닌 둥근 태양 모양으로 가래떡을 썰어 떡국을 만든다. 경북 사람들은 떡국에 매생이와 굴을 넣어 시원한 맛을 즐겼다고 한다. 충청남도 사람들은 떡 반죽에 충남의 특산물 중 하나인 구기자를 넣어 구기자 떡국을 만들어 먹는다. 구기자는 ‘불로장생초’라 불릴 만큼 몸에 좋은 영양소가 풍부한 열매다. 충남 중에서도 청양이 구기자의 본고장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알고 먹으면 더욱 맛있는 떡국이다. 이번 설날엔 모처럼 떡국에 고향 얘기를 반찬 삼아 가족 간의 정을 싹틔워보면 어떨까.

댓글 총 0

LOGIN
로그인
로그인

닫기
웹진 회원가입

현대모비스 임직원만 회원가입 가능합니다.
직원여부 확인을 위해 사원번호를 입력해 주세요.

닫기
웹진 회원가입

귀하의 회사메일로 인증코드가 발송되었습니다.
인증코드 번호를 입력바랍니다.

닫기
웹진 회원가입

인증번호를 통하여 본인 확인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사용하실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닫기
비밀번호 재발급

비밀번호 재발급을 위하여 사원번호(이메일 주소)를 입력하세요. 본인 확인 인증번호가 발송됩니다.

@mobis.co.kr

닫기
비밀번호 재발급

귀하의 회사메일로 인증코드가 발송되었습니다.
인증코드 번호를 입력바랍니다.

닫기
비밀번호 재발급

인증번호를 통하여 본인 확인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사용하실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닫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