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설경과 옛이야기 가득한 명산
평창 오대산

평창 오대산은 숲이 깊고 산세가 부드럽다. 어머니의 품처럼 넉넉하고 아늑하다. 가까운 설악산보다도 멀리 남쪽의 지리산을 닮았다.
너른 산자락에는 아름다운 사연과 전설이 곳곳마다 서려 있다. 우리나라 문수신앙의 성지답게 경건함과 신비감마저 느껴진다.
한겨울의 오대산은 적설량도 많아서 한 폭의 산수화처럼 아름다운 설경을 연출한다.
글과 사진. 양영훈(여행작가)
오대산의 주봉은 비로봉(1,563m)이다. 동대산(1,434m), 두로봉(1,422m), 상왕봉(1,491m), 비로봉(1,563m), 호령봉(1,561m)의 다섯 봉우리가 부챗살처럼 펼쳐져 있다.
오대산은 원래 중국 산시성에 위치한 청량산의 별칭이다.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590∼658)가 당나라에서 유학할 당시 공부했던 곳이라고 한다. 자장율사가 귀국한 뒤에 온 나라를 돌아다니다가 중국 오대산의 산세를 닮은 산을 발견하고 ‘오대산’이라 이름 붙였다고 전해진다.
언제 걸어도 기분 좋은 ‘천년의 길’
오대산은 큰 눈 내린 겨울철에도 오르내리기가 쉽다. 월정사를 거쳐 상원사 입구까지 도로가 나 있기 때문이다. 오대산의 설경은 월정사 초입에서부터 장관을 이룬다. 일주문에 들어서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멋진 전나무숲길이 시작된다. 오대산의 명품 트레킹 코스인 선재길의 시작점도 이곳이다.
월정사 입구의 전나무 숲길은 ‘천년의 길’이라고도 불린다. 1,800여 그루의 아름드리 전나무가 늘어선 이 길은 사시사철 언제 걸어도 기분 좋다. 1km쯤 이어지는 전나무 숲길을 자분자분 걷노라면, 전나무 특유의 진한 피톤치드 향이 머릿속까지 상쾌하게 한다. 눈 내린 날의 설경도 환상적이다. 우람한 전나무들조차 쌓인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가지마다 축축 늘어진다. 한 줄기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 때마다 안개 같은 눈보라가 숲의 정적을 일깨우곤 한다.
월정사는 신라 선덕여왕 12년(643)에 자장율사가 창건했다. 오대산 일대에서는 가장 규모가 크고 유서 깊은 고찰이다. 그러나 옛 모습은 별로 남아 있지 않다. 한국전쟁 당시 모든 건물이 불타버린 탓이다. 다행히도 팔각구층석탑(국보 제48-1호), 석조보살좌상(국보 제48-2호), 상원사중창권선문(국보 제292호) 등의 귀중한 문화유산이 지금껏 남아 있어 전성기의 모습을 짐작케 한다. 월정사 팔각구층석탑은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석탑이다. 전체 높이가 15.2m로 우리나라의 다각다층석탑으로는 가장 높다. 또한 층마다 지붕돌의 추녀 끝에 매달린 작은 풍경이 가녀린 실바람에도 맑고 고운 풍경 소리를 은은하게 쏟아낸다. 석탑 앞에는 무릎을 꿇고 공양(供養)을 올리는 아름다운 자태의 석조보살좌상이 있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좌대에 앉은 보살상의 복스러운 얼굴도 친밀감이 느껴지지만, 보살의 오른팔 밑에 있는 동자상도 사람들의 눈길을 붙잡는다. 무념무상의 표정으로 먼 산을 바라보는 듯한 모습이 그지없이 천진하다. 하지만 석탑 앞의 이 보살상은 복제품이다. 진품은 성보박물관 안에 봉안돼 있다.
  • 월정사 일주문에서 상원사까지 10km쯤 이어지는 선재길
  • 월정사 팔각구층 석탑과 석조보살좌상
선재길의 끝에서 만나는 상원사
월정사 주변의 설경만으로도 이미 마음은 넉넉하다. 하지만 월정사 일주문에서 줄곧 계곡을 따라 상원사까지 이어지는, 총 길이 10km의 선재길을 걸으면 훨씬 더 풍성한 설경을 감상할 수 있다. 올겨울부터는 대설경보가 내려질 정도의 폭설만 아니면 선재길 탐방이 허용된다. 수북이 쌓인 눈에 온몸을 묻고 겨울잠에 빠진 오대산 계곡의 풍광은 그지없이 아름답다. 또한 매서운 삭풍이 휘몰아칠 때마다 눈보라가 하얗게 흩날리는 광경도 인상적이다. 선재길을 걷다가 추위를 견디기 어렵거나, 걷는 게 힘이 들면, 바로 옆의 찻길을 가끔씩 오르내리는 시내버스를 잡아타면 된다.
비로봉의 동남쪽 기슭에 자리 잡은 상원사는 신라 성덕왕 때인 705년에 창건되었다. 성덕왕은 효명 태자 시절에 보천 왕자와 함께 오대산 중대에서 1만 문수보살을 친견했다고 한다. 조선의 7대 임금인 세조도 상원사와 매우 각별한 인연을 맺었다. 오랫동안 등창으로 고생하던 세조가 이곳에서 기도하던 중 문수보살을 만나 불치병을 깨끗이 치료했다는 이야기가 민간에 널리 퍼지면서 오대산 문수신앙이 더욱 번창하게 되었다. 이적을 경험한 세조는 상원사를 왕실의 원찰로 삼고 절 이름을 상원사로 바꾸었다.
아름드리 전나무가 열병하듯 늘어선 월정사 ‘천년의 길’
신라 성덕왕 때인 705년에 창건된 상원사(사진 게티이미지)
상원사 동종과 문수동자상 이야기
성덕대왕신종(일명 ‘에밀레종’)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종으로 꼽히는 상원사 동종(국보 제36호)도 세조의 명으로 이곳에 옮겨졌다고 한다. 본래 안동부의 어느 절에 있었던 이 동종은 조선 왕조의 억불숭유정책으로 인해 안동 관아의 누문에 매달려 있었다. 세조가 상원사에 바치기 위해 소리가 가장 아름다운 종을 수소문한 끝에 찾은 것이 바로 이 종이다. 상원사 동종은 성덕대왕신종보다 45년이나 앞선 725년에 제작되었다. 높이 167cm, 종 입구의 지름은 91cm로 아담한 편이다. 몸통과 용뉴(종을 매다는 고리)에는 당초문, 비천상 등의 문양이 빼어난 솜씨로 조각돼 있다.
특히 천의(天衣)를 휘날리며 구름 위를 나는 주악비천상의 자태가 빼어나다. 더욱이 종소리가 천상의 선율처럼 신비스럽고 낭랑하다. 하지만 지금은 종소리를 들을 수 없다. 종을 보호하기 위해 타종을 금한 탓이다. 상원사의 또 다른 국보인 문수동자상(국보 제221호)은 세조가 직접 친견했다는 문수동자의 모습을 재현한 것이라고 한다.
열 살 남짓한 어린아이의 앳된 얼굴에 둥글게 말아 묶은 머리카락을 머리 양쪽에 고정시키고 가슴에는 화려한 목걸이를 장식했다. 이 불상의 몸통 속에서는 지난 1984년에 부처의 진신사리, 세조의 저고리 두 벌 등 몇 가지의 복장(腹藏) 유물이 발견되어 보물 제793호로 지정되었다.
주악비천상이 세밀하게 조각된 상원사 동종 세조가 친견했다는 문수동자를 재현한 상원사 문수동자상(왼쪽)
상원사를 지킨 방한암 스님의 일화
상원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오늘날까지 온전히 남아 있는 것은 한국전쟁 당시 목숨을 걸고 상원사를 지킨 방한암 스님(1876~ 1951)의 공이 절대적이다. 한국전쟁이 한창 치열하던 무렵, 후퇴 작전을 펴던 국군은 오대산 일대의 사찰이 적군의 근거지가 될 수 있다며 모두 불태우기로 결정했다. 국군이 월정사를 먼저 불태우고 상원사에 도착했더니 한 노승이 홀로 절을 지키고 있었다. “절에 불을 놓을 것이니 자리를 피하라”고 군인들이 말하자, 방한암이라는 노승은 “이 법당과 함께 불에 타서 소신공양하겠노라”며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결연한 의지에 감화를 받은 군인들은 법당 문짝만 뜯어 소각해서 절을 불태운 것처럼 보이게 했다. 이 일화는 당시 정훈장교로 현장을 지켜본 소설가 선우휘 씨가 <상원사>라는 단편소설로 소개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졌다.
겨울의 모든 것, 대관령면
이맘때쯤의 겨울철에 1박 2일 이상의 일정으로 평창을 찾았다면, 대관령면을 지나칠 수 없다. 2018평창동계올림픽의 메인 경기장이었던 알펜시아와 국내 최대의 스키장이 자리 잡은 곳이다. 동화 같은 설경을 보여주는 대관령양떼목장과 봄꽃보다 아름다운 눈꽃을 감상할 수 있는 대관령국사성황당도 있다. 한겨울의 주말과 휴일마다 수많은 사람이 줄지어 찾는 선자령 눈길 트레킹 코스도 여기에 있다. 대관령면 일대에서는 매년 1월에 대관령눈꽃축제가 열린다. 겨울철 내내 대규모 황태덕장도 곳곳에 들어선다. 이 모든 것이 유달리 풍성한 눈과 매서운 추위 덕택이다. 대관령면의 면 소재지인 횡계리와 인근의 차항리, 용산리, 수하리 마을 사람들에게는 눈과 추위가 생업의 가장 큰 밑천이다. 진짜 겨울이 그리운 사람들에게 평창 대관령면은 천국이나 다름없다.
  • 동화 같은 설경을 보여주는 대관령양떼목장
  • 겨울철이면 횡계리 곳곳에 들어서는 황태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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