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풍요로워지는
문화의 아카이브 파주

깊어가는 겨울이 만물의 속도를 느리게 한다. 푸른 생기가 감돌았던 거리의 풍경들은 한층 차분하게 가라앉고,
사람들은 한 해의 시작점에서 스스로를 돌아본다. 멈춘 듯 흐르는 겨울에는 유독 따뜻한 차와 함께 즐기는 느긋한 사색이 절실해진다.
느려지는 생각과 느려지는 발걸음이 허락되는 곳 파주. 지금, 그곳에 내 마음을 놓아두자.
글. 문나나(광고뉴미디어팀 과장) / 사진. 이승우(광고뉴미디어팀 차장)
  • 오래된 책을 만날 수 있는 ‘문발리 헌책방골목 블루박스’
  • 각계각층에서 기증한 책으로 조성한 ‘파주 지혜의 숲’
책 향기 가득한 파주의 서재
마치 책의 허파 속으로 들어온 것만 같다. 걸음의 시작부터 끝까지 나를 이끄는 이 공간은 온통 책으로 가득하다. 각계각층의 학자와 전문 기관에서 기증한 책으로 조성된 이곳은 ‘파주 지혜의 숲’이다. 저마다 원하는 책을 골라 곳곳에 마련된 테이블에 앉아 자신만의 세계로 빠져든다. 독서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도 이곳에 들어서기만 하면 거짓말처럼 서가 앞 붙박이가 된다. 열망하는 세계에 대한 지적 탐닉은 이 공간을 고요한 침묵으로 가득 채운다. 오롯이 나와 책 속의 세상만이 존재하는 듯한 새로운 경험이 시작되고 생각이 자란다. 보물찾기를 하듯 오래된 책을 만나고 싶은 순간이 있다. ‘문발리 헌책방골목 블루박스’는 북카페 내부의 작은 길을 따라 가며 비치된 책을 볼 수 있는 아늑한 공간이다.
한 평 남짓한 작은 서재는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사색을 즐기고 싶은 사람에게 안성맞춤이다.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한쪽에 놓인 의자에 살며시 등을 기대고 앉는다. 누군가의 손때가 남아 있는 오래된 책. 책을 읽는 내내 책 주인은 어떤 감정을 가졌을까 상상해본다. 헌책이 주는 즐거움은 알지 못할 누군가와의 대화일지도 모른다.
우리 아이들의 생각은 매일매일 다르게 자라난다. 그래서 아이들에겐 책을 읽는 순간에도 대화와 교감이 필요하다. ‘어린이도서관 밀크북’은 아이들이 마음껏 책을 읽고 나즈막한 목소리로 부모 또는 친구와 대화를 할 수 있는 어린이를 위한 북카페다. 외부 풍경과 햇살을 받아들이는 개방적인 인테리어와 산뜻한 분위기는 보고 싶은 책을 찾아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책 산책’을 즐기게 한다. 어른을 위한 도서도 함께 마련되어 있고 카페도 겸해 있는 곳이기에 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사색을 즐기기에 제격이다.
어린이를 위한 ‘어린이도서관 밀크북’
자음과 모음의 아름다운 하모니, 활판인쇄 박물관
세계에서 가장 많은 활자를 보유하고 있는 곳이 파주에 있다. 활판인쇄 박물관인 ‘활자의 숲’은 우리나라의 활판인쇄술을 지키고 전수하고자 만든 공간이다. 이곳에 있는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인쇄기는 모두 실제 가동이 가능할 만큼 잘 관리되어 있는데, 연식이 ‘유물’이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오래된 것이 많다. 이곳을 찾으면 활판인쇄를 하고 오침제본 책을 만드는 체험도 할 수 있다. 자신의 이름이나 원하는 문구를 활판으로 조합하여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도장이나 액자를 만드는 즐거움도 놓치지 말자. 내부에는 특별한 공간이 있는데 바로 3·1 독립선언문을 활판으로 찍어낸 옛 보성사를 재현한 곳이다. 세계 최초의 활판인쇄 국가답게 보성사는 최고의 시설과 뛰어난 인쇄 기술로 민족의 강인한 정신을 글을 통해 전파하려 했다. 마침 2019년은 독립 100주년이 되는 해라 KBS에서 다큐멘터리를 촬영 중이라고 하니, TV를 통해서도 활판인쇄 박물관의 보성사를 만나볼 수 있겠다.
  • 활판인쇄박물관 ‘활자의 숲’
  • 활판인쇄와 오침제본 체험도 할 수 있다.
납으로 제작된 활자는 그 무게만 17톤이 넘고, 수는 3,267만 8,000개에 달한다.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예술을 담은 예술,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파랑(波浪)의 한 조각을 가져와 땅 위에 올려둔 듯하다. 백색의 건물 곡선은 유기체처럼 움직이는 듯 모든 공간을 하나로 연결하고 있다. 포르투갈의 건축가인 알바루 시자가 설계한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예술품을 전시하는 공간이지만 건축물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작품이다. 2019년 1월 13일까지 열리는 내부 전시는 젊은 작가들이 참여한 작품으로 작가가 생각하는 예술과 사회의 관계를 판타지를 통해 풀어낸다. 느린 걸음으로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어느새 물이 흐르는 듯한 동선을 따라 뮤지엄의 넓은 공간을 다 돌아보게 된다. 새삼 건축 미학보다 사용자의 편의를 더 우선에 두고 설계한 건축가의 배려가 느껴진다. 무심한 듯 자연스러운 공간이 주는 편안함. 작품을 통해 사유하는 즐거움을 얻는 건 덤이다.
명필름아트센터
작은 영화의 도시, 명필름아트센터
영화 감상, 영화 제작, 영화 학교 등 영화와 관련된 모든 것이 한 공간에 담겨 있다.
‘명필름아트센터’는 우리가 잘 아는 <공동경비구역JSA>, <건축학개론> 등의 영화 제작에 참여한 영화사 명필름이 설립한 문화 공간이다. 국내 대표적인 건축가 승효상 씨가 설계한 이곳은 두 개의 건물을 연결하여 영화관, 북카페, 공연장과 영화 제작 및 교육 시설이 들어서 있다. 지하 1층 영화관 로비에는 예술영화나 고전영화를 주로 상영하는데, 테마별 기획 상영도 수시로 열린다. 명필름랩에서 발굴한 실제 신예 영화인들의 작품도 상영하니 미래 영화 거장의 데뷔전을 만날지도 모를 일이다. 가끔 영화를 통해 타인의 삶을 바라보며 생을 사유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그런 날엔 이곳 명필름아트센터에 들러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테다.
파주출판단지는 문화의 아카이브다. 처음에는 도서와 출판을 콘셉트로 시작했지만 건축, 디자인, 영화, 전시, 공연을 아우른 복합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 중이다. 이제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을 통해 콘텐츠는 향유되고 새로운 모습으로 확장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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