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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부르는 노래

비긴 어게인

뉴욕을 일컬어 ‘영혼을 잃어버린 도시’라고 말한 건 영화 <리빙보이 인 뉴욕>이었다. 모든 것을 가진 도시지만 어딘가 외롭고 허전함을 느끼는 곳,
비어 있음을 느끼지만 모두가 모른 척하는 곳이라 했다. 어디 뉴욕만 그럴까. 바쁘게 살고, 많은 것을 누리고 있지만 어딘가 허전함을 애써 외면하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자화상인 것이다.
글. 김은경(시인, <영화의 심장소리> 저자)
평범한 일상을 빛나게 하는 음악의 힘
영화 <비긴 어게인>은 <원스>로 친숙해진 아일랜드 감독 존카니가 차가운 도시, 뉴욕 곳곳을 음악으로 아름답게 물들이는 서정적인 영화다. <원스>가 그랬듯이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를 성장시키고 치유하는, 따뜻한 음악 영화다. 싱어송라이터 그레타는 갑자기 유명세를 치르게 된 남자친구 데이브와 뉴욕에 온다. 스타가 된 데이브는 이미 예전의 그가 아니다. 그의 변심을 알아차리고 떠나는 그레타. 상처 입은 그녀의 앞에 반쯤 폐인이 된 댄이 나타난다. 실패한 음반 제작자인 댄은 우연히 진심 어린 그레타의 노래를 듣고 음반 제작을 제안한다.
녹음 스튜디오를 빌릴 돈이 없는 그들은 뉴욕의 거리 여기저기서 노래를 부르고 녹음을 한다. 음악의 힘은 ‘진정성’이라 말하며, 자신이 부르고 싶은 노래를 만들고 스스로를 위해 노래하는 그레타를 보고, 댄의 지친 마음도 조금씩 회복되어간다. 그리고 단절되었던 가족과 소통하는 방법까지 배우게 된다. 그레타와 댄이 함께 음악을 들으며 뉴욕의 밤거리를 걸어 다니는 장면이 무척 아름답다. 둘은 영화 <카사블랑카>의 주제곡 ‘As Time Goes By’를 듣고, 프랭크 시나트라의 ‘Luck Be A Lady’를 듣는다. 매혹적인 올드팝이 그들의 주변을 근사하게 물들인다. 댄은 평범한 순간을 마법처럼 바꾸는 음악의 힘을 말한다. “이래서 음악이 좋아. 평범한 일상도 진주처럼 빛나게 하거든.”
힐링을 선사하는 버스킹 무비
이 영화는 국내 개봉관에서 340만 명의 관객 수를 기록했다. 작품성이 탁월하다고 할 수 없는 소소한 음악 영화에 왜 그토록 많은 이들이 열광했을까? 그레타의 남자친구로 열연한 애덤 리바인이 부른 ‘Lost Star’도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누구나 선망하는 도시 뉴욕의 곳곳을 수놓는 근사한 음악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배우들, 권모술수도, 배신자도 없는 정직한 사람들. 대형 제작사의 입김에 주눅 들지 않고 당당히 자기 목소리를 내는 주인공. 사실 보기 드물게 건전한 영화였다. 흥행의 첫 번째 힘은 음악이겠지만 자극적인 것에 지친 이들이 찾은, 휴식과도 같은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존 카니 감독은 <원스>의 배우 글렌 한사드와 함께 밴드 ‘더 프레임즈’ 출신이다. 남다른 음악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것도 음악인 출신이기 때문일 것이다. <원스>, <비긴 어게인>, <싱 스트리트>를 잇는 음악 영화 3부작으로 이제는 음악 영화의 거장이라 불리는 그는 늘 각본, 감독을 겸한다. 그레타가 작곡과 노래를 겸한 싱어송라이터인 것을 연상시킨다.
그레타는 감독의 분신이 아닐까? 마크 러팔로가 연기하는 댄은 2013년에 죽은, 감독의 형 모습 그대로라고 한다.
어느 인터뷰에서 감독은 그레타 역의 키이라 나이틀리가 특권을 요구했다며 비난했다. 그 뒤 사과했다는 후문이 들리긴 하지만, 이미 대스타인 그녀의 행동이 용납되지 않았다는 건 할리우드시스템에 대한 반발이었는지 모른다. 결국 감독은 다시 아일랜드로 돌아가 정말 만들고 싶었던 작품, 자신의 어린 시절이 담긴 <싱스트리트>를 찍는다. 모르긴 해도 다시 할리우드에서 작품을 만들 것 같지는 않다. 그레타가 대형 음반 제작사와 손잡지 않고 자신만의 음악을 지켜나간 것처럼. 그런 의미에서 그레타는 감독의 분신인 거다. 감독이 ‘배우가 아닌 슈퍼모델’이라고 비난했던 대스타가, 대형 제작사의 상업 시스템에 반발하는 역할로 나온 건 사실 아이러니다. 시스템에 저항하여 독립적인 길을 가겠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영화가, 실은 철저히 상업적인 계산과 대형 자본에 의해 만들어진 것은 씁쓸한 감이 있다.
‘처음 마음’을 간직한다는 것
명배우 알 파치노가 주연한 <대니 콜린스>라는 영화가 있다. 대니 콜린스는 슈퍼스타가 된 록 가수다. 그는 돈과 명예와 여자, 원하는 건 뭐든지 손에 넣을 수 있는 위치에 있지만, 내면은 철저히 망가진 채 나이가 들었다. 그런 그에게 오래된 편지 한 통이 전해진다. 무명 시절, 그의 인터뷰를 보고 쓴 존 레논의 편지였다. “네가 유명해져도 달라질 건 없어. 네 음악, 네 생각에 충실해.”라고 쓴 친필 편지였다. 대니 콜린스는 중얼거린다. “진작 이 편지를 받았더라면….” 그러나 이미 흘러버린 세월과 함께 모든 것은 변해버렸다.
뒤늦게 그는 자신이 잃어버린 것들을 찾아 나선다. 실화에서 소재를 얻은 영화로, ‘처음 마음’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인기나 성공이 얼마나 물거품 같은 것인지를 깨닫게 한다. 그리고 진정으로 지켜야 할 것이 무언지,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비긴 어게인>의 주인공, 그레타가 돋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상업 시스템에 발을 들이면 더 이상 스스로를 위한 노래, ‘진정성’이 묻어나는 노래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타의에 의해 길들여지는 것을 거부한 그녀기에, 마지막 장면에서 홀로 자전거를 타며 환하게 미소 지을 수 있었다.
그렇게 그녀는 스타가 되어 변심한 남자친구와 달리 ‘처음 마음’을 간직할 수 있었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마음을 지키는 일’인지 모른다.
우리는 언제나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작가 앤 모로우 린드버그는 말했다. “책임과 의무와 활동의 회전 바퀴 중심에 고정된 축이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삶의 회전 바퀴에 끼여 헉헉대지 않으려면 고정된 축이 있어야 한다는 것, 즉 마음의 중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 해의 끝에서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나의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어떤 상황에도 변하지 않는,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영화가 가르쳐주는 답은 이렇다. 대니 콜린스는 잊고 있던 아들을 찾아가, 병든 그의 곁에 있어주었다. 그레타는 노래 수익금을 함께 참여한 무명 음악가들과 나누었다. 댄은 딸과 부인이 있는 집으로 다시 가기 위해 짐을 쌌다. 결국은 사랑하고 사랑받는 관계가 모든 것이라고 가르쳐준다.
한 해의 끝에서 다시 나 자신에게 묻는다. 너의 관계는 어떠했는가? 사랑하고 사랑받았는가? 나를 성장시킨, 나로 인해 성장한 만남이 얼마나 있는가? 생각하면 자신이 없다. 하지만 Begin Again, 살아 있는 한 우리는 언제나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멋진 말이 아닌가. Begin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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