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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다스려야 마음이 바로 선다

중심(中心)

‘몸의 중심은 어디일까?’ 이 질문을 받으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허리’라고 답할 것이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그 중요성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마음’의 ‘중심’은 어디일까? 몸의 중심인 허리처럼 마음의 중심을 선뜻 집어 말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답이 명확히 떠오르지 않을 땐, 질문을 바꿔보는 것이 좋다. “마음의 중심이란 무엇일까?”로 말이다.
글. 송창현(‘실전 직장인 심리학’ 브런치 매거진 작가)
사람 마음의 중심, ‘호메오스타시스’
심리학에서는 ‘마음의 중심’을 나타내는 용어를 만들어놓았다. ‘호메오스타시스(Homeostasis)’다. 호메오스타시스란 Homeo(Same)와 Stasis(to stay)의 합성어로 우리말로는 ‘항상성(恒常性)’이라고 부른다. 우리 몸의 내부 환경이 흐트러지려 하여도 그렇게 되지 않도록 조정하고, 또 실제로 흐트러져도 가급적 속히 원상으로 복귀하고자 하는 현상이다.
사람은 너무 배가 불러도 기분이 나쁘고, 너무 배가 고파도 그렇다. 너무 바빠도 힘들고, 너무 지루해도 견디지 못한다. 우리의 마음이나 기분도 마찬가지다. 소위 말해 너무 ‘업’되어 있어도 좋지 않고, ‘다운’되어 있어도 문제가 된다. 인간은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결핍된 부분을 메우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의 뇌 역시 이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호메오스타시스를 작동한다. 바로 ‘평정심’을 찾는 과정인 것이다. 중심을 지향하는 평정심은 ‘감정의 기복 없이 평안하고 고요한 마음’을 일컫는다. 한자로는 ‘평평한’이란 뜻을 내포하고 있고, 영어 사전을 들추어도 ‘밸런스(Balance)’라는 풀이를 쉽게 찾아낼 수 있다.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말란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직장은 그리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라 평정심을 갖기란 쉽지 않다.
순간순간 마음의 중심을 휘젓는 일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직장은 나 ‘개인’의 행복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단 ‘조직의 목표’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성격이나 일처리 방식이 제각각이기 때문에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개개인의 호메오스타시스가 달라, 누군가에게 편안한 상태가 누군가에겐 불편할 수 있는 변수도 무시할 수 없다.
직장에서 평정심이 흔들릴 때는?
이렇게 마음의 중심을 유지하지 못하면 우리는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 불안, 무기력, 실망 등 불행을 부르는 감정이 그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빨리 중심을 잡아 평정심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상사로부터 질책을 받았다고 생각해보자. 아마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 억울함과 슬픔, 분노 그리고 울컥하는 마음이 교차된다. 어쩌면 직장에서 ‘마음의 중심’을 잃게 되는 가장 비일비재한 순간일 것이다. 유관 부서나 업무 파트너와 의견 대립이 일어날 때도 마찬가지다. 당장 설득되지 않는 상대를 대하다 보면 이내 감정이 개입되고 마음의 중심이 흔들리다가 결국 평정심을 잃는다. 이외에도 줏대 없는 사람과 일하거나 의사 표현을 제대로 하지 않다가 기회를 보고 무임승차(?)를 하는 사람, 월급루팡의 기질을 보이는 사람들을 보면 평정심은 사라지고 만다. 마음의 중심을 가누지 못하는 경우는 나 자신으로부터도 온다. 그것은 ‘불안’에서 야기된다. 아직 닥치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 순간순간 해야 하는 선택에 대한 두려움과 후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를 나의 운명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다. 또 직장인으로서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 하는 일’이 더 많다는 것도 평정심을 지키기 힘든 요인 중 하나다.
평정심을 갖기 위한 마음의 기술
그렇다면 마음의 중심은 어떻게 잡아야 할까? 중심을 잡는 것도 기술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당신은 지금 평형대에 올라와 있다고 생각해보자. 처음에는 신장개업을 한 상점 앞에서 춤추는 풍선처럼 허우적댈 것이다. 하지만 이내 중심을 잡고 나면 손쉽게 그 평형대를 건널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 허우적대는 행동이 쓸모없는 몸짓이 아니라, 중심을 잡기 위한 기술이란 것을 알아야 한다. 마음의 중심을 잡는 것도 마찬가지다. 오만 가지 감정을 겪고 허우적대봐야 중심을 찾을 수 있다. 연습이 필요하고 기술로 익혀야 한다. 과연 ‘평정심’을 갖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첫째, 내 마음의 ‘감정’을 알아차린다.
‘메타인지’는 70년대 심리학자인 존 플라벨에 의해 만들어진 용어다. 자신의 인지 과정을 한 차원 높은 시각으로 관찰/발견/통제하는 정신 작용을 말한다. 즉 자신의 생각에 대해 판단하는 일종의 자아성찰로, 자기 객관화라고도 할 수 있다. 자기 객관화를 하면 감정을 바라보고 불안을 줄일 수 있다. 사람은 보통 자신이 느끼는 좋지 않은 감정이나 불안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피하려는 경향이 짙다. 마주할 용기가 없고 불쾌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객관화하면 자신을 좀 더 들여다볼 수 있고, 그 감정과 불안에 대처할 수 있다.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닥치지 않은 것에 대한 걱정이나, 중요한 선택 앞에 우유부단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것을 받아들여 인정할 줄 아는 것이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문제를 해결하는 첫걸음이다.
둘째, 메시지와 감정을 분리하는 연습을 한다.
직장엔 일을 하러 가지만 일은 결국 사람이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스트레스나 감정 기복은 같이 일하는 사람들로부터 온다. 오늘 혹시 기분 나쁜 일이 있었는가? 평정심을 잃었던 근래의 어떤 상황을 생각해보면 분명 그것은 ‘사람’과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사람은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 감정을 섞는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말하려 노력해도 비언어적 요소가 가미되기 때문에 듣는 사람은 무언가를 느낀다. 사람의 표정, 말투, 억양과 당시의 상황 등이 모두 어우러지며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때 그 말에 담긴 ‘메시지’와 ‘감정’을 분리해서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상사가 “일 좀 제대로 하라”라고 말했다고 생각해보자. 감정이 상하고, 감정이 상하면 자기 방어를 한다. 자기 방어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게 하고 결국 ‘저 사람 왜 저래? 오늘 점심 메뉴가 마음에 안 들었나? 말을 좀 곱게 하면 안 되나?’로 귀결된다. 하지만 ‘메시지’와 ‘감정’을 분리하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우선 ‘감정’은 잠시 배제하고 ‘메시지’를 파악해본다. 아마 조금 전에 드린 보고서에 오류가 있었거나, 최근 마무리를 하지 못한 일에 대한 질책일 수 있다. 알고 보면 상사도 “앞으론 좀 더 세심하게 봐줄래?”란 말을 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감정’은 그 메시지가 파악되었을 때 느껴도 늦지 않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평정심을 위해선 분명 필요한 기술이다.
셋째, 다른 사람의 ‘감정’을 존중한다.
‘평정심’은 우리의 ‘감정’과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건 고도의 기술이다. 선천적으로 타고났거나 어떤 경험에 의해 습득했거나 또는 끊임없는 노력에 의한 것이다. 악플을 달거나, 성희롱을 하거나, 갑질과 같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일을 일으키는 사람들은 이러한 기술 즉, ‘평정심’이 없다. 자신이 중심을 잡지 못하니 다른 사람의 중심을 존중하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선 다른 사람의 행복도 존중해야 한다. 내 ‘마음의 중심’만큼 다른 사람의 그것도 중요하다. 때론 나의 과한 열정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되지 않는지 살펴봐야 한다. 내 ‘마음의 중심’과 다른 사람의 그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한마디 말부터 상대방의 기분을 배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위 세 가지 기술을 발휘할 수 있는 전제조건은 바로 ‘알아차림’이다. 나의 감정 그리고 마음의 중심을 실시간으로 느끼고 깨닫는 것. 그러기 위해선 자신의 감정을 ‘글’이나 ‘말’로 표현해보는 것이 좋다. 심리학에선 이것을 ‘감정 지식화’라 한다. 내가 느낀 감정이 ‘분노’인지, ‘슬픔’인지, ‘기쁨’인지를 그저 흘러가게 두지 말고 직접 표현하고 느껴보는 것이다.
양식은 별도로 없다. 자신의 감정을 마주할 용기만 있으면 된다. ‘평정심’을 잃었다 느낄 때, 메모지에 현재 느끼는 감정을 단어로 써보자. 메모지가 없으면 속으로 그 단어를 떠올려도 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감정에 반응할 줄만 알았지, 생각보다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마주한 적은 별로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별거 아닌 거 같지만 고도의 기술은 탄탄한 ‘기초’에서 나오기 마련임을 잊지 말자. 그러면 우리는 어느새 우리 ‘마음의 중심’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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