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줏빛 와인 향기로 가득
보르도에서 즐기는 프랑스 감성 여행

Bordeaux

우리는 일생을 살면서 많은 여행지를 둘러본다. 하지만 여행을 떠나는 사람의 대다수가 한 나라의 수도 정도만을 방문하기에 바쁘다.
마치 서울에서 춘천 닭갈비와 포천 이동갈비를 먹듯이 말이다. 짧은 여행 일정이니, 각 국가의 대표 도시를 여행하는 게 당연할 수도 있지만
한국인 여행자 200만 명이 찾는 평범한 여행지가 식상하다면 소도시 혹은 특산물 산지를 찾길 추천한다. 그중 정통 보르도 와인과
프랑스의 문화를 느끼고 싶다면 보르도 이상 설레는 유럽 여행지는 없다. 프랑스 보르도의 매력 속으로 당신을 초대한다. Bienvenue!
글. 양광수(트래블바이크뉴스 기자)
지중해의 바람을 타고 프랑스 여행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보르도에 관해 물어보면 백이면 99명은 와인을 떠올린다. 만약 당신이 지천으로 널린 포도원과 와이너리만을 상상했던 여행자였다면 보르도에 도착하자마자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찍부터 농업과 상업, 목축과 어업이 발전해 거대한 도시 문화권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보르도는 와인이 유명한 지역이면서, 프랑스 남서부를 대표하는 인구 77만의 대도시이다. 보르도(Bordeaux)라는 명칭은 ‘물 가까이’라는 뜻으로 지역 주변에 가론강이 흐르고 있다. 대서양으로부터 불과 98km 정도 떨어져 있어 주변국과의 무역이 활발하며, 여유 넘치는 남부 유럽식 라이프스타일, 화려하고 열정적인 축제 등이 프랑스 문화와 결합해 매력의 도시로 성장했다.

이런 까닭에 2000년 전부터 발전한 찬란한 유적지가 여행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보르도 곳곳마다 로마 시대의 행정관에서부터 중세시대의 도시 계획가, 14세기의 천재적인 건축가들이 시대를 아우르며 협력해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다양한 문화 유적을 보유한 덕분에 18세기 보르도는 ‘작은 파리’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다. 보르도의 생테밀리옹 와인 산지를 비롯해 항구 등 347개의 유적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을 정도다.
최근에는 프랑스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도시를 새롭게 정비하고 있는 중이다. 특히 트램이나 공공 편의시설과 같은 여행 인프라가 확충되면서 프랑스 내에서도 주목받는 여행지로 거듭나고 있다. 때문에 보르도를 여행하면 자연스럽게 프랑스 문화와 유럽의 역사를 동시에 만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고요한 시간의 속삭임 속으로
만약 당신이 보르도를 처음 방문하는 여행자라면 보르도 대성당부터 찾길 추천한다. 보르도 대성당은 그야말로 보르도를 상징하는 건축물로, 보르도의 역사와 함께한 유적이다.
5세기경에 지어졌다고 전해지는 대성당은 건설 이후 다양한 부침을 겪었다. 노르만 정복으로 814년에 파괴됐다가 11세기에 재건되기도 했다. 이후 프랑스 대혁명 시기에 한 차례 더 파괴되는 수난을 겪게 된다. 이후 19세기까지 복원사업을 진행해 1862년에 이르러야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이곳은 역사적 가치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가장 우아한 고딕 건축물로도 알려져 있는데, 많은 유럽의 왕족들이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릴 만큼 아름다운 성당으로 유명하다.

대성당을 구경하고 보르도 특유의 여유를 즐기고 싶다면 일상의 고민을 내려놓고 가론강가를 걸어보자. 강을 따라 프랑스의 풍경을 즐기다 보면 마치 하늘과 대지를 뒤집어놓은 듯한 넓은 광장을 만날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넓은 평면 분수를 가진 부르스 광장이다. 부르스 광장의 또 다른 이름은 ‘물의 거울’로, 이름처럼 분수에서 나온 물 위로 부르스 광장, 건물, 사람, 지중해의 맑은 하늘까지 비쳐 장관을 이룬다. 특히 여름에 찾으면 시원한 분수를 즐길 수 있어 여행의 즐거움을 더한다. 부르스 광장을 이용하는 팁으로는 노을이 지는 저녁에 방문할 것을 권한다. 물의 거울에 비친 야경은 프랑스에서도 손꼽히는 풍경이다.

18세기 고전 유럽식 건축물의 걸작인 보르도 국립 오페라 극장도 놓칠 수 없다. 그리스 로마신전을 연상시키는 이 극장은 파리 오페라 극장의 모티브가 되었을 정도로 그 규모와 아름다움이 남다르다. 극장의 내부는 크리스털과 금 장식으로 꾸며져 있고, 화려한 벽화는 여행자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매 시즌마다 보르도 국립음악단, 보르도 국립발레단의 공연을 포함해 다양한 예술 공연이 진행되고 있으니, 여행 전 일정을 확인해 공연을 보는 것도 보르도를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이다.
세월의 풍미를 느낄 수 있는 보르도 여행지를 찾는다면 보르도 와인 박물관이 제격이다. 오감을 만족시키는 여행지로 박물관의 외형부터 독특하게 디자인했다. ‘잔 속에서 흔들리는 와인의 모습’을 형상화한 이곳에서는 다양한 놀이, 공연, 감각 경험과 같은 시청각 매체를 이용해 와인을 복합적으로 즐길 수 있다. 특히 시음 클래스, 와인 콘서트, 와인 토론 등이 1년 내내 준비되어 있어 와인을 사랑하는 여행자라면 꼭 한 번 방문해야 할 명소이다.
한 잔의 와인으로 프랑스를 즐기는 법
문화 예술로 가득한 보르도라고 해서 와인 여행을 놓친다면 그야말로 팥 없는 붕어빵을 먹는 것과 같다. 알다시피 보르도 지방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세계 최대의 고급 와인 생산지로 유명하다. 보르도에는 약 7375개의 와이너리가 있으며 평균적으로 17헥타르에 달하는 포도밭에서 와인을 생산한다. 만약 그 규모가 상상이 안 간다면 서울 크기의 두 배에 달하는 포도밭에서 와인을 생산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보르도는 와인의 특성상 다양한 포도 품종을 블렌딩하기 때문에 매해 포도의 작황에 따라 그 맛이 천차만별이다. 프랑스 대표 품종인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를 주 품종으로 각 와이너리마다 2~3종류의 포도를 재배한다. 지역별로 토질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품종, 같은 생산자가 만들어도 다른 맛의 와인이 생산되는데, 이런 까닭에 빈티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와인 빈티지를 고급품과 하급품으로 나누는 기준으로 삼지만, 프랑스에서는 매일 소비되는 주류이다 보니 장기 보관에 적합한가 아닌가의 기준으로만 삼는다. 예를 들면 장기 보관에 적합한 빈티지(1982, 1988, 1989, 1990, 1996, 1998, 2000, 2005, 2006, 2009 등)와 빠른 소비가 필요한 빈티지(2007, 2011 등)로 나누는 식이다.

세계 최고급 와인으로 칭송받는 5대 샤토도 모두 보르도 와인이다. 애당초 그랑 크뤼클라세 등급은 나폴레옹 3세가 1855년 파리 박람회를 개최하기 위해 보르도 지역의 와인을 등급으로 구분한 데서 시작했으니 그럴 수 밖에 없다. 1등급 프리미에 그랑 크뤼, 이른바 5대 샤토는 샤토 마고, 샤토 라투르, 라피트 로칠드, 샤토 오브리옹과 무통 로칠드가 손꼽힌다. 하지만 이 기준은 1855년(단, 무통 로칠드는 2등급으로 떨어진 뒤 1973년 1등급으로 재편) 프랑스 보르도 지역만을 삼았기 때문에 현재 무조건 그랑 크뤼 등급만을 보고 와인의 품질을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실제로 낮은 등급의 와인이라도 취향에 따라 상위 등급보다 더욱 맛이 있는 경우도 종종있다. 와인을 사랑하는 여행자라면 보르도에서 와인 투어 프로그램을 이용해보자. 보르도에는 70여 가지의 와인 투어가 준비되어 있는데, 취향에 따라 와인 샤토 투어, 와인 바투어, 반나절, 원데이 투어 등 시간과 일정에 맞게 선택할 수 있다.
세계인을 유혹하는 미식을 와인과 함께
와인과 함께 프랑스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음식이다. 프랑스는 ‘세계 3대 미식 국가’로 201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정도로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프랑스의 미식은 관례적인 순서를 지향한다. 아페리티프(식전주)로 시작해 두 개 또는 네 개의 생선과 육류를 포함한 식사, 치즈, 디저트, 디제스티프(디저트 와인)로 끝난다. 식사를 또 하나의 문화로 여기는 프랑스인들은 와인도 식전주, 테이블 와인, 디저트 와인으로 구분해 마실 정도이다.

우리나라와 달리 만찬이 5~6시간 계속되는 프랑스의 분위기상, 술은 식사에서 빠질 수 없는 파트너이다. 식전주는 도수가 높은 와인을 선호하며, 테이블 와인은 음식 맛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즐길 수 있는 도수가 강하지 않은 드라이 와인을 선호한다. 프랑스의 식당에서 가장 저렴하게 즐길 수 있으면서도 고품질의 와인을 맛볼 수 있는 것이 바로 테이블 와인이다. 가장 기본적인 와인이기에 ‘우리 가게의 수준이 이 정도입니다’라는 일종의 척도와 같기 때문이다. 디저트 와인은 달콤한 맛으로 입맛을 정리한다. 특히 보르도에서는 소테른-바릇삭 지역의 귀부와인이 유명한데, 반건조한 포도알을 압착해 만들어 꿀처럼 나는 단맛이 특징이다. 더불어 귀부균에 의해 과즙 구성 물질이 변화가 생겨 일반적인 와인에서 맛볼 수 없는 풍미가 일품이다.
최근 몇 년 사이 보르도에는 스타 셰프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이 많이 생겼다. 특히 우리에게 잘 알려진 고든 램지 셰프의 ‘르 프레수아 다르정’은 물론, 필립에체베스트 셰프의 ‘르 카트리엠뮈르’, 피에르 가니에르 셰프의 ‘르 그랑 메종’은 보르도에서 꼭 방문해볼만한 맛집으로 손꼽힌다. 이외에도 미슐랭 레스토랑으로 선정된 ‘파비용 데 불르바르’, ‘생 제임스’, ‘프랭스누아’ 등을 만날 수 있으니 방문해보길 권한다.
가는 법
한국에서 보르도로 가는 직항은 없다.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서 보르도 국제공항까지 하루 6편의 항공편이 운행되며 1시간이 소요된다.
공항에서 다운타운까지 이동은 공항리무진 기준 30분, 기차로 이동할 경우 파리에서 생 장 기차역까지 2시간 소요되며, 하루 17편이 운행된다.
방문 시기
온난한 지중해성 기후로 연중 어느 때 방문해도 좋다. 하지만 보르도 와인 축제와 보르도 강축제가 열리는 6월과 포도 수확철인 9월에 방문한다면 더욱 많은 이벤트와 체험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다.
보르도 여행 팁
보르도에서 렌터카를 대여하지 않았다면 트램을 이용해보자. 시내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트램은 편도 티켓 1.50유로, 3일, 5일, 7일을 이용할 수 있는 정기권도 구입 가능하다. 보르도 관광 안내 사무소에서는 여행자를 위한 2박 3일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2박 더블 룸 1인 기준으로 2성급 호텔, 조식이 포함된다. 영어 가이드 동반 시내 관광, 와이너리 방문 및 시음, 주요 유적지 및 박물관, 미술관 무료 입장, 와인바 시음 등이 제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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