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고 찬란했던 여름날의 사랑

500일의 썸머

누군가 내게 물었다. 왜 그토록 영화를 많이 보느냐고. 나는 ‘외로움’ 때문이라고 했다. 늘 바쁜 남편과 어느새 내 손을 떠난 아이들 뒤에 남겨졌을 때,
내 옆에는 영화가 있었다. 여유 시간이 많아지자 혼자 영화를 보러 다녔다. 그러다 정말 좋은 영화를 만나면 친구들과 다시 보기도 했다. <500일의 썸머>를
개봉관에서 보고 너무 좋아서 친구들을 불렀다. 친구들의 반응은 예상만큼 열광적인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이 영화를 왜 그렇게 좋아했을까?
우선은 주인공 톰이 순수 청년인 것이 좋았다. 영화의 음악이 좋았고, 화면이 예뻤으며, 쿨하고 예쁜 여주인공 썸머도 좋았다.
무엇보다 실연이라는 아픔을 통해 한 사람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렇게 좋아했던 것 같다.
글. 김은경(시인, <영화의 심장소리> 저자)
사랑은 모두에게 흔적을 남긴다
<500일의 썸머>는 주인공 톰이 썸머를 만나고 헤어지는 500일간의 사랑 이야기다. 톰이 사랑한 여인의 이름이 썸머인 건 참 상징적이다. 봄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톰의 가슴에 다가온 그녀는 뜨겁고 찬란했던 여름날의 사랑을 남기고 떠나버린다. 썸머가 왜 자신을 떠났는지 톰은 끝내 알지 못한다. 썸머는 말한다. “그저 네 짝이 아니었던 거야”라고. 하지만 그 사랑은 두 사람 모두에게 흔적을 남긴다. 운명적인 사랑을 믿었던 톰은 더 이상 사랑을 믿지 못한다. 그러나 사랑을 믿지 않던 썸머는 톰과의 만남을 통해 운명적인 사랑이 있음을 믿게 된다.
영화의 프롤로그에 따르면 톰은 어릴 때 영화 <졸업>을 잘못 이해한 까닭에 특별하고 운명적인 사랑을 믿게 되었다는 것이고, 썸머는 부모님이 일찍 이혼한 탓에 사랑 따위는 믿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순수 청년 톰과의 만남으로 인해 썸머는 그런 사랑이 존재함을 믿게 되고, 마침내 운명처럼 만난 한 남자와 결혼을 결심하게 된다(슬프게도 톰이 아닌). 둘의 만남과 이별은 이렇게 서로의 생각을 바꾸어놓는다.
사랑을 믿지 않던 썸머는 해피엔딩에 이르렀지만, 사랑의 운명을 믿던 톰이 더 이상 믿지 않게 된 것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별의 아픔으로 폐인처럼 지내던 톰은 어느 날, 모든 것을 훌훌 털고 일어난다. 새 출발을 결심한 톰은 자신이 정말 원하는 일을 하기로 마음먹고 새로운 직장에 면접을 보러 간다. 그리고 자신의 다음 순서를 기다리던 아가씨와 몇 마디를 나눈다.
어쩐지 마음이 끌리고 대화가 통하는 아가씨다. 관계에서 늘 수동적이던 톰이었지만 이젠 용기를 내어 묻는다.
여름날의 아픔이 그를 조금은 더 성장시켰기 때문이리라. “끝나고 차 한 잔 하실래요?” 잠깐 망설이더니 승낙하는 그녀의 이름은, 어텀(Autumn)이었다. 뜨겁고 아팠던 여름날이 지나고 이제 막, 가을이 시작된 것이다. 그렇게 우연은 필연이 되고, 그 반짝이는 순간을 알아차리고 붙잡는 것은 오직 자신의 몫이다.
누구에게나 있었던 계절, 썸머
시인 릴케는 사랑이란 ‘두 개의 고독이 서로를 방어하다가 서로를 접하고 인사하는 것’이라고 했다. 사랑에 관한가장 아름다운 정의일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아름다운 ‘사랑의 인사’도 때가 되면 변한다. 그러면 우리는, 영화 <봄날은 간다>의 유명한 대사처럼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고 아프게 묻는다. 이 물음에 굳이 답을 하자면 “어떻게 사랑이 변하지 않겠니?”라고 해야 할 것이다. 계절이 변하듯 사랑도, 사람도 그렇게 변한다.
<사랑의 유휴기간은 3년>이라는 제목의 영화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열정적인 사랑의 유효기간은 2년 정도라고 한다.
과학이 밝혀낸, 사랑에 빠지게 하는 호르몬의 유효기간이 그렇다는 것이다. 호르몬의 유효기간이 끝난 후 어떻게 할 것인지는 각자의 몫이다. 그래서 ‘사랑은 강렬한 감정만이 아닌, 결의이고 판단이고 약속’이라고 한 에리히 프롬의 말은 여전히 우리를 각성시킨다. 이제는 아마 톰도, 썸머도 이 사실을 알았으리라. 강렬한 감정만이 사랑이 아닌 것을. 우리는 모두 한때 톰이었고 썸머였다. 인생의 뜨겁고 아픈 여름을 통과한 후 조금은 더 현명해진 그들은, 아니 우리는 기꺼이 다음 계절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사랑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힘들고 아팠던 인생의 모든 일들을 여름이라고 표현하면 어떨까? 이미 가버린 여름날을 아파하느라 내 옆에 와 있는 가을의 소중함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다만 그것을 염려해야 할 것이다. 그러다 문득 지나간 여름의 아픔이 다시 떠오를 때 이렇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은 내 인생에서 꼭 필요한 계절이었어”라고.
필자추천사랑을 주제로 한 영화
<봄날은 간다> 허진호 감독. 2001
사운드 엔지니어 상우와 라디오 PD인 은수는 프로그램을 위한 녹음 여행에 동행하면서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봄이 가고 여름이 오면서 관계는 삐걱거리게 되고, 헤어지자는 은수의 말에 상우는 괴로워한다. 사랑의 일상성과 보편성을 잘 드러낸 서정적인 영화.
<건축학개론> 이용주 감독. 2012
스무 살의 승민은 ‘건축학개론’ 수업에서 만난 음대생 서연에게 반한다. 함께 숙제를 하며 가까워지지만, 감정 표현에 서툰 승민은 마음을 고백하지 못한 채 오해로 멀어진다. 건축가가 된 그의 앞에 15년 만에 서연이 나타난다. ‘첫사랑’에 ‘건축’을 접목시킨 세련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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