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도 모양도 없는 물 같은 사랑

The Shape of Water

제90회 아카데미 감독상, 작품상 등 4관왕에 오른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는 불완전한 존재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끊임없이 표현해온
다크 판타지의 거장 기예르모 델 토로의 작품이다. 사람과 괴생명체 간의 사랑은 물론 흑인, 장애인, 게이 등 사회적 약자의 중심에 서서 이야기를
이끌며 철학의 핵심이자 상상력의 물질인 ‘물’을 로맨스 장르에 치환시켜 새로운 동화를 창조한다.
글. 심영섭(심리학자, 아트테라피 대표)
소련과 우주 개발 경쟁이 한창인 1960년대 미국. 들을 수는 있지만 말은 하지 못하는 엘라이자는 항공우주 연구센터의 비밀 실험실에서 야간 청소부로 일한다. 할리우드의 낡은 극장 위층에 세 들어 살고있는 그녀의 일상은 규칙적이다. 자정부터 일하는 그녀는 저녁에 일어나서 달걀을 삶고, 욕조에서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고, 옆집에 사는 늙은 화가 자일스의 안부를 챙긴다.
물고기가 물에서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상이다. 그러던 어느 날 실험실에 양서류를 닮은 괴생명체가 잡혀오고 엘라이자는 그에게 신비로움을 느낀다. 아가미와 비늘로 덮여 있지만 사람의 다리를 가진 아가미 인간. 그녀는 한눈에 이 괴물에게 반하고, 점심 식사로 가져온 삶은 달걀을 나눠 먹으며 교감을 주고받는다. 매일 가혹한 고문을 받고 연구를 당하는 생명체에게 동질감을 느낀 엘라이자는 산 채로 해부당할 위기에 처한 아가미 인간을 구출한다. 그리고 불완전한 자신을 편견 없이 보는 아가미 인간과 사랑에 빠진다.
괴물은 1960년대 영화와 1960년대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라 할 수 있다. 심리학이나 철학에서는 이런 괴물과 야수를 흔히 ‘타자’로 지칭한다. 60년대 할리우드 영화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킹콩이나 뱀파이어, 외계인이나 괴물들은 모두 주류 사회에서 벗어난 타자의 형상을 띠고 있다. 흔히 사람들은 익숙지 않은 타자를 마음속 깊이 두려워하는데, 영화는 이를 괴물의 탈을 씌워 스크린에 부활시킨다. 영화에서 이 타자들은 주류 사회의 질서를 흔들다가 피할 수 없는 종말로 생을 끝맺는다.
그런 의미에서 <셰이프 오브 워터>는 타자를 그리는 시선이 다르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괴물이 왕자로 변모하는 시나리오 대신, 오히려 괴물 그대로의 몸으로 엘라이자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과감하고 서정적으로 그려낸다. 미녀의 키스에도 야수는 야수로 남아 있고, 그 야수는 자비롭지만 잔인하고 섹시하지만 치유적인 ‘신’의 경지마저 깃들어 있다.
한편 연구소의 보안 책임자 스트릭랜드는 신성 모독적이며 배타적인 인물로 아가미 인간을 가두고 억압한다. 아가미 인간을 전기 고문하다 손가락이 잘려 접합하지만 기이하게도 잘려진 손가락은 검게 부식된다. 그가 마음먹고 산 캐딜락 역시 아가미 인간이 탈출하는 과정에서 부서진다. 이 모든 과정 안에서 그의 주류적 권력은 거세당하고 그 의미를 잃어간다. 스트릭랜드의 핏방울은 점점 흥건해지고 마침내 결정적인 장면에서는 괴물보다 더한 괴물의 형상으로 온몸에 피칠갑을 하고 나타난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스트릭랜드를 통해 냉전이란 부스러기 산물은 바로 자신 내부에 존재하는 타자성의 거부에 지나지 않음을 폭로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차이가 나는 다른 모든 것에 대한 폭압을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맞다’고 안주하려는 이들 말이다.
영화는 아가미 인간뿐 아니라 주인공을 둘러싼 모든 이들을 미국 사회의 타자로 그린다.
주인공 엘라이자는 가난한 청각 장애 여성이고, 그녀의 이웃인 자일스는 게이이며 무명 화가다. 믿음직한 동료 젤다는 남편에게서 억압받는 흑인 여성으로 이들 모두 주류 사회에서 소외된 채 그늘에서 살아간다. 이 타자들을 감싸는 물질이 바로 물이다. 담겨진 물, 빛을 받아 출렁이는 물, 차창의 표면에서 춤추는 물, 욕실과 방안을 가득 채운 물, 극장까지 스며든 물, 쏟아지는 비, 운하와 하천, 마침내 화면을 가득 메운 거대한 물속에서 두 주인공의 포옹.
이 장면은 환상적이면서 아름답다.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엘라이자가 아가미 인간에게 사랑 고백을 하고 싶어 할 때이다. 고백에는 불행히도 주류의 법인 ‘말’이 필요하다.
감독은 이것을 영화적 판타지로 해결한다.
50년대 화려한 버스비 버클리 뮤지컬처럼 괴물과 미녀가 함께 춤을 추고, ‘내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는지 당신은 모를 거예요’라는 노래가 울려 퍼진다. 결국 침묵 속에서, 거대한 물의 집에서 두 사람은 영원히 함께하리라. 물은 이미 우리 안에 존재하고 있다. 침, 땀, 피, 자궁 안의 양수. 경계가 없는 이것은 우리가 죽을 때까지 우리의 내부를 조용히 흘러 돌아다닌다. 감독은 어떤 경계도 넘나들고, 어떤 식으로든 변할 수 있지만 언제나 본질이 변하지 않는 물과 같은 것이 바로 사랑의 모양이라고 이야기한다.
야수는 왕자가 되지 않고 그저 자신이 속한 곳으로 되돌아간다. 타자를 그냥 타자로, 괴물을 그냥 괴물로 살게 할 수 있는 공간. 그곳은 실상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원형적 공간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거절당하고 누군가에게 괴물이 되고 타자의 외로움으로 뼛속까지 추워질 때 <셰이프 오브 워터>를 보라. 거기 우리를 닮은 괴물이,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짐승이, 모든 것과 소통 가능한 물의 꿈을 안고서 또 한 명의 공주를 꽉 껴안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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