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이해하는 작은 내면 여행

인사이드 아웃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데카르트가 인간의 존재 양식을 이 유명한 명제로 규정했을 때부터, 서구는 변함 없이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이며, 생각은 감정의 우위를 점유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픽사의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은 이러한 데카르트식 인식론을 뒤집는다.
때로 “나는 느낀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글. 심영섭(심리학자, 아트테라피 대표)
<인사이드 아웃>은 이제 막 탄생한 신생아 라일리의 얼굴을 비추며 시작한다. 부모들이 아이의 탄생에 기뻐하며 웃자, 아기의 내면에도 행복이 흘러넘친다. 자라면서 라일리의 머릿속에는 다양한 기억과 감정이 자리 잡는다. 노란색의 빛을 내며 항상 긍정적인 생각만하는 ‘기쁨’이, 깊은 푸른빛을 지녔으며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하는 ‘슬픔’이, 붉은 피부에 네모난 직사각형 어깨가 위풍당당하지만, 충동적인 행동을 저지르는 ‘버럭’이, 초록색 스커트를 맵시 입게 차려 입고 팔짱을 낀 채 불만을 털어놓는 ‘까칠’이 그리고 매사를 조심 또 조심하는 ‘소심’이가 그들이다.
이들은 라일리 머릿속에 있는 감정 통제 본부에 살고 있다. 라일리가 잠에서 깨어나면서부터 잠들 때까지 바삐 움직이며, 외부 자극이 올 때마다 적절한 행동을 취할 수 있게 그녀를 돕는다.
11살이 되며 라일리의 일상에 변화가 생긴다. 아버지가 하는 일 때문에 미네소타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이사를 하게 되자 라일리의 마음속에는 분노, 슬픔, 까칠이가 도맡아 할 일만 수북이 쌓인다. 학교에 적응하랴, 미네소타에 두고 온 친구들을 그리워하랴, 부부싸움을 하는 부모님 지켜보랴 할 일이 태산이다. 어느 날 핵심 기억을 저장하고 보호하는 과정에서 기쁨이와 슬픔이가 지휘 통제 본부 밖을 불쑥 빠져 나가는 일이 발생한다. 이때부터 기쁨이와 슬픔이는 라일리의 마음속을 돌아다니며 핵심 기억을 뇌 속 컨트롤 타워의 제자리로 돌려놓으려고 고군분투한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은 감정을 의인화해 감정과 생각, 무의식의 관계, 우리가 좀처럼 가시화하지 못하는 인간의 내면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일단 이 감정들은 마치 사람처럼 각자의 스타일과 개성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아마 사실일 것이다. 대뇌 속 감정과 연관된 변연계는 원시 뇌에 속하고, 감정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생존가(Survival Value : 생체의 특질이 생존·번식에 기여하는 유용성)를 지니고 진화해 왔다. 동물들의 감정은 분명하고 단순하지만, 인간의 감정은 그 종류도 다양하고 복잡하다. 그리고 모든 감정은 그것이 설사 부정적인 감정이라고 인식될지라도, 어떤 면에서는 인간 생존에 유리한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영화 속에서 버럭이로 의인화된 ‘분노’는 에너지와 동기 수준을 높이고, 외부 환경이 위험하거나 적대적일 때 싸우고 행동화하여 적을 물리칠 수 있게 한다. 또한 소심이로 형상화된 ‘불안’은 매사에 우리를 준비하게 만들고 위험에 조심하게 만든다. 아마도 밤 12시에 글을 쓰고 있는 필자의 머릿속에는 ‘마감이 지나도 원고를 못 쓰면 어쩌지’란 생각에 덜덜 떠는 소심이가 열심히 나의 뇌를 진두지휘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감정이 생존가를 지니고 있는 것보다 더 놀라운 것은 이 감정들이 기억 그리고 인성과 맺고 있는 어떤 연관성일 것이다. 주인공 라일리의 기억은 각각의 감정이 묻어 있는데, 대부분의 기억들은 장기 기억의 저장소로 넘어가서 결국은 기억의 폐기물장에서 잊힌다. 그런데 어떤 기억은 잊히지 않고 대뇌의 깊숙한 곳에 ‘핵심 기억’으로 저장되어 있다. 시간이 지난 기억은 감정의 색깔을 잃어버리고 잊히지만, 어떤 기억은 강렬한 감정과 함께 오래도록 변화하지 않고 기억의 저장소에 남게 된다. 그것은 아주 행복한 기억일 수도 있고, 트라우마처럼 고통스럽고 분노가 서린 기억일 수도 있다. 이 핵심 기억이 결국 마음의 영토에서 그 사람의 성격과 연결되어 하나의 인격을 이룬다고 애니메이션은 설명한다.
예를 들면 라일리는 엉뚱하고 장난기 많으며, 우정을 소중히 여기고, 가족에게서 행복을 얻고, 특히 하키를 좋아한다. 이것이 라일리의 인격을 이룬다. 그리고 그것들은 가족들과 처음으로 하키를 했던 날에 대한 기억이라든가 친구와 어깨동무를 하고 행복했던 핵심 기억들과 연결되어 있다. 실제로 강렬한 감정을 갖고 있는 핵심 기억은 다른 기억보다 훨씬 시간에 저항하면서 잊히지 않으며, 아주 단순한 외부의 자극에도 쉽게 회상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좋은 핵심 기억은 인간에게 낙관적인 힘을 주지만, 트라우마는 인간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몰고 와 고통스러운 내면의 일부가 된다.

무엇보다도 <인사이드 아웃>은 우리가 감정을 어떤 태도로 대하는지 돌아보게 하는 소중한 시간을 선사한다. 기쁨이는 라일리의 행복을 방해하는 슬픔이 못마땅하다. 슬픔이는 주책맞게 자꾸 기억 구슬을 건드려서 기쁨의 기억조차 파란색으로 만들어버린다. 자신의 길을 가려는 기쁨이에게 슬픔이는 일종의 방해자이자 훼방꾼이다. 슬픔이는 기쁨이가 못마땅한 표정을 지을 때마다 번번이 풀이 죽어 사과를 한다. 결국 기쁨이에게 자신을 내버려두고 라일리를 위해 감정 통제 본부에 혼자 들어갈 것을 권유할 정도다. 이때 기쁨이를 크게 깨우쳐주는 사건이 일어난다.
어린 시절 라일리가 만들어낸 상상의 친구 빙봉이를 만난 것이다. 기쁨이와 슬픔이를 만난 빙봉은 뇌를 이탈한 라일리의 핵심 기억을 뇌의 제 위치에 갖다 두기 위해 기쁨이와 슬픔이를 돕는다. 이 가운데 라일리와 함께 달나라에 가기로 했던 상상의 산물인 로켓이 그만 기억에서 삭제되는 참사가 발생한다.
빙봉에게 로켓이 사라졌다는 것은 라일리와 헤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일이다. 기쁨이는 빙봉이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위로하지만 소용이 없다. 오히려 빙봉은 슬픔이의 어깨에 기대어 실컷 울고 난 후, 다시 길을 떠날 수 있는 위로를 얻는다. 그리고 기쁨이가 빙봉을 통해 슬픔을 받아들이자, 처음에는 한 가지 색이었던 기억의 구슬이 여러 가지 색이 뒤섞인 다채로운 색깔을 지니게 된다.
피트 닥터 감독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인터뷰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면 다음 날 장례식을 치르고 일을 바로 하러 갈 수는 없지 않은가. 내 인생을 조금 더 슬로 다운시킬 수 있는 것이 슬픔이다. 우리는 자세나 얼굴 표정으로 슬픔을 표현해 사람들이 자신을 돕고 배려하게 만든다. 그래서 슬픔은 공동체 의식이 살아 있는 감정이며, 내가 슬픔을 느낄 수 있게 허락하면 굉장히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 인간은 마음껏 울어도 되는 존재이다. 오히려 다양한 빛깔의 기억을 갖고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의 내면을 풍성하게 한다. 영화 치료를 하는 가운데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환자와 <인사이드 아웃>을 함께 보며 치료를 한 적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슬픔이라는 감정이 모든 기억의 색깔을 다 바꾸어내는 것 같다면서 슬픔이를 좀 쉬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인사이드 아웃>은 이렇게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그것들이 나를 압도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내려놓게 만든다. <인사이드 아웃> 속 라일리가 겪는 사춘기의 성장통은 성숙이란 과정을 거치는 데 있어 필수적이다. 영화는 성인이 된다는 것은 기억의 다채로움과 생각의 성숙함을 얻는 대신, 무수한 가능성과 창조성의 원천인 상상력의 세상과 결별하는 과정이라는 깨달음을 준다. 영화는 기억의 생성과 소멸을 통해, 빙봉의 출현과 사라짐을 통해 우리 삶의 본질이 ‘오고 가는’ 것임을 보여준다.

아울러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도 다양한 감정들이 살아 숨 쉬는 컨트롤 타워가 있음을 관객들에게 알려준다. 심지어 고양이와 개에게도 어떤 감정과 충동이 있음을 상기시켜준다. 어머니는 어머니의 고민이, 아버지는 아버지의 감정과 기억의 특징이 존재한다. 역지사지의 힘으로 이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나는 내 안에만 갇혀 살 수밖에 없다. 인간을 지탱해주는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랑일 것이다. 이유없이 까칠하며, 한번 화가 나면 도무지 참아낼 수 없는 라일리의 사춘기를 부모는 사랑으로 지지한다. 라일리의 기쁨이와 슬픔이가 컨트롤 타워에서 잠시 외출을 해도 라일리의 핵심 기억 속의 부모는 사라지지 않는다. <인사이드 아웃>을 본다는 것은 나와 내 주변의 ‘인간’을 이해하는 작은 내면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영화를 보면 내 자신에게 이렇게 속삭이게 된다. ‘모두 사랑한다. 나의 감정과 상상의 친구들아. 실컷 울고 너를 껴안아주겠다. 내 안의 깊은 슬픔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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