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을 뛰어넘는 내적 동기의 힘

플로렌스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사람들에게는 재능과 열정이 함께한다. 그러나 조직이나 일상생활에서는 ‘재능만 있고 노력이 없는 사람’이나, ‘재능은 없는데 열정만 있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더 흔하다.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이 친절하면서 똑똑하기까지 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현실. 그렇다면 재능과 동기 중 어떤 것이 사람들의 행동에 더 큰 영향을 미칠까?
글. 심영섭(심리학자, 아트테라피 대표)
실존하는 인물 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는 뉴욕 최대 갑부의 딸로, 음악에 있어서만은 최고의 열정을 자랑한다. 영화 <플로렌스>의 첫 장면은 우스꽝스러운 천사 복장을 하고 하늘에서 내려와 작곡가 포스터에게 영감을 주는 메릴 스트립의 공연으로 시작한다. 보는 사람, 소개하는 사람, 연기하는 사람 모두 진지하기 이를 데 없는 이 장면은 잠시 플로렌스가 재능 있는 성악가인 듯 관객을 착각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어지는 플로렌스의 연습 장면은 반주자도 멍하게 할 만큼, 귀를 맹타하는 음 이탈의 연속이다.
상류사회 친구들의 배려와 언론을 매수해 플로렌스가 음치 성악가임을 비밀로 붙이려는 남편 베이필드(휴 그랜트 분)의 노력으로 그녀는 온실의 화초처럼 음악에 매진한다. 사실 플로렌스는 첫 결혼 생활에서 얻은 매독으로 손을 다치자 피아니스트에서 성악가로 전향한 과거를 지니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두 사람은 실질적인 부부 관계가 불가능하고, 베이필드는 뉴욕 시내에서 내연녀 캐슬린과 함께 지낸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플로렌스는 음악과 남편 모두에게 배신당한 순진한 부잣집 아주머니로 비춰진다.
영화에서는 아주 인상적인 상징이 나온다. 바로 그녀의 가발이다. 베르디 클럽의 후원자인 그녀는 오직 상류층 친구들 앞에서만 음악회를 여는데, 공연이 끝나자 자신의 집인 호텔 객실로 돌아와 잠이 든다. 남편인 베이필드가 그녀의 가발을 벗기니 그녀의 대머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 장면은 돈으로 옷으로 보석으로 휘감아도 숨길 수 없는 그녀의 민낯과 그녀의 형편없는 노래 실력을 숨길 수 없다는 암시다. 또 플로렌스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폭로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런데 플로렌스의 캐릭터는 상상 그 이상의 면모를 지니고 있다. 그녀는 주변의 상황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남편의 외도를 아는지 모르는지 내연녀와 골프 치러 간 남편을 진심으로 그리워하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음악 녹음을 감행한다. 그녀의 투명한 열정은 능력과 상관없이 스스로에게 끊임없는 에너지를 선물한다. 의사조차 매독으로 이렇게 오래 산 사람이 없다며 놀라워할 정도이다.

플로렌스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바로 그녀의 동기 수준이 높은 데서 나온다. 신은 플로렌스에게 ‘동기(Motivation)’라는 선물을 준 것으로 보인다. 동기는 심리학적 용어의 하나로 ‘움직이게 하다’라는 라틴어 ‘모베러(Movere)’에서 나왔다. 대체 인간은 무엇에 의해 움직이는가? 무엇이 1등과 2등, 1등과 꼴찌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일까? 동기가 있다면 특정 행동을 열정적으로 지속할 수 있기 때문에, 지속적인 동기부여에 관한 연구는 수많은 심리학자가 지난 반세기 동안 인간에 관해 묻고 또 물은 주제 중 하나다. 동기는 외적 동기와 내적 동기로 나뉜다.
예를 들면 외적 동기는 외부에서 오는 보상 즉 칭찬, 권위의 인정, 지위, 돈 같은 것 등에 해당한다. 그래서 중국집에서는 탕수육을 먹을 수 있는 종이 쿠폰을 발행하고, 선생님들은 학교 교실 게시판에 사과나무 모양의 보상 스티커를 만들어 붙이기도 한다. 두둑한 보너스와 실적 미달 시 가하는 감봉 등은 모두 이러한 외적 동기 이론에 바탕을 둔 것이다. 그러나 플로렌스에게는 이러한 외적 동기 이론이 잘 맞지 않는 듯 보인다. 그녀는 이미 넘치는 돈을 가졌고, 음악을 하기 위해 비싼 레슨을 받는 등 돈을 쓰면 썼지 버는 것이 아니다. 즉 플로렌스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마음속에 존재하는 내적인 욕망과 욕구, 사명감 등에서 나오는 내부적인 것이다.
영화가 보여주듯이 인간은 외적인 동기 수준보다 내적인 동기 수준에 의해 더 잘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미국의 기업들은 CEO에게 천문학적인 보너스를 준다. 그런데 천문학적인 인센티브를 받고 대단한 성과를 낼 것이라는 미국 월스트리트 금융인들의 기대와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 재미있게도 가장 많은 금액인 5개월 치 급여의 인센티브를 약속받은 그룹의 성과가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매우 낮았던 것이다. 2008년 미국에 경제 위기가 닥쳤을 때 기업들의 설명은 이 정도 보너스가 있어야 CEO들이 열심히 일해서 문제를 헤쳐나갈 수 있는 자극이 된다고 보았다. 결과는 리먼 브라더스 사태부터 엔론 사태가 보여주듯 천문학적인 보너스를 받은 CEO가 더 동기 수준이 높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 면에서 플로렌스의 동기 수준은 내적인 동기이기에 더 강력하고 지속적이며 누구도 말리기 힘든 측면이 있다.

설상가상으로 플로렌스는 카네기홀 공연을 원한다. 남편 베이필드가 막아도 소용없다. 그녀는 용감하게 카네기홀을 예약하고,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군인을 1,000명이나 초대하는 대형 사고를 쳐버린다. 공연 당일, 연주회에는 플로렌스의 후원자인 베르디 클럽 회원들과 신랄하고 진실된 비평으로 이름이 높은 <뉴욕 포스트>의 기자인 얼 윌슨까지 찾아온다. 반주자마저 두려움에 덜덜 떨지만 그녀는 오히려 반주자를 격려하며 무대에 선다. 그녀가 첫 곡을 부르는 순간, 술취한 군인들은 야유를 퍼붓는다. 그런데 첫 공연 때 웃음으로 야유했던 한 여자가 일어나서 군인들에게 “조용히 안 해? 지금 너희들을 위해서 죽을 만큼 노래 부르는 거 안 보여? 응원을 해줘야지!”라며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이 장면에서 사람들이 플로렌스의 노래에 성원을 보내는 것은 그녀의 노래 실력이 아니라 그녀의 내재적 동기인 최선을 다하는 태도, 누가 뭐래도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밀고 나가는 용감함 그리고 음악에 대한 사랑 같은 그녀의 내적인 심리적 자산과 내적인 동기 수준에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것일 게다.
흥미롭게도 심리적 동기에 관한, 플로렌스와 정반대의 경우를 다룬 다큐멘터리도 있다.
<스타로부터 스무 발자국>은 재능은 차고 넘치지만 결국 스타들의 뒷자리에 서 있는 백업 가수의 삶을 다룬다. 비틀스의 프로듀서 필 스펙터의 뮤즈였지만 생계유지를 위해 청소부가 되었던 달린 러브. 롤링스톤스와 함께하고 솔로 앨범으로도 그래미상을 수상한 리사 피셔 등이다. 그들은 실력도 출중하고 목소리의 색깔과 성량이 차고 넘치는데도 무대 뒤편에서 백업 가수 일을 한다. 그들은 왜 백업 가수로 남게 되었을까? 영화 속 주변 사람들은 이들 백업 가수들이 ‘스타가 되기를 진정 원하는 엄청난 에너지와 이기심’이 부족했다고 입을 모은다. 즉 상반된 캐릭터를 다루고 있는 <플로렌스>와 <스타로부터 스무 발자국>은 호기심, 창의성, 내 이름 석자를 남기고 싶은 성취 욕구, 자기 만족감 같은 내적인 동기가 재능보다 인간 행동에 훨씬 더 강한 추진력을 선물한다는 것을 입증한다.
결국 플로렌스는 1944년 10월 카네기홀에서 전석 매진을 기록한 가운데, 성공적으로 콘서트를 끝마친다. 관객들은 이미 그녀의 노래 실력을 간파했고, 최악의 목소리를 웃음으로 승화시키면서 여유 있게 콘서트를 즐긴다. 그러나 플로렌스는 이 일로 자기 자신의 문제에 맞닥뜨린다. <뉴욕 포스트> 얼 윌슨 기자의 악평을 기어이 알게 되고만 것이다. 베이필드는 그녀가 이 평을 읽을까봐 호텔 주변 가판대의 모든 <뉴욕 포스트> 신문을 사서 버리지만, 자신의 음악에 대한 평을 알고 싶어 하는 그녀의 동기를 막을 수 없었다.
악평으로 충격을 받아 쓰러진 플로렌스는 병이 악화되고, 병석에서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꿈을 꾼다. 그녀의 순수함과 최선을 다하는 태도는 남편인 베이필드의 마음마저도 움직인다. 진정 자신이 아내를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은 베이필드는 아름답고 지적인 내연녀와 헤어진다. 죽음의 순간까지 곁을 지킨 베이필드의 손을 잡고, 그녀는 마지막 유언을 중얼거린다. “사람들이 내게 ‘노래를 못한다’고 할지언정, ‘노래를 안 했다’고 하지는 못할 거예요.”
돈이나 찬사 같은 외부에서 비롯된 동기보다 일 자체에 대한 아이같은 사랑과 내 이름을 알리고 싶은 마음 등 인간의 내부에서 솟아오르는 동기는 분명 재능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그리고 때론 사람들에게 그 자체의 노력만으로도 깊은 감동을 준다. 그러니 온 마음을 다해 노래하자. 99%의 진짜 재능은 신이 손을 뻗어 도와주고 싶을 정도로 사랑하는 것에 전념하는 마성의 동기에서 나올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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