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그리고 견딤에 대한 고찰

맨체스터 바이 더 씨

글. 심영섭(심리학자, 아트테라피 대표)
행복이란 ‘더하기가 계속되는 행복한 상태’의 누적일까? 아니면 ‘불행이 없는 상태도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주인공 ‘리’는 눈 속에 잠긴 보스턴에서 잡역부 일을 하는 중년의 사내다. 영화 <러브 스토리>에서는 그토록 아름답고 로맨틱하게 그려졌던 설경이었건만, 눈 오는 보스턴에서 리는 묵묵히 자신의 일에만 열중하고 있다. 그는 잡역부로 아파트의 욕조마개, 전등, 막힌변기, 새는 파이프 등 잔고장이란 잔고장은 모두 고치며 살아간다. 모든 사람들의 집은 어딘가 고장이 나 있다. 그러나 세상 모든 집을 고쳐도 리는 자신의 영혼의 집인 마음은 도저히 고칠 수 없는 듯 보인다. 그에겐 불행이 없는 세상조차 사치이다.
일이 없을 때 리가 하는 행동은 막돼먹고 무례하기 짝이 없다.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 아무나 붙잡고 주먹을 날리고, 이후 우르르 몰려든 사람들한테 얻어맞기 일쑤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일부러 얻어맞으려 작정한 듯 시비를 건다. 그는 가구도 몇개 없는 작은 방에서 혼자 살고 있다. 여자들이 관리 일을 하는 그에게 유혹의 시선을 보내도 묵묵부답. 성 충동, 취향, 호기심, 유머 등 인간적인 모든 것이 사라지고 단단한 심만 남은 것 같다. 마치 영구결번이 아닌 영구결빙의 상태에 놓여 있는 듯보인다.
리가 왜 이렇게 사는지 따라 가보는 이 여행의 길 끝에는 ‘맨체스터 바이 더 씨(Manchester by the Sea)’라는 작은 동네가 존재한다. 그곳은 영국 맨체스터가 아니라, 동부 매사추세츠 주에 있는 항구 마을의 이름이다. 흔히 고향 하면 향수와 그리움이 떠오르지만 그에게 고향 맨체스터는 화마 같은 상처만 남아 있다. 어쩌면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배의 앞면이 아니라 그 뒷면에 관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영화는 첫 장면에서 주인공 리와 리의 형 조 그리고 그의 아들 패트릭이 낚시를 하는 배의 뒤쪽을 비추면서 시작한다. 배의 이름은 클리우디아 마리 호. 리와 조 형제의 어머니 이름을 붙인 배다. 때는 여름이었고, 리는 “만약 한 사람을 데리고 섬을 나간다면, 나와 아빠 중 누구를 선택할 거냐?”라든가 “상어는 똑똑한 아이를 좋아한다”는 등의 농담을 던지며 조카와 낚시를 즐겼다. 모두가 행복한 시간. 클리우디아 마리 호는 행복한 기억을 담고 있다. 새벽 2시.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질펀하게 놀던 그날, 리는 TV를 보며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추운 겨울이지만 코가 건조한 아내 때문에 중앙난방 대신 거실에 모닥불을 피워놓았는데, 맥주를 사러 나가다 난로의 차단막을 안 치고 나온 것을 깨닫는다. 되돌아 갈 수 있었지만 그냥 걸어간다. 그런데 맥주를 사가지고 와 보니 집 안은 온통 화염에 휩싸여 있다. 리에게는 랜디라는 아내와 수지, 카렌, 스테판이라는 세 아이가 있었다. 그는 그렇게 세 아이를 모두 잃는다. 아내의 키스와 두 딸의 내복 색깔, 갓난 아들의 피부 촉감까지 모든 것이 어제일처럼 생생한데 말이다.
영화를 보면 리는 전형적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리에게 아이들의 죽음은 그 어떤 것으로도 치유될 수 없는 상처이자 후회이며 죄책감의 근원이다. 이때 외상이란 위협적으로 느낄 만큼 고통스러운 마음의 상처를 의미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특징은 다른 불안증과는 다르다. 사건에 대한 기억이 자꾸 떠올라 고통스러운데, 외상이 일어났던 비슷한 상황뿐 아니라 어떤 단서가 없는 데도 갑자기 기억이 침입해 더 고통스럽다. 예를 들면 불길 안에서 갇혀 있는 사람들이 살려 달라고 외치던 아우성의 기억과 그들을 살리지 못한 죄책감과 무기력감은 고스란히 소방관들의 몫이 된다. 지진을 처음 경험한 사람은 땅이 흔들리는 것에 대한 충격과 죽음의 공포로 인해 언제 또 지진이 날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 정신착란마저 경험할 수 있다. 기억과 정서를 연결하는 뇌의 해마와 편도체에 마치 인장이 새겨지듯 기억이 봉인되고, 이들은 계속해서 자신을 침입하는 기억의 패잔병을 맞닥뜨려야 한다. 리에게는 그 외상의 단서가 ‘맨체스터 바이 더 씨’라는 자신의 고향에 아로새겨져 있다. 변호사 사무실에 앉아서 형의 유언장을 보던 리가 과거를 떠올리는 플래시백 장면을 살펴보면, 현실과 과거 화재사건의 기억이 교차 편집된다. 화재라는 정점의 사건으로 갈수록 플래시백으로 촉발되는 회상 장면은 점점 더 빠르게 변호사 사무실 장면과 교차된다. 즉 몸은 변호사 사무실에 있지만 리의 정신은 계속 외상적 기억의 침입을 당하는 상태라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음악에 실린 회상 장면에서는 어떤 대사는 또렷이 기억하고 어떤 상황은 배경음악으로 지워져 있다. 예를들면 리는 아내가 지르는 비명과 ‘아이가 있다’는 울음소리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서에서 사건을 보고한 뒤 다른 경찰관의 총을 뽑아 자살하려고 하는 상황에서 주변 사람들의 말은 하나도 기억하지 못한다. 이 장면은 리가 가진 외상적 기억이 얼마나 주관적인지, 그 기억이 얼마만큼 극단적 감정과 섞여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명장면이라 하겠다.
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상관없어”, “모르겠다”고 대답한다. 그가 겪는 무감각, 그가 겪는 무신경함은 스스로를 고통스러운 기억의 저장소에 유폐시켰기 때문이며, 이러한 상태는 몇 평 되지 않는 방의 살벌한 풍경으로 시각화된다. 그는 스스로를 벌주고 있는 듯 보인다. 경찰서에서도 경찰관들이 “당신이 한 짓은 실수이지 죄가 아니다. 집에 가라”라고 하자 “그게 다인가요?”
라고 물어본다. ‘더 벌을 받아야 되는데’라는 표정을 짓는 그는 이후 기억의 사슬에 묶여 매일 독수리에게 심장을 쪼아 먹히듯 살아간다.
한편 형 조의 상태도 그리 좋지 않다. 유머 감각을 지닌 어부였던 그는 심장 문제로 인해 앞으로 5-10년밖에 살 수 없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하지만 그는 그 상황에서도 농담 따먹기를 하려 든다. 조가 겪는 심리적 고통과 불안은 기이하게도 그의 아내가 대리 경험하는 듯 보인다. 조의 아내는 알코올 중독으로 고생하다 이제는 어디에서 사는지조차 알 수 없는 나락에 빠져 있다. 조가 심장마비로 쓰러져 세상을 등지자, 조의 외동아들 패트릭은 이제 리 외에는 의지 할 곳이 없다. 작은 아버지와 조카 사이인 리와 패트릭은 아이스하키장에서 다시 만난다.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한 패트릭은 리에게 아버지가 어땠냐고 물어본다. 아이스(Ice). 이 영화에서 계속 되풀이되는 핵심 이미지는 바로 겨울, 눈, 냉동고, 냉동된 시체, 아이스하키장 같은 얼어붙은 것들이다. 영혼은 춥고 기억은 얼어 있다. 패트릭은 땅이 얼어붙은 추운 날씨에 조가 냉동고에 안치되어 있다는 사실이 영 못마땅하다. 그러나 리와는 아주 다른 방식으로 아버지의 슬픔을 이겨내려 든다.
아버지가 죽은 날에도 패트릭은 친구들을 부르고 여자친구를 만난다. 밴드 연습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아이스하키 연습을 계속하겠다고 고집하다 코치에게 제지당하기도 한다.
사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유사한 아픔을 가진 리와 패트릭이건만 두 사람은 소통하지 못한다. 패트릭의 “그냥 가자”라는 말을 조는 “차를 계속 몰아라”라는 말로 오해하는 등 옥신각신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마음속의 숨겨둔 외상을 쉽게 이해하지도 드러내지도 못하는 인간의 내면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그렇기에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두 사람이 울음을 쏟아내는 장면은 오히려 긴 여운을 남긴다. 어느 날 패트릭은 냉동고의 문을 열다가 언 음식이 쏟아져 바닥에 떨어지고 냉장고에 머리를 부딪치는 일을 겪는다. 그리곤 갑자기 공황 발작처럼 울며 화들짝 놀란다. 아마도 냉동고에 있는 아버지를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리는 이혼한 아내 랜디와 길거리에서 재회한다. 랜디는 다른 남자와 사이에서 아이를 낳았고,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산책 중이었다. 그런데 랜디는 갑자기 울면서 자신의 심경을 고백한다. 심지어 “미안하고 사랑한다”며 흐느낀다. 두 사람은 이 지구상에서 같은 경험을 한 유일한 사람이다. 그날 리는 술집에서 마구 얻어맞은 후 그의 상처를 치료해주는 이웃 친구 아내의 품에서 흐느껴 운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섣부른 치유를 약속하는 영화가 아니다. 패트릭은 리가 왜 보스턴을 떠나 맨체스터에 살면 안 되는지 이해할 수 없고, 리는 패트릭이 왜 한밤중에 깨어나 냉장고 앞에서 우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영화의 끝은 겨울이 아니라 다시 봄이다. 리는 패트릭과 공놀이를 하던 중 공을 놓쳐도 그냥 내버려 두라고 말한다. 두 사람은 클라우디아 마리 호의 엔진을 교체했고, 다시 낚시를 시작한다. 흘러가는 세월을 내버려 두고 삶을 견디는 것. 여기에 혹시 희망이라는 각주를 달수 있다면, 케네스 로너건 감독은 그냥 서로를 지켜보면서 시간에 기대어 천천히 살아보라고 말을 하는 것 같다. 영화에 계속 등장하는 맨체스터의 바다처럼. 수많은 물갈퀴들에게 산산이 베어져도, 이윽고 바다는 모든 것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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