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YUNDAI MOBIS

인도의 최남단에서
낯선 인도와 조우하다

케랄라

케랄라 익스프레스(Kerala Exp)는 어느새 50시간째 인도의 남북을 가로지르는 중이다. 앉아도 보고 누워도 보고 엎드려도 보지만 시간은 점점 느리게 흐른다.
기차 스케줄상으로는 2시간 전에 목적지에 도착했어야 하지만 ‘연착’ 하면 또 ‘인도’ 아닌가. 앞으로 2시간만 더 달리면 목적 지인 케릴라 주의 주도
트리밴드럼에 도착할 거 같다. 4시간 연착, 이 정도면 꽤 만족스럽다. 50시간을 달리고 연착을 해도 여행에 대한
기대가 용솟음치는 곳, 열 번을 방문해도 가슴 설렘이 남아 있는 곳, 케랄라는 그런 곳이다.

글. 전명윤(인도여행 전문가)

끝없이 펼쳐진 짙은 녹음

케랄라는 한국의 2/5 정도 크기로 인구는 3,480만 명에 달한다. 인도에서 제일 큰 주는 우리나라의 5배, 제일 인구가 많은 주는 2억이니 인도의 주치고는 가장 작은 축에 속한다.
케랄라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는 땅을 ‘신의 선물’이라고 말한다. 종교의 나라 인도에서는 ‘신의 땅’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하지만 자신이 딛고 선 대지 그 자체를 ‘신의 선물’이라고 말하는 경우는 케랄라가 유일하다. 왜일까? 녹색의 융단 같은 풍경이 끝없이 펼쳐지는 짙은 녹음 때문이다. 케랄라는 거대한 야자나무숲이 주 전체를 감싸 안고 있는데, 인도는 녹색과 거리가 먼 땅임을 생각하면 신이 준 선물이라는 표현이 이해가 간다. 어디 그뿐인가. 녹색 숲 너머 일렁이는 바다의 물빛도 장관이다. 케랄라는 인도의 서해안 즉 아라비아 해를 끼고 있는데, 기다란 해안선이 끝없이 이어지고 그 너머 에메랄드의 바다가 펼쳐진다.

향신료 무역항으로 명성 떨쳐

짙은 녹음과 함께 신들은 케랄라에 또 하나의 선물을 줬다. 바로 향신료다. 지금이야 후추가 싸지만 한때 후추는 금과 1:1의 가격으로 거래되었던 귀한 식자재였다. 서양인들이 후추에 열광하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후기로 올수록 그 희소성에 더욱 주목했던 것 같다. 서양의 기독교권과 중동의 이슬람이 격돌하던 시기, 향신료 무역은 중동 상인들이 독점했다. 향신료의 고장 인도와 유럽 사이를 늘 중동이 가로막았고, 중동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아프리카를 우회하는 길뿐이었다. 당시 유럽인들에게 인도란 바로 케랄라의 캘리컷(Calicut), 코친(Cochin)과 같은 향신료 무역항을 뜻했다. 케랄라를 중동 사람들과 유럽인들은 말라바(Malabar)라고 불렀고, 최고의 후추가 말라바산이라는 건 당시나 지금이나 식자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01. 케랄라는 다양하고 질 좋은 향신료의 고장으로, 향신료 대외 무역이 활발하다. 02. 케랄라의 전통 무용인 까따깔리는 짙은 분장을 한 남성들이 대사 없이 표정으로 극을 이끄는 것이 특징이다.

다양한 동서 문화 교류의 흔적

인도인들은 예부터 바다 밖으로 나가면 자신의 카스트(Caste : 인도의 한두교도 사회의 세습적인 신분제도)를 잃는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마하트마 간디조차 영국으로 유학을 가기 전 그런 두려움에 휩싸였고, 인도 서부 라자스탄의 어느 왕은 영국 왕의 대관식에 초대를 받았는데, 카스트를 잃을 것 같아 거대한 은 항아리를 만들어 그 안에 갠지스 강물을 담아 여행 내내 그 물만 마셨다고 한다.
하지만 케랄라 사람들은 달랐다. 일찌감치 향신료 대외 무역항이 활발했기에 바다 멀리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인도치고는 드문 국제 감각을 지닌 이곳에서는 외국인도 낯설고 신기한 존재가 아니다. 케랄라의 항구도시 코친에는 심지어 유대인 마을도 있는데, 기원전 587년 유대 왕국이 바빌론에 의해 멸망하자 인도까지 흘러들어온 난민들이 정착하며 생긴 마을이다. 종교 분쟁이 심한 오늘날의 인도에서 케랄라가 안전한 곳으로 꼽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자연스레 아랍의 이슬람 상인 그리고 기독교인들과 교류하며 다양한 종교를 접했고 일부는 개종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 독특함 덕에 케랄라에서는 성당을 흔히 볼 수 있고, 북인도 지역에서 쉽게 접하는 힌두교도에 의한 이슬람교에 대한 비하나 집단적인 폭력 사태도 발생하지 않는다.

03. 갓 잡은 생선과 향신료로 맛을 낸 해물 커리는 케랄라를 여행한다면 꼭 먹어야 할 별미다.

케랄라의 날씨보다 더 화끈한 ‘해물 커리’

케랄라는 가난하고 척박한 지역에서는 발달할 수 없는 요리 천국이기도 하다. 향신료 무역으로 쌓은 막대한 부와 외국과의 교류로 인한 다양한 식자재와 레시피가 한데 결합해 인도 타 지역에서는 맛볼 수 없는 훌륭한 요리를 만날 수 있다. 힌두교도들은 소고기는 금기 음식이고 생선도 먹지 않는 사람이 많다. 이슬람교 신자는 소고기는 먹지만 돼지고기를 먹지 않고, 기독교는 대부분의 식자재를 가리지 않는다.
케랄라 사람들은 힌두교로부터 채소 요리의 다양함을, 이슬람과 기독교로부터는 육류와 해산물 요리를 습득해 커리와 배합하는 비법을 터득했다. 코코넛 우유와 갓 잡아올린 신선한 대하, 여기에 향신료를 섞었을 때 국물이 얼마나 시원한지는 인도의 여타 지역에서는 알 수도, 그 맛을 흉내 낼 수도 없다. 그저 탄두리 치킨이 인도 요리의 전부라 생각한 사람들에게 케랄라의 해물 커리는 먹는 즉시 인생 커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세계적 명성을 지닌 다큐멘터리 잡지 <내셔널지오그래픽>은 케랄라를 지구상에 남아 있는 10대 낙원 중 하나로 선정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작용했다. 녹색의 융단, 끝없이 펼쳐진 해변, 이 지역에만 있는 전통 무용인 까따깔리와 케랄라식 테라피인 아유르베다 마사지 그리고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평화로운 땅, 마지막으로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케랄라 사람들이 만들어낸 진보적인 정치적 환경도 포함됐다.
케랄라는 전 인구의 35%가량이 문맹인 인도 평균을 훨씬 뛰어넘는 99.7%가 글을 읽을 줄 알고, 인도인의 평균 수명보다 아홉 살 이상 오래 사는 장수 지역이기도 하다. 이쯤 되면 한번 가볼 만하지 않을까? 가난하고 찌든 잿빛의 인도가 아닌, 진짜 살아 있는 또 다른 인도를 말이다.

04. 거대한 야자나무 숲이 주 전체를 감싸 안고 있다.

Prev Top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