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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장르의 경계가
점점 사라진다

글. 정덕현(대중문화평론가)

사진 출처_ 채널A ‘외부자들’ 홈페이지, tvN ‘알쓸신잡’, ‘신서유기 외전 강식당’ 홈페이지, MBC every1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홈페이지

전방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장르 결합

나영석 사단이 만든 ‘강식당’을 보면 그것이 예능 프로그램인지 다큐멘터리인지 헷갈린다. ‘신서유기’ 팀이 제주도에 실제로 식당을 열고 손님을 받는 그 일련의 과정은 말 그대로 다큐멘터리다. 첫날부터 밀려드는 손님들로 정신없이 돌아가는 주방 풍경은 출연자들의 신경을 날카롭게 만들고, 그 속에서 벌어지는 실수와 사고는 딱히 웃음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웃음을 준다. 인위적인 설정이 아니라 진짜 하는 것이 주는 날것의 웃음. 바로 이 지점이 지금의 리얼리티 예능이 선 자리다. 그리고 그것은 다름 아닌 다큐멘터리와 예능의 경계를 허물면서 가능해진 일이다.

올해 시즌16으로 돌아온 ‘막돼먹은 영애씨’는 이미 16년 전부터 다큐멘터리와 드라마가 접목을 시도했다는 방증이다. 이 드라마는 시작부터 ‘다큐드라마’라는 새로운 형식을 주창했다. 드라마이기는 하지만 일부분은 날것의 영상이 들어가고, 무엇보다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사건들이 대부분 일상에 있을 만한 것들이다. 그런가 하면 최근 방영되고 있는 ‘전체관람가’ 같은 예능 프로그램은 저명한 영화감독들을 초빙해 단편영화를 만드는 제작 과정을 먼저 보여주고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를 감상하는 형식을 취한다. 이 프로그램은 자연스럽게 영화와 예능의 접목을 보여준다. 15분 내외의 영화 상영이 대미를 장식하지만, 그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예능의 틀이다.

장르 결합, 이제는 교양과 시사 영역까지

예능과 다큐멘터리, 드라마와 다큐멘터리 그리고 영화와 예능이 어우러지는 이러한 장르 결합은 이제 TV 프로그램의 일반적인 현상이 되었다. 어떤 프로그램을 봐도 장르들의 혼재를 볼 수 있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같은 프로그램은 과거 교양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여기에 예능 방식의 자막과 편집을 부가하고 예능인들의 관전을 스튜디오물로 연결해 독특한 예능의 한 장을 열었다. 외국인들이 한국을 여행하며 보고 먹고 느끼는 것들을 공유하는 이 프로그램은 그래서 예능적인 형식을 취하면서도 동시에 교양적인 느낌이 묻어난다.

이런 면면이 더 강렬하게 드러나는 건 나영석 사단이 만든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다. 이 예능 프로그램은 여행과 지식을 엮어 ‘교양 예능’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거기에는 지식 수다가 주는 교양과 토크쇼의 접목은 물론이고 지역을 여행하는 여행 프로그램 그리고 그 지역의 음식을 먹는 먹방까지 들어가 있다. 이제 이러한 장르 결합은 과거 공고한 벽을 둘러치고 있던 시사프로그램까지 깨뜨리며 확산되고 있다. ‘썰전’으로 촉발된 시사 예능 프로그램은 조금은 딱딱하게 여겨지던 시사 영역을 마치 뒷얘기를 하듯 쉽게 풀어냄으로써 대중들의 열광을 얻어냈다. 이 프로그램의 성공으로 유사한 시사 예능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외부자들’, ‘판도라’와 같은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무엇이 장르 간 결합을 가속화했을까

그렇다면 이러한 장르 결합이 TV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한 건 왜일까. 가장 큰 이유는 방송 전 부문에서 벌어진 ‘예능화의 경향’ 때문이다. 과거 교양 프로그램이 ‘인포테인먼트(인포메이션과 엔터테인먼트의 합성어)’화되었던 과정을 거쳐, 이제는 아예 두 영역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져버렸다. 다큐멘터리는 더더욱 예능적인 스토리텔링 기법을 활용하기 시작했고, 드라마 역시 예능 방식을 접목해 이른바 ‘예능 드라마’가 탄생하기도 했다. 이러한 예능화 경향이 시사나 교양 영역까지 확대된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정반대의 흐름도 생겨났다. 즉 과거의 예능이라고 하면 단지 ‘웃기는 것’이 전부라고 여기는 면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예능이 추구하는 재미는 훨씬 다채롭다. 지적인 재미도 있고 공감이 주는 재미도 있으며 때론 눈물이 주는 감동도 선사한다. 그러니 예능 또한 타 장르들, 이를테면 드라마나 다큐, 시사, 교양 같은 장르의 재미 요소를 적극적으로 끌어안으며 변화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여러 방향에서 이뤄진 탈장르의 경향은 결국 프로그램에 있어서 장르 구분이 모호해지는 단계로까지 접어들게 했다. 외국인과 서로의 방을 바꿔 지내보는 관찰 카메라 프로그램인 ‘내 방 안내서’ 같은 경우 누가 봐도 예능이라 생각하지만, 실상은 교양팀이 제작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쉽게 예측해볼 수 있다. 향후의 프로그램에서 장르 구분은 갈수록 무의미해질 거라는 것을. 이미 벌어지고 있는 일이지만 심지어 뉴스도 재미를 추구하는 시대가 아닌가. 장르가 갖고 있는 고유의 틀이 이제 대중들의 다양한 재미를 위해 유연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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