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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네이밍, 암호 같은 작명 뒤에
숨겨진 고뇌

자동차의 원조는 말(馬)이 이끄는 마차였다. 그래서 자동차 회사의 상징물 중에는 동물, 특히 말(馬)이 유독 많다.
포르쉐도 말이고, 페라리도 말을 상징물로 활용한다. 하지만 차 이름으로 말을 사용한 경우는 거의 없다.
말 중에서도 조랑말을 의미하는 ‘포니(Pony)’가 지금까지도 우리들의 머릿속에 각인되는 것은 흔하지 않은 이름 때문이다.

글. 권용주(<오토타임즈> 편집장) 일러스트. 수지

알파벳과 숫자를 조합한 ‘알파뉴메릭’ 작명

예부터 전통을 중요하게 여기는 자동차 회사들은 차 이름을 지을 때 역사를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또 일정한 작명 규칙을 통해 소비자들의 이해를 돕기도 했는데, 원칙을 정해놓고 차명을 만드는 회사는 주로 유럽에 몰려 있다. 그중 메르세데스 -벤츠는 차명을 지을 때 크기에 따라 S, E, C로 나누고 그 뒤에 배기량을 나타내는 숫자를 붙인다. 즉 E230이라 하면 중형 E클래스에 2,300cc 가솔린 엔진이라는 뜻이다. BMW도 7, 5, 3(차가 작을수록 숫자가 낮다)로 크기를 분류한 뒤 그 숫자 뒤에 붙는 두 자리 배기량 숫자를 차명으로 사용한다. 예를 들어 BMW520은 중형급 5시리즈 2,000cc급 모델임을 의미하고, 숫자 뒤에 ‘d’가 붙으면 ‘디젤엔진’임을 나타낸다.

아우디 또한 아우디임을 표시하는 ‘A’ 뒤에 숫자를 붙여 차의 크기를 나타내고 별도의 배기량을 표시한다. A8 4.2는 아우디 모델 중 대형차를 뜻하며, 뒤따르는 숫자는 배기량이다. 이외 푸조와 시트로앵 등 프랑스 회사들도 숫자로 모델을 구분하는 것을 자동차 네이밍의 전통으로 여긴다. 국내도 다르지 않다. 기아자동차도 알파벳과 숫자를 조합한 알파뉴메릭(Alphanumeric)을 활용하는데, 기아(KIA), 한국(Korea), 강함(그리스어 Kratos)의 머리글자 ‘K’에 중형과 준대형을 나타내는 숫자 5, 7, 9를 조합했다. 현대자동차 i30는 이노베이션(Innovation), 인포메이션(Information)을 의미하는 ‘i’ 뒤에 숫자가 더해진 이름이다. 30은 차의 크기를 나타내는데, i20과 i10 등 숫자가 적을수록 크기도 작아진다. 유럽 사람들이 규칙적인 차명을 좋아한다는 측면을 고려해 채택한 방식이다.

차 이름만 잘 살펴도 특성을 알 수 있다

슈퍼카의 대명사인 이탈리아의 페라리는 차 이름에 실린더 한 개의 배기량을 숫자로 표현한다.
예를 들어 1947년 페라리 브랜드로 처음 등장한 125는 V12 1.5L 엔진이 탑재됐는데, 1.5L를 12로 나누었을 때 1기통당 125cc가 된다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250GT SWB는 V12 3,000cc 엔진의 배기량을 실린더 개수로 나눴을 때 1기통당 250cc가 계산된다.
이에 따라 모델명을 250으로 정했으며, GT는 자동차 경주의 한 분야인 그랜드 투어링(Grand Touring)의 이니셜이며, SWB는 ‘Short Wheel Base’를 의미한다. 따라서 250GT SWB는 ‘1기통당 배기량 250cc인 그랜드 투어링 경주용 모델로 휠베이스가 짧은 버전입니다’라는 의미이다.
독일의 포르쉐는 각각 프로젝트 번호가 붙여지는 게 특징이다. 포르쉐 첫 차종인 356은 개발 프로젝트 번호였으며, 1963년 등장한 911도 같은 의미다. 뒤이어 914, 924, 944, 984 등의 차명이 계속 부여돼 왔지만 911의 경우 명성이 워낙 높아 여전히 사용 중이다.
국산차로 차명이 확고한 것은 조랑말을 의미하는 포니다. 포니는 미국 포드가 보유한 차명이었다.
하지만 현대차가 요청해 포드가 이름 사용을 허락했고, 덕분에 해외 수출 시장을 개척한 차종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포니에 이어 우리에게 익숙한 쏘나타는 음악 용어에서 가져왔다.
국산 대표 중형차로 7세대에 걸쳐 유지되고 있으며, 개발 프로젝트명으로 사용했던 EF, NF 등으로 세대를 구분한다.

차명(車名)이 곧 브랜드다

지명을 차용한 이름도 적지 않다. 싼타페, 모하비, 투싼 등은 모두 북미의 도시 이름이다. 차종별로 주력 판매 지역을 설정해 이름을 지은 것이다. 쉽게 보면 북미 지역 차종은 북미에 어울리는 이름을, 유럽에서 판매할 차종은 유럽 사람들이 선호하는 방식으로, 국내에서 판매할 때는 한국인에게 거부감이 없는 이름을 사용한다. 자동차 회사마다 사용하지 않는 차명만 최소 8,000개 이상임을 감안해보면 새로운 이름을 만들기보다 기존 차명의 변형으로 이름도 진화하는 셈이다.

차명을 정할 때는 발음의 음절도 고려된다. 보통 소형차는 3음절, 중형 이상은 4음절로 만든다는 음성학적 연구 결과도 있다. 국내의 경우 일반적으로 자동차 이름이 3음절이고 ‘토, 스, 코, 고’ 등으로 끝나면 주로 경소형차다. 발음상 깜찍하고 귀여운 느낌을 연상시키기 때문인데 ‘아토스, 티코, 비스토’ 등이 이에 해당한다. 또 첫머리의 ‘T’ 발음은 역동성이 느껴진다는 이유로 주로 스포츠카에 붙여진다. ‘티뷰론, 투스카니, 터뷸런스’ 등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중대형차로 갈수록 이름도 길어진다. 과거 매그너스, 크레도스 등이 좋은 예다. 물론 레간자, 쏘나타, 옵티마처럼 3음절도 있지만 옵티마의 경우 ‘마젠티스’로 수출됐던 것처럼 음절이 길어질수록 중량감이 묻어나 4음절 선호 경향이 강한 것을 알 수 있다.

엠블럼으로 제조사의 정체성 강조해

그런가 하면 많은 자동차 메이커가 고유 엠블럼을 자동차에 부착해 아이덴티티를 강조하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페라리나 포르쉐 등은 말(馬) 모양을 엠블럼으로 사용하고, 황소 문양은 슈퍼카로 평가되는 람보르기니의 상징물이다.
국내 자동차 회사도 각각의 엠블럼을 사용하나 최근 들어 대형 고급차에 한해 엠블럼을 달지 않고, 차 이름만 표기하는 사례가 늘고있다. 라틴어로 ‘개선장군의 말’ 또는 ‘멋진 마차’를 의미하는 에쿠스에는 어디를 둘러봐도 현대자동차의 엠블럼이 없다. 기아가 K시리즈 차명을 사용하기 전에 판매했던 오피러스 또한 엠블럼이 없었다. 이는 엠블럼이 주는 메이커의 아이덴티티로 제품의 콘셉트가 훼손될 가능성을 염려한 차별화 전략이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차도 제네시스라는 프리미엄 브랜드를 론칭하고, 미국과 유럽에 진출하기 위해 다시 한번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프리미엄 브랜드라는 점에서 차명은 제네시스를 의미하는 ‘G’ 뒤에 차의 크기를 나타내는 숫자를 조합한 알파뉴메릭을 사용한다. G90, G80, G70 등이 그것이다.
물론 국내에서 G90이 EQ900으로 유지된 것은 과거와 단절하지 않기 위해서다. EQ900 이전에 최고급 차였던 에쿠스의 흔적을 남겨, 자연스럽게 에쿠스 후속임을 국내 소비자들이 알도록 하자는 노력이다.
이처럼 차명은 세상에 첫발을 디딘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것과 같다. 그래서 국가별, 지역별 소비자 취향을 반영해야 하고, 다양한 음성도 사전에 조사한다. 과거 쌍용차 무쏘가 아프리카에 진출했을 때 같은 발음의 속어가 있어 곤혹스러움을 겪기도 했던 점을 떠올리면 자동차 작명은 새로 개발한 제품의 성패를 결정짓는 중요한 과정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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