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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바다의 정석,
로맨틱 강릉

커피 여행

어느새 계절의 끝자락에 섰다. 오늘을 사는 사람에게는 24시간이 길겠지만,
지난 열한 달을 살아온 사람에게는 짧은 것이 시간 아닌가. 2017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 시간들이 흩뿌려져 사라지기 전에 겨울 바다 앞에 서보련다. 찬바람이 옷깃으로 파고들 때 따뜻한 커피 한잔을 나눌 수 있다면,
그대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세상을 따뜻하게 녹여줄 커피를 쫓아 강릉으로 떠나본다.

글과 사진 임운석(여행작가)

강릉
1 겨울 바다의 낭만을 즐기기 좋은 경포대해변 2 겨울 바다의 정석일 만큼 정동진 해변의 일출은 아름답다.

1 겨울 바다의 낭만을 즐기기 좋은 경포대해변
2 겨울 바다의 정석일 만큼 정동진 해변의 일출은 아름답다.

정동진해변은 겨울 바다의 정석

강릉의 해변은 주문진에서 시작한다. 이어서 연곡·하평해변을 지나 경포도립공원에 닿으면 사천 · 순포 · 순긋 · 사근진해변을 거처 경포해변과 송정해변까지 연결된다. 강릉항을 지나면서 새하얀 백사장은 자취를 감춘다. 대신 해안도로와 철로가 동해의 거친 숨소리를 들으며 쉼 없이 질주한다.

그 가운데 서울 광화문에서 볼 때 정동쪽에 있다 하여 정동진이라 부르는 정동진역이 있다. 이 역은 세계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역이다. 1995년에 방영된 드라마 ‘모래시계’의 배경으로 알려진 곳이다. 드라마의 흥행과 함께 정동진역은 일출 명소로 급부상했다. 일출 여행과 겨울 바다 여행의 정석이 된 것이다.

해 뜨기 전 이른 아침, 정동진해변에는 여명보다 먼저 찾아온 사람들이 있다. 일출 사진을 담기 위해 새벽길을 달려온 열혈 사진가들이다. 아침 7시가 지나자 날이 밝아온다. 태양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예쁘게 빛을 발한다. 어느덧 해변에는 따사로운 햇빛이 사람들의 얼굴을 비추고 있다. 연인들은 손을 맞잡은 채 온몸으로 바람을 맞아낸다. 바람이드셀수록 남자의 품은 더 넓어지고 따뜻해지는 것일까. 말없는 언약의 시간 동안 태양은 그들을 축복하듯 더 높이 떠오른다. 둘만의 소리 없는 언약식을 마친 연인들. 그들의 발걸음이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카페다. 추운 날씨에 몸을 녹일 곳이 필요했겠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강릉이 커피의 성지이기 때문이다. 지금 강릉에는 횟집 간판보다 커피집 간판이 훨씬 더 많다.

3 신선한 커피를 갓 볶아 사용하는 안목해변의 한 카페 4 커피 한잔은 휴식, 위안과 위로,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3 신선한 커피를 갓 볶아 사용하는 안목해변의 한 카페
4 커피 한잔은 휴식, 위안과 위로,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강릉이 커피의 성지가 된 까닭은

커피에는 다양한 맛이 있다. 향은 더욱 그렇다. 단순히 ‘그윽하다, 은은하다’ 정도로만 말하기엔 부족하다. 커피 향은 구체적이다. 과일 향, 견과류 냄새, 구운 빵 냄새, 곡물 향, 꽃향기, 나무 향, 재 냄새, 초콜릿 향, 캐러멜 향, 탄내, 흙내등 전문가가 아니면 구별하기 힘든 다양한 향이 존재한다. 용혜원 시인이 ‘한 잔의 커피’에서 커피에는 많은 것이 녹아 있다고 한 것이 이 때문이 아닐까.

“사랑이 녹고 / 슬픔이 녹고 / 마음이 녹고 / 온 세상이 / 녹아 내리면 / 한 잔의 커피가 된다 / 모든 삶의 이야기들을 / 마시고 나면 / 언제나 빈 잔이 된다 / 나의 삶처럼 / 너의 삶처럼”

강릉에는 유명한 커피집이 여럿 있다. 그러고 보면 커피도 차의 한 종류가 아닌가. 이 같은 맥락에서 본다면 강릉은 차의 역사가 깊은 곳이다. 그 역사는 신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한송정’ 정자 주변에는 화랑들이 차를 달여 마실 때 사용한 다구(茶具)가 남아 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차 관련 유적지다. 경포대 역시 차를 달여 마신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강릉의 차 맛이 유명한 이유는 무엇일까?

차 맛은 물맛이 결정한다. 강릉에서는 백두대간의 깊은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석간수로 차를 다렸다. 이처럼 현지인들은 물맛이 커피 맛의 비밀이라고 주장한다. 더불어 커피 맛을 결정짓는 요인으로 심미적인 부분을 빼놓을 수 없다. 흔한 말로 ‘커피는 분위기 맛’이라고 하지 않던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카페, 커피 관련 소품이 가득한 앤티크 카페, 로스터가 직접 커피를 볶고 바리스타가 직접 커피를 내리는 카페라면 분명 비교할 수 없는 커피 맛을 경험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커피 장인들이다. 강릉에 커피 붐을 일으킨 드립커피 1세대인 박이추 선생, 커피공장 테라로사의 김용덕 대표, 숯불 로스팅의 대가인 심권섭 대표 등은 강릉을 커피의 성지로 이끈 주역들이다. 커피로 지역을 특화시키려는 강릉시와 시민들의 안목도 한몫했다. 그 결과 강릉에는 안목해변, 정동진해변, 경포해변 등지에 수많은 커피전문점이 생겨났다.

5 테라로사 커피공장에서 운영하는 카페 6 바리스타가 직접 내려주는 그윽한 커피 한잔은 겨울 강릉 여행의 백미다.

5 테라로사 커피공장에서 운영하는 카페
6 바리스타가 직접 내려주는 그윽한 커피 한잔은 겨울 강릉 여행의 백미다.

커피를 맛볼 수 있는 특별한 곳

박이추 선생은 ‘커피 1세대’로 불린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로 로스팅 문화를 퍼트린 커피 명인이다. 강릉이 커피의 성지가 될 것을 내다본 것일까? 1988년 서울에서 커피집을 연 이후 13년 만에 강릉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금은 사천진해변에 ‘보헤미안 박이추 커피공장’을 열었다. 이곳에 가면 대한민국 1세대 바리스타가 직접 내려주는 커피를 마실 수 있다.

여기에 김용덕 대표가 ‘테라로사’로 커피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지금까지 전국에 11개 직영점을 열었다. 커피계의 미다스의 손으로 통하는 절대 강자 스타벅스의 아성에 도전장을 낸 것이다. 강릉 테라로사는 공장과 커피집이 같이 있다. 때문에 기존 카페에서 느낄 수 없는 이색적인 분위기가 감돈다. 커피 맛은 기본이고 문화와 예술까지 접목해 강릉을 찾는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커피 박물관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이곳에는 인류 최초의 커피인 오스만튀르크의 커피부터 고종 황제가 즐겼다는 ‘양탕국’ 커피까지, 커피의 역사는 물론 커피 제조 과정도 살펴볼 수 있다. 수백 년 된 로스팅 기계와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고가의 찻잔 등 7,000여 점의 소장품 가운데 200여 점을 순환 전시한다. 특히 야외 온실에서는 커피나무에 열린 커피콩도 확인할 수 있어 좋은 추억이 될 게다.

강릉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에게 안목해변은 특별하다. 경포대해변처럼 유명한 곳이 아니었기에 오히려 현지인들의 아지트로 남을 수 있었다. 원두의 원산지가 어딘지, 로스팅은 어떻게 했는지는 몰라도 그들은 젊은 시절을 안목해변에서 커피와 함께했다. 일명 ‘길다방’이라 불리는 커피 자판기가 그들이 애용하는 카페였다. 특이한 것은 자판기에서 나오는 커피가 맛이 똑같지 않다는 것. 자판기 커피 삼총사인 설탕, 크림, 블랙은 기본이고 콩가루, 미숫가루, 잡곡이 들어간 상상을 초월하는 커피를 선보인다. 그랬던 안목해변이 이제는 번듯한 커피 전문점이 늘어선 커피 명소가 됐다. 안목해변에서는 옥상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이 여럿 있다. 추위는 잠시 잊고 편안한 의자에 앉아 짙푸른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커피 한잔을 마셔볼 일이다. 미세 먼지 걱정 없는 푸르른 날이면 더욱 좋겠다. 푸른 동해와 세찬 파도 소리, 입과 코를 가득 채우는 향기로운 커피 한잔에 이유 없이 행복해질 것이다.

7 허난설헌 기념관에 눈이 소복이 덮여 운치를 더한다

7 허난설헌 기념관에 눈이 소복이 덮여 운치를 더한다

커피의 참맛이 스민 강릉

강릉에는 커피를 닮은 여성 인물 두 명이 있다. 신사임당(1504~1551)과 허난설헌(1563~1589)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강릉 출신이라는 것과 천재 여류 예술가로 당대는 물론이고 지금까지 칭송받고 있다. 그렇지만 속내는 조금 다르다. 신사임당은 시와 그림, 글씨 등을 배워 7세 때 탁월한 재능을 보였지만 ‘율곡 이이의 어머니’란 타이틀에 묻혀버렸다. 결국 그녀가 가졌던 뛰어난 천재성은 사장된 채 48세에 세상을 마감했다.

반면 허난설헌은 오로지 시로서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8세 때 지은 한시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을 통해 주변 어른들로부터 신동 소리를 들었다. 성장해서는 중국과 일본에까지 시로 명성을 떨치며 주옥같은 시 213수를 남겼다. <홍길동전>을 지은 동생 허균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럼에도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이 재능을 꽃피우기란 쉽지 않았다. 시어머니의 몰이해와 학대, 남편의 무능과 불통은 점차 그녀를 쇠약하게 만들어 27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쳤다.

신사임당의 행적은 오죽헌에 있다. 오죽(烏竹)이란 손가락만한 굵기의 검은색 대나무를 일컫는 말로 집 뒤뜰에 오죽이 군락을 이뤄 오죽헌이라 부른다. 우리나라 주거용 건축물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신사임당은 이곳에서 율곡 이이를 낳았다.

허난설헌의 집은 초당두부로 유명한 강릉 초당동에 자리한다. 지금 것은 생가 터에 복원한 것으로 안채와 사랑채가 있다. 주변 솔숲에 작게나마 문학공원과 기념관이 자리한다. 두 여성의 생가와 기념관을 돌아보면 커피의 단맛, 신맛, 쓴맛, 짠맛처럼 다양한 맛이 느껴진다. 그 이유는 예술이나 인생이 숱한 방향으로 굴곡지며 삶을 이어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사람한테서도 꽃향기, 구운 빵 냄새, 재 냄새 같은 커피 향이 나는 게 아닐는지. 나에게 맞는 커피 향을 찾아 강릉으로 떠나볼 일이다.

여행 정보

· 하룻밤 머물고 싶은 곳 :
정동진 하슬라아트월드(033-644-9411) 내에 숙박시설이 있다.
‘예술에 눕다’라는 콘셉트로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인테리어를 선보인다.
엄마 품에 안긴 듯 포근한 잠자리에서부터 예술가의 손길을 거친 실내장식이 호텔보다는 갤러리에 가깝다.

· 여행 문의 :
강릉시 종합관광안내소 033-640-4531

· 여행 팁 :
커피투어를 할 경우 남강릉IC에서 가까운 테라로사 커피공장을 먼저 방문하고 커피박물관을 거처 강릉항 커피거리를 찾는 것이 좋다. 강릉 커피거리는 안목해맞이공원에서부터 강릉항까지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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