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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에너지를 마찰로 잡다
허버트 프루드의 노력
Herbert Frood

움직이는 물체가 멈추려면 움직이려는 힘을 줄이거나 다른 에너지로 전환시켜 소비시키면 된다.
달리는 자동차를 멈출 때는 회전하는 바퀴에 다른 물체를 마찰시킨다. 이때 운동에너지는 열에너지로 전환되고,
공기 중으로 방출된다. 이른바 ‘에너지 변환’이다. 그래서 자동차 브레이크 시스템의 발전에는 언제나
발열(發熱, Ventilated)을 주목하는 과학자가 많았다. 그중 영국의 엔지니어 허버트 프루드와
프레데릭 윌리엄 란체스터는 마찰력을 높이기 위해 평생을 고민했던 인물이다.

편집실 일러스트 임성구

허버트 프루드

허버트 프루드
Herbert Frood(1864~1931)
영국의 발명가이자 기업가. 석면과 녹는점이 높은 수지의
합성 물질로 브레이크 라이닝을 만들어 특허를 얻었다. ‘과학적인
연구 개발만이 최고 품질의 제품을 생산 할 수 있다’는 모토로 평생
브레이크 제품의 개발과 생산에 집중했으며, 1897년에는 브레이크
공급 업체인 ‘FERODO’를 설립했다.

허버트 프루드는 석면 소재를 주목한 기술자다. 그는 회전을 억제하는 마찰력이 커질수록
마찰재가 받는 열(熱) 또한 많아지고, 그럴수록 브레이크 성능이 떨어진다는 점을 파악해 내열성이
높은 소재 확보에 평생을 매진했다.

드럼 브레이크의 등장

자동차에 있어 최초의 브레이크 소재는 나무였다. 감속을 위해 제동 손잡이를 당기면 나무 조각이 바퀴를 마찰시켜 속도를 줄였다. 하지만 엔진 성능이 발전하면서 목재 브레이크로는 달리는 성능을 감당하지 못했다. 그러자 드럼 브레이크가 등장하게 되는데, 여기서 언급되는 인물이 독일 자동차의 개척자로 알려진 빌헬름 마이바흐(Wilhelm Maybach)다. 1890년 고틀리프 다임러가 자동차 회사를 설립했을 때 수석 설계자로 참여해 다양한 자동차 기술을 개발한 마이바흐는 자동차 ‘설계의 왕(King of Designers)’으로 불렸을 만큼 초창기 자동차 역사에서 큰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는 드럼 브레이크를 구체화한 엔지니어였으며, 드럼 브레이크뿐 아니라 4기통 가솔린 엔진을 제작했다. 스프레이 노즐 기화기와 지금의 팬이 부착된 라디에이터 또한 그의 작품이다.

압력과 마찰을 고민하다

하지만 마이바흐의 드럼 브레이크에 앞서 마찰재 역할을 하는 라이닝을 고안한 인물은 1888년 세계 최초의 장거리 자동차 여행에 도전했던 칼 벤츠의 아내, 베르타 벤츠(Bertha Benz)다. 그녀는 장거리 여행을 하면서 브레이크 성능의 향상이 필요하다고 느꼈고, 라이닝을 사용해 마찰을 일으키면 된다는 생각에 남편 칼 벤츠와 함께 특허를 취득했다.

1900년 마이바흐는 베르타 벤츠의 특허를 활용해 자동차에 처음 드럼 브레이크를 적용했다. 하지만 마찰열을 외부로 정교하게 빼내지 못하는 문제점이 발생했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무엇보다 회전하는 바퀴와 마찰시키는 소재의 원인이 컸다. 이를 눈여겨본 프랑스의 엔지니어이자 현재 르노자동차의 설립자인 루이 르노(Louis Renault)는 새로운 라이닝 소재의 드럼 브레이크로 특허를 취득하며 제동 시 발생하는 마찰열을 효율적으로 제거했다. 루이 르노는 마찰열을 외부로 보내는 방법으로 석면 소재의 라이닝을 사용했는데, 이는 마이바흐의 드럼 브레이크보다 정교했고 성능도 뛰어났다.

라이닝의 재질로 석면을 사용한 사람은 루이 르노만이 아니었다. 1908년 영국의 발명가이자 산업기술자였던 허버트 프루드(Herbert Frood, 1864~1931) 또한 석면 소재를 주목한 기술자다. 허버트는 당시 여러 자동차 엔지니어들과 고민의 시작이 달랐다. 남들이 회전하는 바퀴 축과 마찰재를 최대한 큰 힘으로 접촉시키는것에 매진할 때 그는 오로지 마찰 소재에만 집중했다. 회전을 억제하는 마찰력이 커질수록 마찰재가 받는 열(熱) 또한 많아지고, 그럴수록 브레이크 성능이 떨어진다는 점을 파악해 내열성이 높은 소재 확보에 평생을 매진한 것이다.

발열의 시대, 새로운 기술에 주목

회전하는 바퀴를 라이닝으로 마찰시켜 멈추는 드럼 브레이크는 지금도 사용될 만큼 오랜 시간 검증된 제동기술이다. 하지만 빠르게 멈추고, 그 사이 발생하는 마찰열을 외부로 방출시키려는 노력은 끊임없이 지속됐다. 그 결과물이 바로 디스크 브레이크(Disc Brake)다. 회전하는 바퀴에 마찰재를 이용하되 좌우 모두 마찰시키면 그만큼 발열 능력이 높아져 제동력이 우수해지는 방식이다. 드럼 브레이크가 회전체의 한쪽에만 마찰을 시키는 것과 달리, 디스크는 양면을 모두 마찰시킬 수 있어 회전체를 잡는 힘도 줄일 수 있었다.

디스크 브레이크에서 주목할 인물은 프레데릭 윌리엄 란체스터(Frederic William Lanchester, 1868~1946)다. 1931년 영국 버밍햄에선 란체스터자동차(Lanchester Motor Company)가 설립됐는데, 창업자는 프레데릭(Frederic), 조지(George), 프랭크(Frank) 세 명의 란체스터 형제다.

이 가운데 초창기 자동차 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운 프레데릭 란체스터는 1895년 1,306㏄의 단일 실린더 엔진이 탑재된 첫 번째 란체스터 자동차를 내놓은 이후 1897년에는 두 개의 실린더가 들어간 엔진 그리고 1902년에는 자동차 기술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디스크 브레이크를 처음 고안한 사람이다.

BRAKE

디스크 브레이크의 등장

프레데릭 윌리엄 란체스터는 영국 내연기관 발전의 기반을 닦은 엔진 설계자 해리 랄프 리카르도(Harry Ralph Ricardo) 및 롤스로이스 설립자인 헨리 로이스(Henry Royce)와 함께 이른바 영국 자동차 엔지니어 빅3에 포함될 정도로 자동차 기술의 진보를 이뤄낸 인물로 꼽힌다.

란체스터가 기술 발전을 이뤄내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정규 교육은 그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지 못했고, 결혼도 51세에 했을 만큼 호기심 해결에 매달렸다. 그는 언제나 ‘자연의 모든 것에는 에너지가 있다’는 생각을 떨치지 않았다. 1890년 가스 엔진에 사용되는 셀프 스타터 특허를 취득한 것도, 디스크 브레이크를 고안한 것도 결국은 움직임에는 에너지가 있고, 이를 필요에 맞도록 전환하면 적은 에너지로도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결과이다.

하지만 란체스터의 디스크 브레이크는 설계상 실용적이지 못했다. 디스크와 패드 등이 들어갈 공간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디스크 브레이크 시스템이 대중화된 곳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사용된 항공기와 탱크였다. 전쟁 당시 자동차 회사는 대부분 군용차를 만들었고, 그중 하나인 영국 다임러가 1939년 란체스터의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군수용 기갑차에 디스크 브레이크를 적용했다. 군용차의 특성상 네 바퀴굴림이 필수인데, 당시 일반적으로 사용했던 드럼 방식의 브레이크로는 구동축을 연결할 공간이 충분하지 못한것이 이유였다.

그러자 독일 또한 1940년 아르구스자동차(Argus Motoren)를 통해 항공기용 디스크 브레이크 특허를 취득한다. 아르구스는 독일의 주력 항공기인 ‘Arado(아라도) Ar 96’ 모델에 최적화된 디스크 브레이크를 공급하고 곧이어 무거운 탱크에도 적용했다. 미국도 이에 질세라 비슷한 시기에 크로 슬리자동차를 설립해 디스크 브레이크를 발전시켰다. 1939년 파월 크로슬리 주니어가 설립한 크로슬리자동차(Crosley Motor)는 주로 작은 차를 만드는 기업으로, 454㎏에 불과한 2도어 컨버터블을 250달러에 팔았다.

1953년 재규어 C-타입 레이싱카

1953년 재규어 C-타입 레이싱카

디스크 브레이크의 대중화를 열다

무엇보다 크로슬리자동차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다양한 기록이다. 1948년 작은 트럭 차체를 활용해 처음으로 스포트 유틸리티(Sport Utility) 개념을 만들었고, 1946년 내놓은 ‘SOHC(Single OverHead Camshaft) 엔진도 이들의 발명품이다. 1949년에는 네 바퀴에 캘리퍼 타입 디스크 브레이크를 적용해 주목받았는데, 이른바 디스크 브레이크의 대중화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가격이 비싸 1950년 당시 고급차였던 크라이슬러 크라운 등에만 적용이 가능했다.

그럼에도 성능이 뛰어났던 이유로 디스크 브레이크는 F1까지 영역이 확장됐다. 결국 1953년 재규어 C-타입 레이싱카에 적용돼 제동력을 인정받고, 1955년 시트로엥이 DS 앞바퀴에 캘리퍼 타입의 디스크 브레이크를 기본 적용하며 대량 생산이 가능해진 것이다. 20년 동안 150만 대가 판매됐을 정도로 확장됐고, 이후 성능이 지속적으로 개선돼 지금은 대부분의 자동차에 사용된다.

역사적으로 디스크 브레이크의 실제적 역할은 엔진 성능발전에 기여했다는 점이다. 잘 멈출수록 달리기 성능이 높아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쏟아지는 고성능 자동차도 디스크 브레이크의 발전이 없었다면 결코 없었을 존재들이다.

브레이크로 에너지를 만들다

최근 브레이크는 에너지를 외부로 내보내는 것에서 벗어나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수단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른바 ‘회생제동(Regenerative Brake)’이다. 운전자가 일정 거리를 두고 멈추려고 할 때 회전하는 바퀴의 운동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바꿔 전기를 얻는 원리이다. 어차피 버려지는 운동에너지를 회수하는 것이어서 구체적으로는 ‘운동에너지 회생제동(KERS, Kinetic Energy Recovery Systems)’이라 부른다. 여기서 얻어진 전기를 구동 때 다시 활용하면 그만큼 전기 동력의 역할을 넓힐 수 있어 하이브리드와 전기차 등에 많이 활용된다. 물론 회생제동 또한 시작은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0년대 미국의 AMC(American Motors Corporation)가 회생제동 기술을 만들어냈고, 이후 전철 등에 널리 활용되며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렇게 보면 움직이는 물체를 정지시키는 것은 ‘에너지 낭비’임에 틀림이 없다. 내연기관으로 기름을 태우거나 저장된 전기로 동력을 만드는 것 자체가 움직임을 위한 것이지만 제동은 만들어진 동력이 움직임에 적용되지 않도록 에너지를 전환시키는 역할이어서다.

따라서 ‘움직이는 모든 것에는 에너지 있다’는 프레데릭 란체스터의 호기심과 마찰열 방출을 연구한 허버트 프루드의 고민은 같은 맥락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지금은 버려지는 에너지를 얼마나 회수할 수 있을까를 찾아내는 시대이다. 운동에너지 외에 마찰로 방출되는 열에너지를 모두 회수해 다시 사용할 때까지 말이다.

프레데릭 윌리엄 란체스터

프레데릭 윌리엄 란체스터
Frederic William Lanchester(1868~1946)
1899년 란체스터 엔진 회사를 설립, 자동차와 엔진을 개발하였으며
1895년 영국 최초의 4륜 자동차를 제조하였다. 1902년 디스크 브레이크로
특허를 취득하였다. 디스크 브레이크는 드럼 브레이크와의 경쟁으로 1950년
대가 돼서야 영국에서 재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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