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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가는 도시인의 트렌디한 취미
시티팜

C i t y F a r m

아파트와 기업, 학교, 심지어 백화점의 건물 옥상에 흙이 깔리고 있다.
그 위로 상추와 토마토, 호박 등의 작물과 함께 ‘소통’과 ‘관계’가 자란다.
삭막했던 콘크리트 빌딩에 생명이 움트고 있다는 얘기다.
21세기 시티파머(City Farmer)들이 이끄는 즐거운 변화다.

윤진아(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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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디한 청춘들의 ‘한 수 위 남녀상열지사’

시티파머(City Farmer)란 말 그대로 도시에서 농사짓는 사람을 말한다. 이들은 옥상, 발코니 등의 자투리 공간을 활용해 자신이 먹을 작물을 손수 기른다. 아스팔트나 시멘트 위에서도 흙을 담은 상자를 이용하면 얼마든지 농사를 지을 수 있는데, 이런 상자텃밭 하나가 탄소 배출량을 14g줄인다.

텃밭에서 가꾼 먹을거리를 ‘제로마일 푸드(Zero-mile Food)’라고도 하는데, 실제로 먹을거리 운송에 수송 연료인 석유를 쓰지 않으면 온실가스도 배출되지 않는다. 단순한 식량 자급을 넘어 탄소 배출을 줄이고 녹지를 늘리는 시티파머들이 도시를 바꿔나가고 있다.

불금 저녁, 젊음이 생동하는 홍대입구의 한 건물 옥상에 수상한 청춘 남녀들이 모여든다. 번화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옥상 텃밭에는 각종 허브부터 쌈채소, 콩, 배추 등의 작물이 주렁주렁 매달려 싱그러운 에너지를 내뿜는다. 씨 뿌리고 작물을 키워 수확하는 노동을 통해 얻는 성취감은 메마른 도시 생활에 활력을 준다.

‘홍대다리텃밭’, ‘문래옥상텃밭’, ‘비빌기지 키친팜’, ‘광명 자란다팜’ 등의 도시농업 커뮤니티에서 함께 농사짓는 시티파머들은 “도시농업은 인간의 경작 본능과 자연 모방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도시인들의 예술활동”이라며 “일과 후 농사를 지으며 일상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것은 물론, 새로운 시각으로 작물을 마주하며 영감을 불어넣는다”고 말한다.

흙을 만지고 농사짓는 행위가 ‘나이 든 사람들의 고리타분한 소일거리’라고 치부하던 인식에서, 이제는 도시 환경을 생각하는 젊은 사람들의세련된 놀이문화이자 앞서가는 커뮤니티 활동으로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실제로 도시농업은 사람들을 모으고 이웃 간의 연계를 강화하는 순기능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서울시 마포구에서 공동텃밭을 만들어 채소를 나눠 먹는 커뮤니티 ‘파절이(파릇한 절믄이)’는 2013년 협동조합으로 정식 인가도 받았다. 대학생, 직장인 등으로 구성된 100여 명의 회원 이외에도 농작물이 시들지 않도록 상근 운영진까지 갖춘 단체다.

학점 경쟁이나 조직생활의 긴장을 공동텃밭에 털어버리고 농사를 즐기는 청년들은 매주 ‘목요 밥상’을 열고 손수 수확한 작물로 음식을 만들어 나눠 먹는다. 토요일에는 신나는 노래와 함께 텃밭을 가꾸고, 농업 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전문가를 초청해 강의를 듣기도 한다. 배추와 무를 재배해 다 함께 김장도 하고, 그 외에도 계절에 따라 다양한 행사를 펼친다.

시티파머들은 “도시농업은 인간의 경작 본능과 자연 모방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도시인들의 예술활동”이라며 “일과 후 농사를 지으며 일상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것은 물론, 새로운 시각으로 작물을 마주하며 영감을 불어넣는다”고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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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프톱 팜, 테트리스 농장 “이거 실화냐?”

이탈리아의 슬로푸드 운동에 영향을 받아 1980년대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등장한 시티파머는 21세기 들어 환경문제가 대두되면서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인구학자들은 다가올 미래에 인류에게 던져질 가장 큰 쟁점으로 세계 인구 증가와 그에 따른 식량 부족을 꼽는다. 세계경제포럼(WEF)도 지구온난화, 가뭄과 홍수, 도시화에 따른 이상기후가 농작물에 큰 피해를 주면서 식량 부족이 심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20년쯤 뒤엔 지구의 전체 인구 중 약 70%가 대도시에서 거주할 것이라는 전망에 따라, 도시 중심의 식량 공급과 유통 시스템도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과학자들도 다각도의 연구를 통해 차세대 농사법을 속속 개발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IT 기술을 활용한 수직형 농업(Vertical Farming)이다. 언뜻 보면 블록퍼즐게임 ‘테트리스’를 연상케 하는 이 새로운 형태의 농업은 고층 건물 내에 농장을 수직으로 쌓아 올리는 개념으로, 층층이 쌓은 재배틀에 흙 없이 물과 LED 조명으로 식물을 재배한다. 기온과 습도의 인위적 조절이 가능해 환경 변화에 취약한 야외 텃밭보다 재배효율이 뛰어나고, IT 기술과 접목한 원격 재배가 가능해 ‘미래 농법’으로 불린다.

뿐만 아니다. 유럽에서는 몇 년 전부터 정책적으로 창가 농업(Window Farming) 또는 지하 농업(Underground Farming)으로 불리는 다양한 형태의 도시농업 프로젝트를 실험하고 있다. 전업 농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식용 채소를 스스로 재배해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있게 하는 오픈 소스 농경 붐을 독려하는 것이다.

미국 뉴욕시에서도 주택과 사옥 건물의 옥상에 설치된 농장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루프톱 팜(Rooftop Farm)이다. 미국은 자생적 도시농업의 대표 국가로, 주정부마다 시민들이 마음껏 농작물을 경작할 수있도록 세세한 조례를 마련해놓고 있다. 뉴욕시는 도시텃밭 조성을 위한 시민사회단체가 운영하는 그린썸(Green Thumb) 프로그램을 시 차원에서 지원하고 있다. 고층빌딩이 즐비한 뉴욕은 5,000여 개의 옥상정원이 조성됐으며, 이를 토대로 공동체 활동이 늘어나 인간관계를 회복하는 소통의 장이 되어주고 있다.

캐나다도 밴쿠버동계올림픽을 유치하면서 도시 내에 2,000여 개의 텃밭을 조성해 시민 화합을 유도한 바 있다. 최근의 연구 결과를 보면 벽면녹화, 옥상정원 조성을 통해 평균 30% 이상의 냉방 효율 향상 성과가 보고되기도 했다. 또, 소나기에 의한 도심 홍수 완충 작용, 미세 먼지 등 건강 위협 요소를 흡착해 감소시키는 효과도 인정됐다.

지구촌 곳곳에서 활발하게 진행 중인 도시농업은 그 목적도 점차 다양해지는 추세다. 환경보호, 교육, 공동체 활성화, 공한지 재이용, 장기 입원 환자 심리치료 등 도시농업의 긍정적 효과가 속속 입증되며 각국 정부도 적극적으로 시티파머를 키우고 있다.

‘싹수 푸른’ 시티파머들이 이끄는 지속 가능한 미래

한국의 도시농부도 눈에 띄게 늘었다. 농림축산식품부 발표에 따르면, 2016년 도시농업 참여자는 159만 명, 도시텃밭 면적은 1001ha에 달한다. 2010년과 비교하면 참여자 수는 10.5배, 경작 면적은 9.6배 늘어난 수치로, 매년 20%가량의 증가세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올 9월 정부가 세계 최초로 도시농업관리사 국가자격제도를 도입한 이유다. 정부는 도시농업관리사 국가자격제도와 일자리를 연계하기 위해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도시농업 관련 교육 · 훈련을 수행할 경우, 교육 · 훈련인원 40명당 도시농업관리사를 1명씩 의무 배치하도록 했다. 또, 매년 4월 11일을 법정 기념일인 ‘도시농업의 날’로 지정해 도시농업 확산에 힘을 실었다.

지자체와 지역 사회적협동조합이 손잡고 도심농장 사업을 추진하기도 한다. 인천광역시는 남구 소재 빈집 가운데상당수에 수직형 도심농장을 조성할 방침이다. 인천시는 이 사업이 원도심 빈집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청년창업 등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도시농부가 늘어날수록 농촌의 전업농과 우리 농산물에 관심도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함께 농업도 자연스럽게 활성화되고 식량주권을 지킬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구축될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소비자들의 각성도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도시농업은 식량의 문제를 넘어 동시대인들의 라이프스타일 변화이자, 소비와 기업, 세상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로 연결된다. ‘나에게만 좋은 소비’에서 ‘세상을 위해 좋은 소비’로 일상 소비재의 방향이 바뀌고 있다는 뜻이다.

이타적 소비를 지지하는 시티파머들은 도시에 살지만 지구 생태계 보전을 위해 자신이 먹을 것을 직접 재배하는 것은 물론이고, 친환경 재료로 비누와 화장품을 손수 만들어 쓰며, 포장하지 않은 물건을 구매하는 선택에도 익숙하다. 진화한 소비자들은 ‘편리’와 ‘가치’ 사이에서 합리적인 절충지대를 선택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즐거움과 삶의 방식을 만들어나간다. 삭막한 회색빌딩에 생명을 불어넣으며, 시티파머들이 도시를 텃밭 삼아 지속 가능한 도시의미래를 싹틔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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