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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위에
길을 내다

원종민 대한산악연맹 등산교수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스펙터클한 무용담 같은 걸 기대했다면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원종민 등산교수는 ‘절체절명의위기’ 같은 건 애초에 만들지 않는 사람이다.
진짜 산쟁이는 정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연 앞에서 한없이 미미한 자신을 직시하기 위해 산에 오른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내 다시 내려온다. 인간이 발붙이고 살 곳은 땅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윤진아(자유기고가)   사진 정우철

원종민 대한산악연맹 등산교수

등산의 목표는 ‘안전하게 내려오는 것’

세상 꼭대기에 서면 겸손해진다. 기록을 경신하겠다는 뜨거운 열망도 사그라지고, 살아 내려가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뿐이다. 원종민 등산교수는 “인간은 결코 자연을 상대로 이길 수 없다”는 말로 입을 열었다. 자연을 상대로 한 도전에서 인간이 이룰 수 있는 최고의 성취는 그저 살아남는 것뿐이다.

원 교수가 암벽 타기에 입문한 건 대학 2학년 때였다. 1982년 산악회에 가입한 뒤로 한 주도 빠지지 않고 산에 다녔다. 장비 살돈을 마련하기 위해 밥도 굶고 서울 신당동 집에서 명동까지 걸어다녔을 만큼 열의 넘치던 시절이었다. 바위 타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산행에 앞서 계획을 짜는 것도 설레고 즐거웠다. 산을 제대로 다니려면 지도를 정확하게 읽을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독도법도 공부하고, 등반일지를 쓰는 것도 습관화했다. 선배가 툭 던져준 산서는 그날로 밤을 새워가며 읽어 내려가곤 했다.

“처음엔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어요. 어머니가 암벽은 위험하다며 등산 장비를 죄다 감춰두는 바람에 집 안에서 때아닌 보물찾기를 하는 일도 부지기수였죠. 결국 부모님을 설득할 수 있었던 건 제 철저한 안전의식 덕분이었어요. 평소 안전 장구 없이는 절대로 등반하지 않고 자칫 지나치기 쉬운 기본 수칙까지 엄수하니, 35년간 암벽을 타면서 단 한 번도 다쳐본 적이 없지요.”

원종민 교수는 ‘등산의 목표는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오는것’이라고 단언했다. ‘산을 얕봤다간 큰코다친다’는 경고에도 힘이 실렸다.

“히말라야든 뒷동산이든 등산에 나설 땐 산에서 마주칠 수있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고 떠나야 합니다. 제가 지금껏 숱한 산행을 해오면서 절실하게 느낀 게 바로 자신의 체력 조건이나 생활 환경을 고려해 무리 없는 산행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 특히 요즘처럼 동절기로 넘어가는 시기의 산행은 날이 추운데다 근육과 관절마저 굳어 있기 때문에 더욱 꼼꼼하게 등산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체력에 무리가 온다 싶으면 정상 등반 욕심을 버리고 곧장 하산해야 하고요.”

원종민 대한산악연맹 등산교수

내 인생의 산에 도전하라

세계 최고 높이 15m 인공빙벽 앞에 선 원종민 교수의 얼굴에 자못 비장한 기운이 감돈다. 원종민 교수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대한민국 대표 산악인이다. 서울 우이동에 소재한 코오롱등산학교에서 암벽 타기와 등산 기술을 가르치며 길러낸 제자가 1만 5,000명을 훌쩍 넘는다. 히말라야 등반 과정 강사로 참여해 설상/설벽/빙벽 등반 기술과 구조 기술도 전수했다. 남극 세종기지 월동대원들의 극지적응훈련 교관을 맡아 극지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위급상황에 대비한 등반 기술을 가르치기도 했다. 지난 8월부터는 마운틴TV ‘원종민과 함께하는 스마트 등산교실’을 통해 안전한 산행 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수직고 350m, 동양 최대 높이인 설악산 토왕성폭포는 원종민 교수에게 사연 많은 장소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토왕폭은 클라이머들에게 꿈과 같은 도전 대상이었어요. 1984년 겨울, 빙벽 등반에 입문하면서 자연스럽게 토왕폭을 목표로 삼았죠. 그에 앞서 1985년 1월에 우선 구곡빙폭에 도전했는데 끝내 오르지 못했어요. 그해 12월엔 동기와 함께 구곡빙폭 아래 민박집에 아예 베이스캠프를 차렸죠. 토왕폭 등반을 앞둔 전지훈련으로요. 거대한 토왕폭을 오르려면 구곡폭 같은 작은 빙폭을 하루에 열 번 이상 올라야 한다는 생각에 속도를 내봤지만 쉽지 않더군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등반을 거듭하니, 하루에 세 번밖에 못하던 게 다섯 번, 여섯 번으로 늘어났어요.”

1986년 마침내 토왕폭 정수리에 올라서는 데 성공했지만, 기대했던 감흥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때 깨달았다. 등반이란 결과보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토왕폭 정상에 오르는 동안 자신만의 등반 기술도 개발했다. 그때 몸에 밴 등반 기술은 산악인들 사이에서 교과서로 통한다. 원종민 교수가 쓴 책 <암벽등반의 세계>(1995)는 새내기 클라이머들에게 입문서와도 같은 책이고, <등산>(2003)은 대한산악연맹에서 교재로 사용하고 있다.

원종민 대한산악연맹 등산교수

가지 않은 길도 표지판을 세우면 길이 된다

원종민 등산교수가 특히 사랑해 마지않는 설악산 일원에는 그의 족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개척등반에 남다른 열의를 보여온 원 교수는 설악산 대승폭 좌벽에도 길을 냈고, 소토왕골 좌벽 루트 개척에도 참가했다. 설악산 토막골 형제봉 200m 거벽을 비롯해 장군봉 일원에도 많은 길을 낸 그는 이후에도 시간만 나면 개척 등반을 위해 설악산을 찾았다. “장군봉에 개척한 루트들은 정말 좋은 길이죠. 난이도가 높긴 하지만 재미있는 루트라서 지금도 인기랍니다. 소토왕골 루트도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어 보람을 느껴요.”

끊임없는 도전의 종착지가 어디냐고 물으니 히말라야도 아니고, 북극점도 아니고, 산에서 내려와 사랑하는 사람들과 둘러앉은 소박한 선술집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극한의 고비를 넘길 때마다 그를 견딜 수 있게 해준 건 베이스캠프 안에 있는 따끈한 차였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 용기 있는 도전이 아니었다면 차 한 잔, 막걸리 한 사발의 소중함을 어디서 깨달을 수 있었겠느냐는 너스레에 미소가 고인다.

행복은 가까이에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잊고 사는 사람들에게 원종민 교수는 그래서 ‘산을 한번 다녀오라’고 권한다.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두렵지 않다고 말한다면 그건 거짓말일 테지요. 하지만 두려워서 떠나지 못한다면 평생 꿈만 꾸다 말 거예요. 단 하루 만에 돌아오는 한이 있더라도 저는 출발할 겁니다. 아직도 못 오른 산을 보면 가슴이 뛰거든요 물론 출발 전 철두철미한 사전 준비는 필수고요.(웃음)”누구에게나 힘들고 어려운 시간은 찾아온다. 산에 오르다 마주하는 숱한 위기처럼 말이다.

“다행스러운 사실은, 어떤 한계를 넘었다는 극기의 경험이 인생의 여러 위기를 이겨내는 힘을 키워준다는 겁니다. 여러분 스스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과연 정말로 이룰 수 없는 꿈인지 곱씹어볼 필요가 있어요. 어렵다, 희망이 없다고 토로하는 분들에게도 감히 ‘한번 부딪쳐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사람들은 스스로 한계를 긋기 때문에 안주하게 되니까요.”

늦은 나이에 그림을 시작한 절 보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먹고살 수 있는지’ 알고 싶어 하더군요. 결론부터 말하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확실한 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순간부터 다른 사람으로 바뀐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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