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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자동차 문화의 중심지
영국의 자동차 이야기

영국은 역사와 전통에 대한 고집, 축구, 피시 앤 칩스, 독특한 정서가 깔려 있는 패션과 음악 등으로 알려진 나라다.
더불어 개성 넘치는 수많은 자동차 회사의 고향이자 독보적인 모터스포츠 기술 등으로 세계 자동차 문화 전반에 광범위한 영향을
끼친 나라이기도 하다. 보면 볼수록 매력 있고 알면 알수록 놀라운 나라, 영국의 자동차 문화를 살펴보자.

글 류민(모터 트렌드 에디터)

영국의 자동차 이야기

익숙하고도 낯선 나라 영국. 정식 명칭은 ‘그레이트브리튼과 북아일랜드 연합 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이다. 공용어는 영어이며 콘월, 웨일스, 스코티시 게일릭, 아이리시 게
일릭 등의 지역어를 쓴다.
입헌군주국의 표본이자 연합 국가로 각 나라는 자치권을 보장받으며,
우리나라 면
적의 약 2.4배이며 약 6,480만 명(2015년 기준)의 인구가 살고 있다.

보수주의와 실리주의가 뒤엉킨 문화

영국 하면 왕궁, 왕실 근위병, 맥주가 생각나는 축구와 피시 앤 칩스, 런던의 상징인 빨간색 2층 버스와 껑충한 검정 택시 등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롤스로이스, 벤틀리, 애스턴 마틴, 재규어-랜드로버, 로터스, 미니 등 개성 넘치는 자동차 회사들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물론 영국에서 시작된 좌측통행과 우핸들 자동차도 빼놓을 수 없다. 좌측통행은 칼을 왼쪽 허리춤에 차고 말을 타는 중세 기사들이 불필요한 접촉을 피하기 위해 중앙선을 오른쪽에 두며 시작됐다는 설과 마차가 우측통행을 하면 채찍이 인도 쪽을 향하게 되므로 보행자를 보호하기 위해 왼쪽으로 달리며 시작됐다는 설이 있다. 진짜 이유가 뭐가 됐건 현재의 자동차 문화가 말과 마차에서 내려왔음을 알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임은 틀림없다. 참고로 지금은 영국과 영연방 국가 등 전세계 51개 국가가 좌측통행을 하고 있다.

변화를 싫어하는 영국인의 성향도 이런 전통을 보존하는 데 한몫했을 것이다. 그들은 물건뿐만 아니라 법률, 사회 제도 등을 바꾸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하지만 최근 이런 선입견을 한방에 깨뜨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국제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킨 영국의 유로 존 탈퇴 ‘브렉시트(Brexit)’가 그것이다. 이는 찬반 국민 투표로 일단락됐다. 결과는 찬성 52%, 반대 48%로 젊은층은 잔류, 고령층은 탈퇴로 갈렸다.

브렉시트가 수면 위로 떠오른 건 강대국에서 EU 회원국으로 축소된 영국의 영향력과 고질적인 경제 불균형 그리고 해외 난민 유입 증가로 인한 고용 불안과 치안 이슈 때문이다. 투표 결과는 참고 사항일 뿐, 브렉시트 시행까지 갈 길은 아직 멀다. 탈퇴 후폭풍 역시 만만치 않기에 시행 결정은 쉽지 않을 것이다. 가능성은 낮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닌 브렉시트. 여기서 필요하다면 관습 따위는 철저히 무시하는 영국인의 실리주의를 엿볼 수 있다.

1 강철 와이어를 타고 런던 템스 강을 건너고 있는 재규어 XE. 영국 자동차 회사들은 종종 이런 파격적인 이벤트를 진행한다. 2 영국 왕실은 특별한 일이 있을 때면 아직도 마차를 이용한다. 3 블랙캡과 함께 런던을 상징하는 빨간색 2층 버스.

1 강철 와이어를 타고 런던 템스 강을 건너고 있는 재규어 XE. 영국 자동차 회사들은 종종 이런 파격적인 이벤트를 진행한다.
2 영국 왕실은 특별한 일이 있을 때면 아직도 마차를 이용한다.
3 블랙캡과 함께 런던을 상징하는 빨간색 2층 버스.

4 주문 제작 프로그램인 비스포크를 이용하면 자동차 천장에 자수를 새길 수도 있다.

4 주문 제작 프로그램인 비스포크를 이용하면 자동차 천장에 자수를 새길 수도 있다.

영국 자동차 산업의 저력,
백야드 빌더와 비스포크

유럽연합 탈퇴 선언 이전부터 영국 자동차 산업은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영국 차’만큼은 건재하다. 마치 유령처럼 말이다.

무슨 이야기일까? 영국의 대표 자동차 메이커 대부분이 일찌감치 외국에 팔렸다. 롤스로이스, 벤틀리, 미니 등은 독일로, 재규어와 랜드로버는 인도로, 로터스는 말레이시아를 거쳐 중국에 넘어갔다. 심지어 영국의 상징 ‘블랙캡’을 만드는 런던 택시 회사마저 중국의 지리(Geely)에 인수됐다. 그런데 그들은 지금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마치 ‘영국’이 문제였던 것처럼 말이다. 눈부셨던 영국 자동차 산업이 왜 이렇게 됐을까? 전 세계에서 가장 빨리 산업화를 거쳤으며 그에 따른 사회 문제를 누구보다 먼저 겪어본 영국이지만 급변하는 시장에 맞게 표준화를 진행하지 못한 게 가장 큰 이유다. 즉, 전통을 중시하는 그들의 성향이 발목을 잡은 것이다.

최근 영국 차가 다시 각광받기 시작한 이유는 간단하다. 표준화와 모듈화를 통해 자동차 제작 기술이 상향평준화를 이뤘고 이런 흐름에 따라 소비자들이 성능 외적인 요소, 즉 디자인과 소재 그리고 디테일 등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영국 차 돌풍의 중심에는 럭셔리카와 스포츠카가 있다. 비스포크 프로그램을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롤스로이스나 벤틀리와 같은 메이커가 좋은 예다. 비스포크는 특별 맞춤 제작을 뜻한다. 슈트나 구두와 같은 패션 분야에서 시작됐으며 최근에는 명품 시계와 자동차까지 그 영역이 확장됐다. 맞춤 슈트와 구두 하면 원래 영국 아니던가? 영국 차의 흥망성쇠가 모두 전통에 대한 남다른 고집에서 시작된 것이다.

게다가 아직 영국에는 모건, TVR, AC, 케이터햄, 브릭스(BAC), 지네타, 인빅타 등 자동차 역사를 화려하게 수놓은 여러 소규모 메이커들이 있으며 이들 중 대부분이 꾸준하게 활동 중이다. 다소 생소한 이름일 수도 있지만 이들이 바로 자동차 문화 선진국 영국의 든든한 뿌리가 되어준 ‘백야드 빌더(Backyard Builder)’다. 집 뒷마당에서 차를 만든다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영국은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차를 만들어 탈 수 있다. 심지어 변기같이 생긴 차나 앞 유리가 없어 헬멧과 고글을 써야 하는 차라고 할지라도 최소한의 법적 요건만 만족한다면 번호판을 달고 도로로 나설 수 있다. 이는 제도와 관련 기관의 꾸준한 노력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며 이런 배경에서 출발한 백야드 빌더는 영국이 위대한 자동차 문화유산을 갖게 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왕과 귀족 그리고 서민 노동자가 오랫동안 조화롭게 살아온 나라 영국. 소박함과 기품이 깃든 화려함, 그리고 야만적이라고 할 정도의 승부 근성과 오랜 전통에서 비롯된 고집스런 예(禮) 같은 상반된 속성들이 적절히 균형을 유지하며 공존해 왔다. 그래서 비스포크나 백야드 빌더처럼 호화로움과 섬세함 그리고 당혹스러울 정도의 실리주의 등이 자연스레 어우러질 수 있었던 것이다.

브리티시 레이싱 그린

5 모터스포츠 세계에서 영국의 영향력을 대변하던 브리티시
레이싱 그린 컬러는 이제 영국 차의 상징이 되었다.

110년 전통 모터스포츠의 아이콘
‘브리티시 레이싱 그린’

‘브리티시 레이싱 그린’은 영국 모터스포츠를 대표하는 색상이다. 이는 110여 년에 달하는 영국 모터스포츠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자부심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브리티시 레이싱 그린이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게 독일의 내셔널 컬러인 실버가 등장하기 이전부터였으니, 모터스포츠 세계에서의 장악력만큼은 독일보다 영국이 더 강한 셈이다. 옛것에 대한 집착과 강한 승부 근성으로 대변되는 영국의 국민성이 영국을 자동차와 모터스포츠를 명문 반열에 오르게 한 것이다. 현재 영국은 F1, 레이싱 프로토타입, 투어링 카, 랠리 등 대부분의 모터스포츠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또한 영국은 레이스카와 양산차 엔지니어링, 소재 가공과 R&D, 테스트 등의 분야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의 인프라와 기술력을 자랑한다. 모터스포츠를 통해 축적한 데이터를 양산차에 녹여냈을 때의 이점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으며 이를 실현하기에 최적의 환경을 갖춘 나라가 바로 영국이다. 세계 모터스포츠에 배출한 인재만 봐도 그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다.

영국은 국제 자동차 연맹(FIA)의 역대 회장 9명 중 2명을, F1 역대 챔피언 30명 중 10명을, 월드 랠리 챔피언십(WRC)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드라이버 19명 중 2명 등을 배출했다. F1의 살아 있는 역사인 버니 에클레스톤(Bernie Ecclestone), F1 기술 발전을 단축시킨 천재 엔지니어 에이드리언 뉴이(Adrian Newey)와 론 데니스(Ron Dennis) 역시 영국인이다.

페트롤헤드를 위한 유니크한 이벤트,
굿우드 페스티벌

영국 자동차 문화를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단어가 있다. 바로 ‘페트롤헤드(Petrolhead)’다. 이는 ‘자동차에 미친 사람’의 영국식 표현이다. 이들은 다른 교통수단을 전혀 사용하지 않을 정도로 자동차 사용 의존도가 높다. 자신의 차에 푹 빠져 그것을 타거나 뽐내길 즐기는 사람, 나아가 모터스포츠를 열정적으로 관람하거나 직접 참여하는 사람을 뜻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동차 마니아와 비슷한 듯하지만 분명 차이가 있다. 우리가 자동차에 대해 보통 이상의 관심을 가진 사람이나 자동차 관련 취미 생활에 빠진 사람을 통틀어 자동차 마니아라고 부른다면, 영국의 페트롤헤드는 차를 타는 데에서 기쁨을 느끼고 모터스포츠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콕 집어 부르는 말이기 때문이다. 마치 우리가 스테이크 부위를 안심과 등심으로 나눌 때 프랑스인들은 이 안심 부위를 다시 다섯 가지로 나누는 것과 비슷하다. 이는 자동차 문화에 대한 깊은 전통과 넓은 스펙트럼이 반영된 것이다.

롤스로이스의 새 공장으로 유명한 영국 웨스트 서식스의 굿우드 하우스에선 1993년부터 매년 6~7월에 ‘굿우드 페스티벌(Goodwood Festival of Speed)’이 열린다. 굿우드페스티벌은 서식스 지역의 대부호이자 페트롤헤드인 마치(March) 경이 지인들과 함께 즐기기 위해 시작한 일종의 ‘페트롤헤드 취향 저격 이벤트’다. 사유지에 만든 개인 서킷의 일부를 개방해 클래식 레이스카 주행을 감상하는 이벤트로 출발해 지금은 모터스포츠 스타를 비롯한 각 분야의 셀럽들이 참여한다. 가든파티와 클래식카와 콘셉트카의 전시 그리고 갖가지 신차를 타볼 수 있는 시승 행사 등 다양한 자동차 이벤트를 한자리에서 경험할 수 있는 세계적 규모의 행사로 거듭났다.

굿우드 페스티벌의 백미는 아름다운 대저택을 배경으로 가파른 오르막을 내달리는 ‘힐 클라임’ 레이스다. 이 레이스에는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클래식카나 은퇴한 F1 레이스카 그리고 아직 출시 전인 콘셉트카까지 참가해 장관을 연출한다. 오랜 역사와 전통이 깃든 영국 자동차 문화의 위대한 유산과 전통을 소중히 간직하는 영국인의 성향이 아니었다면 실현할 수 없는 화려한 이벤트다. 굿우드 페스티벌은 매년 진화를 거듭해 초창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하지만 이런 규모와는 상관없이 페트롤헤드가 큰 부담 없이 참여해 자동차를 오감으로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전 세계 어떤 자동차 이벤트보다도 그 가치가 크다.

6 영국에서는 올드카를 타는 페트롤헤드들이 자신이 소유한 부품을 내다 파는 벼룩시장이 흔하게 열린다. 7 굿우드 페스티벌의 풍경. 마치 경의 대저택 앞에 각종 희귀 클래식카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8 굿우드 페스티벌의 백미인 힐 클라임 레이스. 박물관에 있을 법한 클래식카들의 경쟁도 펼쳐진다.

6 영국에서는 올드카를 타는 페트롤헤드들이 자신이 소유한 부품을 내다 파는 벼룩시장이 흔하게 열린다.
7 굿우드 페스티벌의 풍경. 마치 경의 대저택 앞에 각종 희귀 클래식카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8 굿우드 페스티벌의 백미인 힐 클라임 레이스. 박물관에 있을 법한 클래식카들의 경쟁도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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