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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최초 정밀 지도를 완성한
산의 아들 김정호

고산자(古山子)

‘고산자(古山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는 지금도 한반도 정밀 지도의 기초로 불릴 만큼 정교하다.
지리정보학의 한 획을 그은 사건으로 기록될 만큼 땅의 모양을 자세하게 표현해 이동의 불편함을 줄여
사람들을 이롭게 했다. 그래서 대동여지도를 ‘실학(實學)의 완성’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글 편집실 일러스트 임성구

김정호

김정호
金正浩, 1804~1866 (추정)
‘청구도’, ‘동여도’, ‘대동여지도’를 만든 조선 후기의
지리학자. 조선시대 가장 과학적인 실측 지도로 평가
되는 대동여지도를 완성, 19세기 조선의 국토 정보를
집대성하고 체계화 하였다.

지도의 등장과 역사

기원전 2세기 천문학자였던 프톨레마이오스는 이른바 천동설을 기초로 ‘위도와 경도’의 개념을 만들었다. 이후 수많은 탐험가들이 지구 곳곳을 누비며 지도는 보다 상세함을 갖추는데, 1100년 이슬람 지리학자 ‘알 이드리시’가 서방 지도에 한반도를 처음으로 포함시키며 중세 정밀 지도의 기초를 완성했다. 지도는 이동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척도였고, 보다 정밀한 지도를 가질수록 정치 및 경제 체제에서 우월성을 점유할 수 있었다.

지도는 동양에서도 오래전부터 제작해왔다. 기원전 4세기부터 고대 지도가 등장하기 시작해 서양과 비슷한 역사를 걷다가 1400년대에 동남아시아를 비롯해 한반도까지 표시된 정밀 지도가 등장했다.

한국 역시 1402년 조선 최초의 세계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를 완성 했는데, 아라비아는 물론 아프리카의 빅토리아 호수와 사하라 사막까지 표시됐을 정도로 글로벌 개념이 적용됐다. 이에 대해 당시 제작에 참여했던 정치인 권근(權近 1352~1409)은 “지도를 보고 멀고 가까움을 아는 것은 다스림에 보탬이 되고, 집을 나가지 않아도 천하를 알 수 있다”는 기록을 남기며 지도의 중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정밀 지도의 근간을 세운 김정호

사실 지도의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은 과학자가 아니라 탐험가였다. 하지만 과거에는 과학자와 탐험가의 영역이 불분명했던 만큼 탐험가는 과학자이자 군인, 물리학자와 다름없었다. 그 가운데 한 명이 영국 출신의 탐험가 제임스 쿡(James Cook, 1728~1779)이다.

그는 영국 해군의 지도 제작자이자 항해사로, “사람이 갈 수 있는 곳이라면 세상 끝까지 가보고 싶다”는 말을 일기에 남겼을 만큼 탐험 의지가 강했다. 1758년부터 5년간 캐나다 땅을 정복하는 항해에 참여한 후 본격적인 탐험에 나서 1768년과 1772년, 1776년 세 차례에 걸쳐 지금의 호주와 뉴질랜드를 탐험하며 지도를 만들었다. 얼마나 자세했는지 20세기 모든 지도가 제임스 쿡 지도의 영향을 받았을 정도다.

서양에 제임스 쿡이 있었다면 한국에는 김정호(金正浩, 1804~1866)가 정밀 지도의 근간을 세운 인물로 알려져 있다. 조선 말기 지리학자였던 김정호는 호가 고산자(古山子)이며, 본관은 청도(淸道)다. 황해도 토산(兎山) 출생으로 정확한 연도는 기록이 없지만 1804년 출생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런데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라는 전무후무한 한반도의 정밀 지도를 남긴 인물임에도 그가 지도를 어떻게 제작하고, 남겼는지는 여러 정황과 추측으로만 기록돼 있다. 역사적 정황에 따르면 그가 지도를 제작했다는 점에 비춰 몰락한 양반 또는 중인으로 추정되며, 김정호와 알고 지내던 인물의 증언 기록에는 ‘젊은 시절 토산에서 한양으로 옮긴 뒤 남대문 밖 만리재에 살았다'는 말도 전해져 온다.

대동여지도

대동여지도 조선 철종 12년(1861)에 김정호가 제작한 우리나라의 대축척 지도.
순조 34년(1834)에 김정호 자신이 제작한 ‘청구선표도’를 27년 후에 수 정 · 증보한 것으로,
27년간 전국을 답사하고 실측하여 만들었다.

대동여지도 목판

대동여지도 목판

대동여지도의 완성

청구도는 1834년 김정호가 만든 ‘청구선표도(靑丘線表圖)’를 말한다. 김정호의 첫 번째 지도이며, 전국을 가로 22판과 세로 29층으로 나눈 321면의 지도책이다. 기본적으로 산맥 및 강줄기에 따라 지역을 구분하고, 천문 관측의 경위선 비율이 적용됐다. 예를 들어 하늘의 1도는 땅의 200리가 되고, 시간의 4분에 해당한다는 식이다. 하지만 손으로 그림을 그려가며 만든 탓에 베끼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오류도 덩달아 늘었다. 그러자 김정호는 오류를 줄이기 위해 인쇄 방식의 지도를 만들기로 하되 그 전에 동여도(東輿圖)를 만들었다.

동여도는 조선시대 가장 정밀한 지도 가운데 하나로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목판에 새기기 전에 제작한선행 지도다. 모두 23첩이며, 가장 앞머리에는 목록이 표기돼 있고 나머지 22첩에는 각 지역의 형태가 그려져 있다. 이를 떼어내 연결하면 조선 반도 모양의 지도가 완성되는데, 여지도에 비해 지리 정보가 훨씬많이 담긴 게 특징이다. 작년에 개봉한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에는 다양한 지리 정보를 수록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장사하는 보부상들의 도움이 컸던 것으로 묘사돼 있다.

이렇게 청구도와 동여도를 완성한 김정호의 마지막 집대성이 바로 ‘대동여지도’다. 대동(大東)은 조선을의미하고, 여지(輿地)는 땅을 나타낸다. 따라서 대동여지는 조선 땅의 그림, 다시 말해 한반도의 지리와모양을 완벽하게 나타낸 지도인 셈이다. 제작 기간만 10년이 걸렸을 정도로 한반도를 정밀하게 축소했다.물론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완성은 그의 의지만으로 이뤄낸 것은 아니다. 김정호는 조선 후기 실학자이자 지리학자 최한기, 외교관 신헌 등과 어울렸다. 특히 최한기는 청구도 제문을 쓸 정도로 김정호와 친한 사이여서 그를 다방면으로 지원해준 인물로 꼽힌다. 덕분에 최한기의 스승이자 고증학자인 추사 김정희와도 연결이 됐고, 흥선대원군 시절 병조판서를 지낸 신헌의 도움으로 규장각 도서를 볼 수 있었다.

한국의 현대 지도 완성에 큰 영향 줘

김정호의 지도 제작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대동여지도는 크기 때문에 쉽게 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14첩, 18첩, 22첩 등의 휴대용 대동여지도를 별도로 만들었다. 사용자가 없는 지도는 의미가 없었고, 정확하지 않으면 또한 불필요한 지도임을 잊지 않았던 까닭이다.

실제 1898년 일본 육군이 경부선 부설을 위해 조선의 지리를 몰래 측량하기 위해 일본인 기술자 1,200명과 조선인 200~300명을 통해 전국을 측량했는데, 이때 만든 5만분의 1 지도가 대동여지도와 별다른 차이가 없음을 알고 놀랐다는 후문도 있다.

이후 대동여지도는 한국의 현대적 지도 완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일제강점기와 독립, 전쟁을 거치며 한반도의 세세함이 모두 담긴 지도는 종이에 그려졌고, 지도가 필요한 사람은 누구든 활용했다.

그러다 현대에 들어 지도는 매우 정밀하게 발전했고, 나아가 종이 대신 전자 지도가 등장했다. 위도와 경도 등으로 위치를 표시할 때 실제 어느 지역에 있는지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었다. 각종 선박은 물론 항공기 등에도 지도는 반드시 필요한 정보였던 셈이다.

자동차도 지도가 필요하다

세월이 흘러 이동할 때 자동차에도 항법 장치가 속속 채용됐다. 매번 종이 지도를 보는 대신 전자 지도를 스크린에 보여주면 길 찾기가 수월하다는 점을 인정받아 1966년 GM이 세계 최초로 자동차용 항법장치 개념을 선보였다.

물론 이때는 위성 기반이 아닌, 다시 말해 GPS 없는 지도만이 탑재돼 운전자에게 길을 알리는 차원이었다. 그래서 개념 기술의 명칭도 ‘DAIR(Driver Aid, Information & Routing)’, 즉 ‘길 찾는 운전자에게 정보를 지원한다’는 정도였다. 이후 10년이 지나 GM의 DAIR은 텔레메틱스(Telematics)로 알려진 GM의 온스타(OnStar) 콘셉트로 등장했다. 항법장치를 자동차에 단순 탑재하는 개념을 벗어나 통신을 연결, 운전자 이동을 지원하는 쪽으로 발전한 것이다.

이후 1980년 토요타는 대형 플래그십 크라운에 전자 지도 개념을 담은 내비콘(NAVICON)을 탑재했고, 이듬해는 셀리카로 확대했다. 하지만 수시로 변하는 도로 정보를 모두 반영할 수 없어 이용자의 불편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등장한 게 전자 지도를 CD에 담아낸 방법이다. CD-ROM을 통해 지도 정보를 읽고, 건물이나 도로가 바뀌면 업그레이드된 CD를 바꾸는 식이다. 1987년 토요타 크라운에 적용됐는데, 한마디로 업그레이드 가능한 방법이어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실제 CD 교체를 하는 사람이 많지 않고 여전히 지도에 표시되는 위치 정보의 신뢰성이 떨어졌다. 이를 보완해 마쯔다가 1990년 GPS가 탑재된 내비게이션으로 위치의 정확성을 높이자 이때부터 유럽과 미국 등에서도 자동차용 GPS 내비게이션이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동차용 내비게이션의 대중화는 2000년이 기점이다. 1996년 미국이 GPS의 민간사용을 허용하면서 2000년 들어 지도에 표시되는 위치의 정확성이 한층 높아졌기 때문이다. 현재 운전자를 위한 보조 안내 장치로서 내비게이션은 크게 지도와 GPS로 구분된다. GPS는 위성을 통해 받은 자동차의 위치를 지도 위에 표시하는 방식이다.

과거 김정호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지도의 정확성은 가장 중요한 기본 정보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과거 단순히 TV를 보는 것처럼 구현됐던 지도는 조금씩 3D로 넘어가는 추세다. 길을 찾을 때 오르막과 내리막의 경사 각도, 각종 굽이길, 회전 반경 등이 담겨지고 있다. 이른바 자율주행 시대가 되려면 사람이 길을 보는 것처럼 자동차도 정확하게 도로의 형태를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 지도 기업들이 디지털 전환에 발 빠르게 뛰어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정호의 후예로서, 세계 지도의 역사를 다시 한번 바꾸겠다며 말이다.

김정호

대동(大東)은 조선을 의미하고, 여지(輿地)는 땅을 나타낸다.
따라서 대동여지는 조선땅의 그림, 다시 말해 한반도의 지리와 모양을 완벽하게
나타낸 지도인 셈이다. 제작기간만 10년이 걸렸을 정도로 한반도를 정밀하게 축소했는데,
심지어 나무에 지도가 새겨지기 전에 손으로 그린 지도에는 독도(獨島)까지 표시돼 있을
정도로 조선의 모든 땅이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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