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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에 빠진 호모 루덴스,
키덜트

매년 20% 성장하는 뜨거운 시장에 주목하다

한국 키덜트 시장은 2014년 5,000억 원에서 매년 20%씩 성장해 2016년에는 1조 원대를 넘어서는 등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소수의 취미생활에 국한되었던 키덜트가 급성장한 배경에는 세대교체와 혼족, 욜로족이 있었다. 키덜트 아이템이 장난감 세대에게는 자연스러운 취미의 대상이고,
자기중심 소비를 존중하는 이들에게는 정서적 안정을 주는 유년기의 감성으로 작동한다.

글 채희숙(자유기고가)

키덜트
키덜트

프라모델, 피겨… 장난감 갖고 노는 어른들

네덜란드의 역사학자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 1872~1945)는 인간을 ‘호모 루덴스(Homo Ludens : 놀이하는 인간)’로 정의했다. 그리스의 제비뽑기를 통한 대표자 선출,
유럽의 내기 경쟁으로 이뤄지는 결혼, 인도의 수수께끼 시합 등 정치 · 경제 · 문화 전반에 걸친 인류의 문명이 놀이를 통해 발전했고, ‘진지한 놀이’는 인간만의 고유한 특성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놀이는 우리 삶을 즐거움으로 채우고, 일에 추진력을 제공하고 다른 삶을 창조해내는 원동력이다.

2017년 대한민국의 호모 루덴스들은 ‘어린이 놀이’에 심취해 있다. 작은 부품을 조립해 완성품을 만드는 프라모델,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속 등장인물을 제작해놓은 피겨, 혼자서
혹은 여럿이 즐기는 게임을 비롯해 블록 맞추기, 가챠샵에서 인형 뽑기, 색칠공부, 학습지 등 어린이의 전유물이던 활동들이 어른용 놀이로 확대되어 인기를 끌고 있다. 로봇이나
탈것이 주를 이루는 프라모델은 1979년 일본에서 TV로 방영된 애니메이션 <기동전사 건담>이 ‘건프라’라는 신조어를 만들며 40년 가까이 인기를 끌어 시대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실제 모습처럼 정교하게 재현되어 좋아하는 캐릭터나 인물을 수집할 수 있는 피겨는 다양하고 폭넓게
보급되어 쉽게 접할 수 있고 슈퍼히어로 팬덤 형성에도 기여했다. 이런 고품격 장난감들은 크기와 부품 수,
조립 난이도, 정교함 등으로 가격이 결정된다.

블록 맞추기의 대명사인 레고는 스타워즈와 마블, DC 코믹스 시리즈 등 영화나 만화에 등장하는 제품들이
인기다. 또 가격이 비싸고, 한정판은 경매에서 몇 백만 원에 거래되기도 해 재테크 대상이 되기도 한다.

서점에서 컬러링북을 사다가 원하는 색연필로 빈칸을 칠하는 색칠공부나 미로 찾기는 단순 작업에 집중해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으로 직장인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집으로 찾아오는 선생님에게 아동용 교재로
외국어 등을 배우는 학습지는 올해 성인 회원이 작년보다 40% 정도 늘어, 일부 학습지 기업은 성인 대상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다.

키덜트

키덜트라는 단어에는 성인이 되어서도 어른들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피터팬 신드롬’ 같은 부정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지 았다. 단순하게 ‘주 고객층이 어린이인 문화를 어른이 되어서도 즐기는 것’을 뜻할 뿐이다

피터팬 신드롬’ 같은 부정적 의미는 없어

이처럼 어른과 어린이의 경계를 허문 놀이들이 ‘키덜트 문화’를 이끌고 있다. ‘키덜트(Kidult)’는 어린이를 뜻하는 키드(Kid)와 어른을 의미하는 어덜트(Adult)의 합성어로, 어린이의 감성과 취향을 지닌 어른을 가리킨다. 미국 IT업계 종사자인 짐 워드 니콜스(Jim Ward-Nichols)가 1980년 뉴저지 스티븐슨 공대 재학 당시 처음 사용한 단어로, 1985년 8월 11일자 <뉴욕 타임즈> 기사에 실리면서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키덜트라는 단어에는 성인이 되어서도 어른들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피터팬 신드롬’ 같은 부정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지 않다. 단순하게 ‘주 고객층이 어린이인 문화를 어른이 되어서도 즐기는 것’을 뜻할 뿐이다. 유년 시절 즐기던 장난감이나 만화, 과자, 의복 등에 향수를 느껴 이를 다시 찾는 키덜트들은 진지하고 무거운 것 대신 천진난만하고 재미있는 것을 추구한다.

한국 시장 매년 20% 성장, 1조 원 규모

지난해 한 인터넷 쇼핑몰에서 성인 1,455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아이를 핑계로 자신의 장난감을 사본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가 44%나 나왔다. 2015년 한 시장조사전문기업이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에서는 응답자의 16%가
스스로를 키덜트족으로 평가했다.

미국에서 시작되어 인형과 만화가 일상화된 일본에서 발달한 키덜트 문화는 1990년대 중반 프라모델을 중심으로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다. 부정적인 일본 문화라는 인식이 앞서 소수의 취미생활에 국한되었던 키덜트가 근래 급성장한
배경에는 세대교체와 혼족, 욜로족이 있었다.

우리 경제가 성장하면서 장난감이 보편화된 시기가 1970년대 말~1980년대 초. 그 장난감 세대가 현재 30대 후반
~40대 초반이니 그들에게 장난감은 유년의 향수이면서 자연스러운 취미의 대상이다. 취미를 자신의 아이에게
문화유산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에 놀이를 아이와 공유하는 부모도 많다.

혼족과 욜로족은 개성과 취향, 자기중심 소비를 존중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대상에 과감히 투자한다. 그들에게 키덜트 아이템은 각박한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유년기의 감성으로 정서적 안정을 찾게 해주는 도구이면서 같은 취미를 가진 그룹과 연결해주는 징검다리로 작동한다.

경제력을 갖춘 키덜트들이 소비 주체로 각광받자 트렌드에 민감한 유통업계는 발 빠르게 대응했다. 백화점, 대형마트, 호텔, 항공사, 편의점, 완구점,
영화관, 인터넷 쇼핑몰 등에서 키덜트를 겨냥한 쇼핑존과 의류, 액세서리, 장난감, 문방구, 만화영화 등을 쏟아냈다. 동심 마케팅의 봇물이 터진
것이다. 디즈니, 마블, 포켓몬스터, 심슨, 무민, 슈렉, 미니언즈, 뽀로로, 자두 등 국내외 인기 캐릭터들이 옷과 가방, 화장품, 식품, 가구와
인테리어 소품, 은행 통장과 체크카드 속에서 뛰어놀고 있다.

2014년 이후 ‘서울 키덜트 페어’ ‘키덜트 & 하비 엑스포’ 등 대규모 행사가 매해 3~4차례 열리고, 박물관과 미술관에서는
아트 토이, 레고 디오라마 등의 작품을 전시한다. 인터넷 개인방송과 SNS, 전문 매거진 채널들이 관련 방송도 한다. 한국의
키덜트 시장은 2014년 5,000억 원에서 매년 20%씩 성장해 2016년에는 1조 원 대를 넘어설 만큼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키덜트

경제력을 갖춘 키덜트들이 소비 주체로 각광받자 트렌드에 민감한 유통업계는 발 빠르게 대응했다. 백화점, 대형마트, 호텔, 항공사, 편의점, 완구점,
영화관, 인터넷 쇼핑몰 등에서 키덜트를 겨냥한 쇼핑존과 의류, 액세서리, 장난감, 문방구, 만화영화 등을 쏟아냈다.

키덜트

캐릭터 범람으로 식상해질 우려 경계

모형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세대가 경제력을 갖춘 부모가 되는 중이고, 여가와 취미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지는 만큼 키덜트 산업은 앞으로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취미생활로 시작했다가 사업가로 변신한 키덜트족들은 문화적 공유와 소통을 기반으로 하는 일이기 때문에 만족도가 높다고 말한다.

반면 대부분의 아이템을 수입에 의존하는 형편이라 로열티에 대한 부담이 있는 만큼 유아용 제품에 치중된다. 국내 토종 캐릭터들을 키덜트용으로 확대시켜 경쟁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범람하는 캐릭터 때문에 캐릭터를 이용한 마케팅 자체가 식상하다’거나 ‘넘쳐나는 캐릭터 콜라보가 장기 브랜딩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참고해야 할 것이다.

요한 하위징아는 ‘놀기 위한 놀이는 퇴폐적인 것으로 변질되었다’며 신성하고 삶이 충만한 ‘놀이정신’의 회복을 기대했지만, 그 방법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키덜트 문화가 우리 삶을 즐거움으로 채우고, 다른 삶을 창조해내는 원동력이 된다면, 호모 루덴스로 살아가는 놀이정신의 귀환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현실을 단념해서 어린이를 꿈꾸는 것이 아니라 꿈을 놓지 않는 유년의 감성을 유지할 수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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