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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가까이 성큼 다가온
인문학

인문학은 어떻게 트렌드가 됐나

흔히 인문학이라고 하면 철학이나 역사서를 먼저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최근 인문학이 달라졌다. 예능 프로그램과 바람이 나기도 하고,
스낵컬처처럼 꾸려진 책으로 대중들과 만나기도 한다.
인문학 트렌드, 도대체 무엇이 이런 열풍을 만든 걸까.

글 정덕현(문화평론가)

인문학

인문학 소재의 예능 프로그램, 트렌드로 자리 잡다

인문학은 어렵다? 최근 나영석 사단이 만들어낸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알쓸신잡)'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은 이런 선입견을 단박에 지워버렸다. 출연자들의 지식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그 잡학에 가까운 수다를 가만히 듣다 보면 인문학적 담론들에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예능 프로그램의 최전방에 서 있다고 여겨지는 나영석 사단이 <알쓸신잡> 같은 인문학 소재의 예능을 시도한다는 건 요즘 문화적 분위기를 쉽게 읽어낼 수 있는 부분이다. 인문학이 이제는 대중적인 관심을 끄는 소재가 된 것이다.

실제로 ‘알쓸신잡' 외에도 ‘차이나는 클라스', ‘수업을 바꿔라', ‘어쩌다 어른', ‘우리들의 인생학교' 등 최근 방송가에서는 인문학 소재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했다. 방송 프로그램이라고 하면 그저 웃고 떠들고 게임하는 정도로 생각했던 대중들은 어느새 지적 갈증을 느끼기 시작했고, 방송을 보는 시간이 그저 오락으로 휘발되지 않고 정보나 생각할 거리가 있는 시간이 되길 원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인문학의 맨 얼굴이라는 건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던 두꺼운 책만이 아니라는걸 알게 됐다.

인문학 트렌드, 대중화일까 상업화일까

사실 방송가에 불고 있는 인문학 트렌드는 이미 서점가에서 예견된바 있다. 점점 책을 읽는 독자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한탄 섞인 출판가의 목소리가 나오는 와중에도, 인문학 서적은 스테디셀러에 가까웠다.
채사장이 쓴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지대넓얕)> 같은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어 인문학 열풍의 선두주자가 된 바 있으며, 하상욱 시인의 <서울시>는 재기발랄한 스타일의 감성 시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들 인문학 서적의 특징은 가볍다는 것으로, 항간에는 이를 두고 인문학의 ‘스낵컬처’화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이런 인문학 트렌드에 대한 찬반양론이 갈라진다. 찬성하는 쪽은 그나마 책을 잘 읽지 않는 요즘 세태에 누구나 쉽게 접근해 인문학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책의 등장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한때는 전문가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져 오던 인문학을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인문학의 대중화’로 이끄는 건 긍정적인 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하는 쪽은 이렇게 대중화의 가면을 쓰고 등장한 인문학은 그저 ‘싸구려 인문학’일 뿐이라며 이는 인문학의 본질을 해치는 일이라고 말한다.
시대가 달라졌으니 인문학도 대중들을 염두에 두고 가벼워질 필요가 있다고 하는 반면, 그런 가벼움이 인문학의 본질일 수 있는 깊이를 지워버린다고 비판하는 반론이 제기되는 것이다.

인문학

인문학이 깊이에서 넓이로 그 방향성이 바뀌게 된 것은 지금의 지식이나 정보가 양적으로 비대해졌기 때문이다.
너무 많이 쏟아져 나와 뭐가 뭔지 종잡을 수 없는 지식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대중들은 어떤 방향이나 큐레이션에 대한 강력한 욕망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인문학이 담는 넓이는 그래서 무한대로 아무것이나 담아내는 것이아니라,
나름의 체계를 제시하는 일이다.

인문학의 깊이와 넓이, 어느 쪽이 바람직한 길일까

깊이일까 아니면 넓이일까. 채사장의 <지대넓얕>이 제목에 담고 있는 것처럼 최근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는인문학이란 깊이가 아닌 넓이에 더 천착한다. 어느 한 분야를 깊게 파는 것이 아니라 철학이면 철학, 경제면 경제 그 전체의 학문적 흐름을 폭넓게 제시해 전체를 관망할 수 있게 해준다. 깊이가 전문성을 의미한다면 <지대넓얕>에서 그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다만 이 책은 넓은 지식을 추구함으로써 다양성을 담보하려 노력한다.

방송이 다루는 인문학 역시 대부분 ‘넓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방송이라는 매체가 가진 대중성 때문이다. 그래서 방송의 인문학은 스스로 ‘알아두면 쓸데없는’ 혹은 ‘잡학’ 같은 수식어를 달아놓는다. 우리가 사는 데 전혀 현실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 이야기라는 것을 전제 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신비하게’ 빠져드는 면이 있다고 말한다. 즉 현실적으로는 쓸데없어 보이지만 알아두면 그 무한한 지식의 바다에 빠져들게 된다는 것, 여기서 강조되는 것도 결국은 넓이다.

이처럼 인문학이 깊이에서 넓이로 그 방향성이 바뀌게 된 것은 지금의 지식이나 정보가 양적으로 비대해졌기 때문이다. 너무 많이 쏟아져 나와 뭐가 뭔지 종잡을 수 없는 지식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대중들은 어떤 방향이나 큐레이션에 대한 강력한 욕망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인문학이 담는 넓이는 그래서 무한대로 아무것이나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체계를 제시하는 일이다.

쓸데없는 것들이 쓸모 있게 된 까닭

그렇다면 과연 인문학의 깊이와 넓이 어느 쪽이 바람직한 것일까. 결과적으로 이야기하면 그건 양자 선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상보적인 것이다. 방송이나 가벼운 인문학 서적이 나름의 체계를 넓이로 제시하면, 그 거대한 밑그림 속에서 각자 더 관심 있는 분야를 전문적으로 탐구해 깊이를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다 보면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그동안 우리가 당장 현실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쓸데없다’ 여겨온 인문학이 거꾸로 우리가 당면한 위기들을 넘길 수 있는 대단히 ‘쓸모 있는’ 것이었다는 것을. 그런 점에서 보면 인문학 트렌드의 또 다른 얼굴은 그간 현실적으로 ‘쓸데 있는 것’에만 몰두하던 삶이 어떤 한계에 부딪친 결과로도 보인다. 생산성이 아닌 창의성이 필요한 시대이고, 양적인 축적이 아닌 질적인 성취가 중요해진 시대에, 우리가 앞으로만 나가며 놓치고 있던 것들을 인문학은 다시금 바라보게 해준다. 오랜 세월 동안 무수하게 쌓여온 위대한 지적 자원들을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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