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YUNDAI MOBIS

청정고도, 배추고도
산소도시 태백

한국인의 밥상에서 빠지지 않는 것.
젓가락이 가지 않아도 없으면 허전한 것.
바로 김치다.
7~8월에 수확하는 고랭지 배추가 매봉산(1,303m) 자락에서 한창 몸통을 키워가고 있다.
광활한 배추밭과 풍력발전기가 어우러져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내 여행지로도 손색이 없다.
한때 호황을 누렸지만 이제는 퇴색해버린 광부들의 질긴 삶과 남한강과 낙동강의 발원지인,
검룡소와 황지 연못에서 마르지 않는 샘의 근원을 확인해본다.

글과 사진 임운석(여행작가)

태백
1 능선을 따라 풍력발전기가 세워져 있어 이색적이다.2 끝없이 이어진 배추밭 3 고랭지 배추는 한아름이 될 정도로 크게 자란다. 4 배추는 살짝 숨을 죽여 배추전을 해먹으면 맛있다. 5 고랭지 배추로 담근 배추김치

1 능선을 따라 풍력발전기가 세워져 있어 이색적이다.
2 끝없이 이어진 배추밭
3 고랭지 배추는 한아름이 될 정도로 크게 자란다.
4 배추는 살짝 숨을 죽여 배추전을 해먹으면 맛있다.
5 고랭지 배추로 담근 배추김치

자연과 땀이 이루어 놓은 독특한 풍광

배추가 자라기 좋은 환경은 15~20℃로 서늘한 기후다. 그렇다면 사계절 언제나 식탁에 오르는 김치는 여름에 금(金)치가 되어야 마땅하다. 가마솥 같은 여름에도 김치를 먹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고랭지 배추 덕분이다. 강원도 태백은 백두대간의 중추이며 매봉산을 분수령으로 하여 남한강과 낙동강이 발원하고 있다. 그뿐인가. 매봉산 자락 피재에 내린 빗물이 동해안 오십천으로 유입되고 있으니 매봉산에서 시작한 물줄기가 서해, 남해, 동해까지 흘러가는 셈이다. 삼수령(三水嶺)이란 이름이 헛되지 않다.

태백시는 평균 해발고도가 965m이고 산 정상 평균 고도는 1,225m로 국내 최고(最高) 지대이다. 때문에 한여름에도 에어컨 없이 지낼 수 있는 청정한 도시로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서늘한 기후에서 잘 자라는 배추에는 더없이 좋은 환경이다. 여기서 재배하는 배추를 고랭지(高冷地) 배추라 한다. ‘고도가 높고(高) 기온이 낮은(冷) 지역에서 생산한 배추’라는 뜻이다. 매봉산 자락이 여름 배추를 재배하는 최적지가 되면서 강원도 고랭지 배추는 우리나라 배추 생산량의 약 15%를 차지하고 있다.

고랭지 배추밭이 조성된 것은 1960년대였다. 먹고 살기 힘든 시절 난방을 위해 산야의 나무들이 남아나질 않았다. 그 바람에 조성된 것이 배추밭이었고 때마침 품종 개발도 일조했다. 고랭지 배추는 4월에 파종해서 7~8월에 수확한다. 배추는 속이 노란 결구배추가 주종으로 크기가 한아름이나 된다. 해발 1,000m가 넘는 매봉산 비탈은 아슬아슬하다. 농사짓기 힘든 땅이다. 비단 이곳만 그런 게 아니다. 태백시의 농경지는 대부분 밭이다. 논은 두 눈을 부릅뜨고 찾아봐도 보기 어렵다.

밭의 절반 이상은 고랭지 배추밭이다. 이런 척박한 땅에 배추 농사가 가능한 이유는 비탈을 따라 실핏줄처럼 연결된 포장도로 덕분이다. 선선한 바람이 분다고 하지만 뜨거운 햇볕 아래 작업해야 하는 농부들에게 포장도로는 생명의 길과 같다.

그 길을 따라 지금은 여행자들이 몰려들고 있다. 드넓은 배추밭과 능선을 따라 세워진 9기의 풍력발전기가 연출하는 독특한 풍광을 보기 위해서다. TV 예능 프로그램 ‘1박2일’에서 이곳을 ‘배추고도’라며 방송을 내보낸 결과다. 중국과 티베트를 연결하는 ‘차마고도(茶馬古道)’를 패러디한 것이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계속 걷다 보면 맞닿는 곳이 있다. 백두대간 매봉산 표지석이다. 사방이 막힘없이 탁 트여 가슴이 시원하다. 배추 수확 장면을 보려면 볕이 뜨거운 정오보다 오후 3~4시에 찾아야 한다.

6 광부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상장동 벽화마을 7 볼거리가 풍부한 석탄박물관

6 광부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상장동 벽화마을
7 볼거리가 풍부한 석탄박물관

그때는 그랬지, 광부의 삶 엿보기

철암역에서 상장동을 거쳐 태백산국립공원 들머리에 있는 태백석탄박물관에 이르는 코스는 ‘태백시=탄광도시’임을 확인할 수 있다. 1940년에 문을 연 철암역은 영동선 철도역이다. 태백과 인근 지역에서 생산한 무연탄을 실어 나르면서 큰 호황을 누렸었다. 하지만 1989년 석탄산업 합리화 시책에 따라 철암역은 쇠락의 길에 접어들었다.

철암천변에 즐비한 일명 까치발 건축물들은 쇠락한 일면을 보여주듯 흉흉한 얼굴로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까치발 건물은 호시절 전국에서 몰려드는 사람들로 주거공간이 부족하자 생겨난 이 지역만의 독특한 건축물이다. 철암탄광역사촌에서는 태백시 탄광촌의 과거와 현재를 볼 수 있다. 페리카나, 호남슈퍼, 한양다방 등 옛 간판을 그대로 걸고 있는 가게에는 ‘광부라는 이름으로,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내가 살았다’라는 주제로 당시 생활상을 보여준다.

상장동 역시 2011년 뉴빌리지 운동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철암역과 별반 다르지 않다. “지금은 마을이 알록달록하니 예쁘죠. 그런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귀신이 나올 것 같았어요. 석탄가루가 온 마을에 내려앉아서 지붕이고 벽이고 눈뜨고 볼 수가 없었어요. 보다 못한 주민들이 나서서 내 집 앞 청소부터 시작했어요. 그러고 나니까 젊은이들이 와서 벽화도 그려주었죠. 저쪽 골목에 가면 만 원짜리를 물고 있는 강아지 그림이 있어요.”

할머니의 말씀처럼 마을에는 돈을 물고 있는 강아지 벽화가 있다. 이름은 만복이다. 잘나가던 시절 ‘지나가는 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닌다’고 했다. 만복이 벽화 외에도 탄광에서 일하는 광부, 아이들,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하는 벽화들이 가득하다.

석탄박물관은 상장동에서 5km가량 떨어진 곳에 자리한다. 태백산 자락에 자리한 터라 공기가 좋고 더위 또한 한발 물러난 곳이다. 우리나라의 석탄박물관 중에서 최고의 시설을 갖췄다고 자랑하는 곳이다.
특히 볼만한 곳은 지상 3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갱도로 내려가면 실제 갱도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재현 공간에서 갱이 무너지는 모습을 관람할 수 있다.

8 갈수기에도 쉬지 않고 흘러내리는 검룡소의 폭포수

8 갈수기에도 쉬지 않고 흘러내리는 검룡소의 폭포수

낙동강과 남한강의 발원지

매봉산을 크게 에두르면 남쪽에 황지연못이 있고 서쪽에 검룡소가 있다. 황지연못은 낙동강이 발원한 곳이다. 시내 중심에 자리해 찾기 쉽다. 총 연장 400km가 넘는 긴 강이 태백 시내에 자리한 작은 연못에서 시작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연못의 둘레가 100m인 상지와 중지, 하지로 구분되며 하루 약 5,000톤의 물이 용출된다고 한다.

반면 금대봉 기슭에 자리한 남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는 깊은 숲속에 자리한다. 하루도 쉬지 않고 2천 톤의 물이 솟아나는 이곳은 푸른 이끼가 가득해 청정 지역임을 말해준다. 흐르는 물이 검은 용의 용트림처럼 보인다 하여 검룡소라 한다. 그런데 정작 샘보다 더 좋은 게 검룡소 가는 숲길이다. 뙤약볕이 내려쬐는 주차장만 지나면 곧바로햇빛이 침범하지 못하는 깊은 숲에 닿는다. 하늘을 찌를 듯 쭉 뻗은 나무가 햇볕을 가려줘서 한여름에도 시원하다. 울창한 나무들이 내뿜는 피톤치드는 샘의 근원을 좇아가는 발걸음을 더욱 가볍게 한다. 검룡소까지 불과 30분이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지만 숲이 주는 여유를 마음껏 즐기고 싶다면 벤치에 앉아 한없이 쉬어가도 좋다.

9 구와우 마을에 핀 해바라기

9 구와우 마을에 핀 해바라기

노란 해바라기의 향연

검룡소에서 가까운 곳에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해바라기’를 떠올릴 수 있는 곳이 있다. 매봉산 진입로 삼수령 아래 황연동에 자리한 구와우 마을이다. ‘소 아홉 마리가 배불리 먹고 누워 있는 모습을 닮았다’ 해서 구와우(九臥牛) 마을이라 부른다.

조용하고 한적한 마을이 해바라기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해바라기는 7월 말부터 8월 중순까지 만개한다. 철모르는 코스모스가 어우러져 100만 송이 해바라기와 장관을 이룬다. 마을에서는 관람객들을 위해 해바라기 파종 시기를 조금씩 다르게 해서 개화 시기를 연장한다. 그 덕에 보름 이상 꽃을 감상할 수 있다. 활짝 핀 꽃은 해님처럼 보이고, 꽃망울을 터트리는 해바라기 꽃은 수줍은 아이의 얼굴을 닮았다.

여행 메모

신선한 고랭지 배추 맛을 보려면 배추전이 좋다. 황지자유시장에 가면 배추전을 비롯해 수수부꾸미, 메밀전, 녹두빈대떡 등 강원도 별미가 수두룩하다. 이 중에서 배추전은 부치자마자 손으로 쭉 찢어 먹어야 제맛이다. 태백의 한우는 고산지대에서 태백산 약초를 먹고 자라 육질이 부드럽고 고기가 연하다. 주로 등심을 연탄불이나 숯불에 석쇠를 깔고 구워 먹는다.
전골처럼 국물과 함께 먹는 닭갈비도 유명하다. 고구마, 부추, 떡, 냉이가 들어가며, 면 사리를 먼저 먹고 뒤에 밥을 볶아 먹어도 맛있다.

· 잠자기 좋은 곳 :
비교적 규모가 큰 숙박 시설로 청정 지역에 자리한 오투리조트(033-580-7000)가 있다. 라마다 강원태백 호텔앤리조트(1566-3655)는 태백시외버스터미널에서 차로 약 15분 거리여서 교통이 편리하고 태백산 국립공원에 있는 태백산민박촌(033-553-7440)은 태백시에서 운영하고 있어 가격이 저렴한 편이다.

· 문의 :
태백시 종합관광안내소 033-550-2828, 552-8363
(안내 시간 09:00~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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