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YUNDAI MOBIS

누구의 여행도 아닌,
나의 여행을 떠나라

KBS ‘걸어서 세계 속으로’ 김가람 PD

낯선 곳에서 맘 가는 대로 걷기, 생전 처음 본 사람들과 어울리기, 이국의 언어를 더듬더듬 헤아리기. 여행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이런 여행을 ‘일’이자 ‘일상’으로 삼은 KBS ‘걸어서 세계 속으로’의 김가람 PD를 만났다. 여행이라는 단어에 유난히 마음이 들썩거리는 계절,
그녀가 안내하는 여행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워보시라.

글 김주희(자유기고가) 사진 정우철 · 김가람 PD

김가람 PD

주말 아침, 누구나 여행자가 된다

11년 전, 일찍이 이런 프로그램은 없었다. 브라운관 속 PD는 홀로 배낭 하나만 멘 채 전 세계 곳곳을 누볐다. ‘걸어서 세계 속으로’라는 제목 그대로 뚜벅이 걸음으로 머나먼 도시 속을 거닐고, 현지 사람들과 일상을 나눴다. 프로그램이 방영되는 주말 아침이면 시청자도 세계 여행이 가능했다. 방바닥에 앉아서 지구 반대편 여행이라니! 조금 과장하자면, 손안에 보딩패스를 쥔 것처럼 마음이 붕 뜨기도 했다.

11년이 흐른 지금, 유튜브에만 접속해도 여행 관련 영상을 손쉽게 볼 수 있는 시대다. 그럼에도 ‘걸어서 세계 속으로’는 마니아 시청자를 거느리고 ‘걸세’라는 애칭으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장수 프로그램의 비결은 무엇일까. 김가람 PD는 ‘현실적인 여행’이라는 답변을 내놓는다.

“실제 여행지의 모습과 ‘싱크로율’이 높다고 할까요. 여행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지 않고 여행지를 미화하거나 과장하지도 않아요. 그곳의 사람 사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아냅니다. 화려함은 없지만 1인 여행자의 담백한 여행기가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는 것 같아요.”

‘걸어서 세계 속으로’는 그간 150여 개국 1,300여 개 도시를 넘나들었다. PD들은 혼자 떠나서 홀로 돌아온다. 여느 방송 프로그램과 다르게 스태프나 작가가 없다.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도 오롯이 혼자만의 몫이다. 방송 프로그램이라고 해서 다른 건 없다. 세계 지도를 펼쳐 놓고 가고 싶은 곳을 선정한다. 이때 위험한 곳은 철저히 배제한 뒤 여행지가 선정되면 여행 서적과 검색 엔진을 통해 정보를 취한다. 한정된 제작비 안에서 경비를 줄이기 위해 고군분투하기도 한다. 우리가 으레 그러하듯, 최저가 항공권을 검색해서 ‘땡처리’ 항공권을 사수한다. 김가람 PD는 103만 원의 항공권으로 남미를 다녀오기도 했다. 여행하는 도중도 마찬가지다. 최대한 아끼고 아껴서 ‘가난하게’ 여행한다. 우리 여행과 가장 닮은 여행인 셈이다. ‘걸어서 세계 속으로’가 숱한 여행 프로그램과 차별화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김가람 PD

“여행이 삶을 완전히 바꾸지는 못해요. 하지만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하고,
그 속에서 잠시 잊고 있던 나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일상을 새롭게 환기할 수 있지요.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타인을 이해하게 됩니다.”

김가람 PD

보통의 삶 속으로 들어가다

“30%는 잘 알려진 내용, 70%는 그간 다른 방송에서도 소개되지 않은 것들을 다루려고 해요.” 김가람 PD가 방송 내용을 구성할 때 고수하는 원칙이다. 유명한 관광 명소보다 현지인의 일상적인 삶에 주목하는 것. 사전 준비를 할 때 현지 정보가 실시간으로 오가는 페이스북을 통해 검색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간단한 현지어로 ‘7월’과 ‘축제’를 검색하는 식인데, 검색 결과에는 동네 작은 행사와 동호회 모임들이 좌르륵 나열된다. 김가람 PD는 이 속으로 망설임 없이 들어가 사람 사는 모습을 만끽한다.

“아르헨티나로 떠나기 전, 해변 마라톤 대회 소식을 보고 인터넷으로 참가 신청을 했어요. 대회 당일, 해변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제 번호표를 들고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대한민국 서울에서 누군가가 온다’며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요. 참가자 400명 중 현지인이 399명이었고 저 혼자 외국인이었죠. 작은 동네 공원에서 열린 탱고 동호회 모임에도 갔어요. 할아버지에게 탱고도 배우고, 집에 초대받아 대화를 나누며 마테차도 즐겼어요. 유명 관광지에서는 좀처럼 누릴 수 없는 기쁨이지요.”

김가람 PD는 취재 목적이 아닌 순수한 여행에도 자주 나선다. 주말이면 고속버스를 타고 훌쩍 떠나고, 명절 연휴에는 반짝 해외여행을 다녀오기도 한다. 틈만 나면 여행을 떠나는 일상은 대학교 2학년 때 다녀온 첫 유럽여행부터 시작되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여행 자금으로 20일 동안 유럽을 누빈 그녀는 신세계를 마주한 것 같았다는 소회를 밝혔다. “불현듯 낯선 곳에 툭 떨어져서 우주에 다녀온 느낌이었어요. 나를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내가 모르는 사람들 틈에서 누리는 모든 것들이 좋았어요. 비현실적인 느낌이었지요. 그때, 수많은 행성 중 지구에 할당받아서 태어났으니 이 지구를 한껏 누려보자고 다짐했습니다.”

김가람 PD

“불현듯 낯선 곳에 툭 떨어져서 우주에 다녀온 느낌이었어요. 나를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내가 모르는 사람들 틈에서 누리는 모든 것들이 좋았어요. 비현실적인 느낌이었지요.
그때, 수많은 행성 중 지구에 할당받아서 태어났으니 이 지구를 한껏 누려보자고 다짐했습니다.”

좋은 여행 있으면 소개시켜줘

여행을 일이자 일상으로 즐기게 된 그녀가 말하는 배낭여행 초보자를 위한 가이드는 다음과 같다. 첫째 대중교통이 잘 마련된 여행지를 선택할 것. 이동이 제한적이면 한정된 시간 안에 여행의 기회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둘째, 계획을 강박적으로 짜지 말 것. 너무 많은 정보를 습득하려 하지 말고 교통편과 숙박만 예약해, 큰 플랜을 짜고 현지에서 즉흥적으로 움직여보는 거다. 마지막은 간단한 현지어를 공부할 것.
인사말이나 숫자 정도만 익혀도 현지인과 교감하는데 도움이 되고 여행하는 맛이 한결 더해진단다.

여름휴가 장소를 물색 중인 독자들에게 그녀는 라트비아를 추천한다. 라트비아는 스위스보다 훨씬 저렴한 물가로 비슷한 풍경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서유럽과 다르게 여름에는 시원하고 청량한 기운이 가득하다. 봅슬레이 강국이기도 한 이곳의 국립공원에서는 초록빛 풍경을 배경으로 봅슬레이를 즐길 수도 있다. 인도 북서부 심라 지역 또한 색다른 인상을 안겨줄 것이라고 전한다. 인도 하면 떠오르는 덥고 복잡한 풍경이 아니다. 영국 식민지 시절, 총독부 관료들이 여름 궁전처럼 여길 만큼 휴양지로 제격인 곳이다. “여행이 삶을 완전히 바꾸지는 못해요. 하지만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하고, 그 속에서 잠시 잊고 있던 나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일상을 새롭게 환기할 수 있지요.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타인을 이해하게 됩니다. 다녀와서 지도를 펼쳐 놓고 보면 내가 움직인 만큼 시각의 폭도 한층 넓어진 걸 느껴요. 올여름, 거창한 사명 없이 떠나보길 바랍니다. 여행은 자신이 좋으면 그만이에요. 공부하듯, 숙제하듯, 일하듯 떠나지 않아도 된답니다. 여행은 그냥 여행이니까요.”

지루한 여름날에 생기를 더해줄 여행을 꿈꾸는가. 그렇다면 마음은 한없이 느슨하게, 운동화 끈은 바짝 조일 일이다. 내 마음대로, 걷는 대로 보고 느끼면 누구의 여행도 아닌 ‘진짜’ 나의 여행이 완성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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