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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뢰로부터 얻은 아이디어
에어백

Airbag

‘에어백(Airbag)’으로 불리는 공기 주머니의 발명은
살상용 어뢰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자동차
에어백은 목숨을 위협하는 어뢰와는 달리 사고에서 목숨을 구하는 주머니였던 점이 다르다.
그럼에도 에어백은
발명 당시 주목을 끌지 못했다.
자동차회사에서 부담해야 하는 비용 때문이었다.
미국의 존 헤트릭과
독일 엔지니어 발터 린데러 그리고 사업가 앨런 브리드와 변호사이자 정치가였던랄프 네이더가
아니었다면 여전히 에어백은 창고에 쌓여 있을지도 모른다.

글 편집실 일러스트 임성구

랄프 네이더와 앨런 브리드

변호사이자 소비자 보호 운동가로, 에어백 보급에
앞장섰던 랄프 네이더(왼쪽)와 에어백에
BIT(Ball-In-Tube) 센서를 적용한 앨런 브리드

A i r b a g

air bag

에어백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 해군 엔지니어로 근무하던 존 헤트릭이 지뢰의
압축 공기에서 영감을 얻어 발명되었고, 앨런 브리드에 의해 지금의 작동 원리로 발전됐다.
이후 미국의 녹색당 대선 후보였던 랄프 네이더에 의해 안전 보호법이 제정되어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모든 자동차에 탑승객의 생명을 보호하는 보조 장치 역할을 하고 있다.

어뢰 추진 방식에서 아이디어 나와

인류의 역사에서 어뢰가 처음 등장한 때는 1866년 12월 21일이다. 오스트리아제국 해군이 영국 출신 엔지니어 로버트 화이트헤드(Robert Whitehead)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며 실전 배치된 것이다. 어뢰를 움직이기 위한 동력이 필요했던 로버트는 공기를 압축해 스크루를 작동하는 방식을 고안했다. 이후 공기 압축식 어뢰는 전쟁의 주요 무기로 등장하며 각국의 경쟁적 개발을 유도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52년, 어뢰에 활용된 압축 공기를 다른 수단에 사용한 인물이 등장했다. 자동차 에어백을 최초로 개발한 존 헤트릭(John Hetrick)이다. 그는 어뢰추진체인 압축 공기를 이용해 ‘자동차 충돌 사고 시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공기 주머니가 있으면 어떨까?’를 고민했고, 그 결과로 나타난 장치가 지금의 자동차 에어백(Airbag)이다.

존 헤트릭이 에어백을 고안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는 미국 해군에서 어뢰 개발을 담당하면서 어뢰 속도를 높이는 일을 맡아 온 덕에 늘 압축 공기에 관심이 많았다. 압축이 높아질수록 스크루 회전이 빨라져 목표물을 향한 어뢰 속도가 오르고, 이는 곧 적군의 어뢰탐지를 피할 수 있는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헤트릭이 해군에서 매달렸던 기술 업무도 어뢰의 우월성 확보를 위한 압축력 높이기였던 셈이다.

존 헤트릭이 1952년 미국 내에서 에어백 특허를 획득했을 즈음 독일에서도 비슷한 특허가 추진됐다. 그 주인공은 독일 엔지니어인 발터 린데러(Walter Linderer)로, 그는 1951년 에어백 특허를 추진해 1953년 11월에 등록을 완료됐다. 린데러의 에어백도 압축 공기 시스템을 기반으로 했는데, 에어백 팽창 속도가 느려 안전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후 특허는 메르세데스 벤츠 등의 자동차 회사로 넘어갔다.

획기적인 발명품, 시큰둥한 자동차 회사

획기적인 발명품, 시큰둥한 자동차 회사

그렇게 세상에 등장한 자동차 에어백은 최초 개발자인 헤트릭을 흥분시켰다. 자동차 회사가 안전을 위해 에어백을 부착하면 사고를 줄일 수 있다고 확신했던 그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완성차 회사와 접촉했다. 그러나 GM을 비롯한 미국의 주요 자동차 제조사는 에어백을 안전 품목이 아닌 원가 상승만 가져오는 불필요한 장치로 인식해 번번이 그의 의견을 묵살 했다. 헤트릭의 제안을 자동차 회사가 거절한 이유가 원가 부담 외 특허료 지급을 하기 싫어서였다는 기록도 남아 있는데, 최초의 상업용 에어백이 적용된 시점이 특허 만료 기간이 지난 1971년이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안전에 대한 소비자의 욕구를 거스를 수는 없는 법. 헤트릭의 에어백을 시작으로 여러 나라에서 에어백 기술 개발에 가속이 붙었다. 상업화가 아니어도 기술적 진보는 계속 이뤄졌는데, 그만큼 헤트릭의 아이디어를 여러 나라가 개별적으로 활용하려는 욕구가 강했다는 방증이다. 특히 일본의 엔지니어 야스 자부로는 1964년 에어백 안전망 시스템을 개발해 14개 나라에서 특허를 취득하기도 했다. 헤트릭과 마찬가지로 제조사가 탑재에 소극적이었던 탓에 그 역시 에에백 보급은 하지 못했지만 에어백 개발에 큰 기여를 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상용화가 어렵던 1967년, 에어백의 사업화 가능성을 높게 내다본 사람은 사업가이자 발명가였던 앨런 브리드(Allen Breed)였다. 그는 에어백이 널리 보급되려면 팽창 속도와 전개 순간이 빨라져야 한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그래서 작은 튜브 속에 넣은 쇠구슬의 움직임을 충격으로 감지하는 방법을 생각해 냈는데, 이는 구슬이 자석에 붙어 있다가 충격으로 떨어지면 에어백을 팽창시키는 원리였다.

구슬이 튜브 안에 있다는 의미에서 ‘BIT(Ball-In-Tube)’ 센서로 불리는 등 당시로선 획기적인 개선이었지만 마찬가지로 자동차 회사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앨런의 에어백 시스템 또한 자동차 회사로선 불필요한 원가 부담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어백은 1953년 등장하고도 무려 20년 이상 자동차에 널리 활용되지 못했다. 안전 규제도 없고, 안전에 대한 소비자 인식도 높지 않았으니 안전을 위해 자동차 회사가 스스로 비용 부담을 자처할 필요가 없었던 탓이다.

멈추지 않는 에어백 개발

그럼에도 에어백에 관한 연구 개발 의지는 식지 않았다. 앨런 브리드는 압축 공기로 주머니를 부풀리는 것을 대신해 아지드나트륨을 기폭제로 활용해 팽창 속도를 순간적으로 높였다. 아지드나트륨은 충격이 감지될 때 즉시 온도가 오르며 캡슐을 터뜨려 산화철과 반응한다. 이 과정에서 나트륨과 질소로 분해되고, 생성된 질소는 주머니를 부풀려 충격을 완화시킨다. 앨런의 에어백은 미국 내 자동차 회사 가운데 처음으로 크라이슬러가 받아들였고, 비슷한 시기에 개발된 오토 셉터(Auto-Ceptor)라는 충격 완화 장치는 변속기 제조사로 알려진 이튼(Eaton)이 포드에 제공했다.

1970년대 초반, 포드와 GM은 에어백을 자동차에 점차 보급해 나갔다. 미국 정부가 관용차를 대량 구매할 때 에어백 탑재 유무를 조건에 넣으며 크라이슬러 제품을 선호하자 두 회사는 일반 승용차로 시장을 확대시켰다. 그 결과 미국 내에서 승용차 최초의 에어백 적용 제품은 크라이슬러가 아니라 GM 산하 브랜드인 올즈모빌의 토로나도(Toronado)가 됐다. 하지만 1977년 에어백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떨어지자 자동차 회사의 에어백 적용은 다시 시들해졌다.

UNSAFE AT ANY SPEED

자동차 충돌 시 위험을 폭로한 랄프 네이더의 저서 <속도는 결코 안전하지 않다>

랄프 네이더, ‘속도는 결코 안전하지 않다’

에어백의 떨어진 관심을 다시 촉발시킨 인물은 바로 미국의 변호사였던 ‘랄프 네이더(RalphNader, 1934~)’다. 변호사이자 미국의 정치가로 자동차 안전장치 의무화를 주장한 랄프는 안전에 특히 관심이 많았는데, 그 깊이는 1965년 내놓은 유명한 출판물 <속도는 결코 안전하지 않다(Unsafe at any speed)>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이 책에서 GM 콜베어(Corvair)의 충돌 안전 위험을 폭로했고, GM과 소송을 벌여 42만 달러를 합의금으로 받았다. 이 돈으로 GM을 감시하는 시민단체를 결성하고, 이들 주도로 미국 내에서 자동차 관련 안전 법규를 비롯해 리콜의 제도화를 이끌어냈다. 선택 품목이었던 안전띠 또한 의무화로 바꾼 인물이 바로 랄프 네이더였을 만큼 미국에선 한때 ‘소비자 보호’를 의미하는 단어로 ‘네이더리즘(Naderism)’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랄프에게도 에어백은 관심의 대상이었다. 1960년대 중반 안전띠 의무화를 제도화했지만 그래도 사고에 따른 사망이 끊이지 않자 그즈음 개발된 에어백을 눈여겨보았고, 에어백과 안전띠를 동시에 적용하면 상해율이 낮아진다고 판단, 에어백 보급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는 안전띠가 좌석에 몸을 묶어두는 역할이라면 머리가 앞으로 쏠려 스티어링 휠에 부딪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은 에어백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랄프가 줄기차게 에어백 의무화를 주장하자 1970년대 미국 내 완성차 업계는 안전띠의 부속 안전장치로 에어백을 활용했는데, 이때 등장한 개념이 안전띠 보조 장치를 의미하는 ‘SRS(Supplemental Restraint System)’다. 말 그대로 추가 보조 시스템으로서 에어백은 반드시 안전띠와 함께 사용될 때 효과가 높다는 주장이었다. 어뢰 개발자가 처음 선보인 에어백이 자동차 회사의 무관심을 뚫고 미국 사회에서 중요 안전 품목으로 자리 잡게 된 것도 결국은 랄프 네이더의 소비자 운동 역할이 컸다.

인류가 공감하는 에어백의 필요성

이후 1980년대 들어 에어백은 빠르게 자동차 보조 안전장치로 확대됐다. 특히 1981년 메르세데스 벤츠가 S클래스에 선택 품목으로 마련한 에어백은 안전띠와 연동돼 주목을 끌었다. 벤츠는 충돌 순간 안전띠가 강하게 탑승자의 몸을 잡은 뒤 에어백이 터지도록 제작했다. 이른바 안전띠의 보조 안전장치로서 에어백을 적용해 ‘SRS’의 용도를 보다 명확히 구분했고, 1987년 포르쉐는 944 터보의 운전석과 조수석 에어백을 기본에 포함시켰다. 1988년 크라이슬러는 측면 에어백을 도입했고, 지프(Jeep)는 1992년 SUV로는 처음으로 그랜드 체로키에 에어백을 넣었다. 또한 같은 해 국내에선 현대차 그랜저에 에어백이 처음 적용돼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2000년 중반, 에어백에 대한 회의론이 고개를 들기도 했다. 에어백의 빠른 팽창 속도가 오히려 탑승자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다는 보고가 나오자 미국 정부는 탑승자의 무게와 충돌 속도를 감안해 에어백 전개 속도가 구분되는 듀얼 스테이지 에어백을 의무화했다. 물론 듀얼 스테이지 에어백의 안전성에 관해선 여전히 과학적 논란이 진행 중이지만 헤트릭이 에어백을 고안한 이후 60년이 흐른 지금, 에어백의 필요성에 대해선 인류가 공감하고 있다.

에어백은 지금도 진화 중이다. 볼보는 충돌 시 에어백이 터지며 보닛을 높여 키 작은 보행자의 머리 충격을 줄이는 보행자 에어백을 만들었고, 안전띠에 에어백 기능을 넣은 벨트백(Belt Bag)도 등장했다. 나아가 에어백 재질을 금속으로 바꾼 ‘스틸백(Steel Bag)’도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에어백은 이제 단순한 충격 완화용 공기 주머니가 아니라 자동차 전체에 발생하는 모든 충격을 줄이는 중요한 역할로 확대되는 중이다.

압축 공기를 이용해 추진하는 어뢰를 개발했던 경험을 토대로 에어백을 개발한 존 헤트릭

압축 공기를 이용해 추진하는 어뢰를 개발했던
경험을 토대로 에어백을 개발한 존 헤트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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