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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푸지게 핀 봄날의 하동
그리고 아침 안개 같은 재첩국

500리 길을 힘차게 달려온 섬진강이 보이는가 싶으면 숨고, 숨었다 싶으면 슬그머니 얼굴을 내민다. 하동에 닿은 섬진강은 강폭이 넓어지고 물은 속 깊은 곳에서 천천히 흐른다.
은은한 녹차 향이 섬진강물에 녹아들면 재첩도 토실토실 살이 오른다. 벚꽃이 푸지게 핀 봄날 하동으로 떠나본다.

글 박성덕 소장(정신건강의 학과 전문의)

벚꽃이 푸지게 핀 봄날 하동
1 화개교 주변으로 벚꽃이만발했다. 2 물건 흥정이 오가는 화개장터 3 산란기인 봄에 잡아 끓인 재첩국이 가장 맛있다. 4 재첩을 살짝 데쳐 비벼 먹는 재첩회비빔밥

1 화개교 주변으로 벚꽃이만발했다.
2 물건 흥정이 오가는 화개장터
3 산란기인 봄에 잡아 끓인 재첩국이 가장 맛있다.
4 재첩을 살짝 데쳐 비벼 먹는 재첩회비빔밥

보기만 해도 흐뭇한 십리벚꽃길

천하장사도 맥없이 백기를 들고 마는 춘곤증의 계절이다. 한없이 나른해지는 4월, 꼭 가볼곳이 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하동 십리벚꽃길이다. 이 길에 서면 함박눈을 맞은 듯 뽀얀 벚꽃이 물결처럼 출렁인다. 양방향 갓길에 심긴 벚나무가 서로 맞닿아 터널을 이루는데 그야말로 장관이다.
이런 벚꽃터널이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 4~5km가량 이어진다. 십리벚꽃길의 시작은시끌벅적한 화개장터에서 출발한다. 대장간에서는 ‘탕탕탕’ 쇠 두드리는 소리가 끊이질 않고, 엿장수의 가위질도 한창 흥을 더해가고 있다. ‘난리버구통’이란 말이있다. ‘난리가 났는데 버구통(장구)을 친다’는 말로 정신없이 시끄럽다는 표현이다. 하동 십리 벚꽃길이 딱 그렇다. 눈을 교란시킬 만큼 화사한 꽃비가 휘날리고 여기저기 깔깔거리며 웃어대는 소리에 정신이 없다. 도로는 주차장이 된 지 오래다. 이런 것들이 봄꽃 여행의 불편한 진실이다. 이런데도 사람들은 봄꽃을 찾아 여행을 나선다. 이때가 아니면 절대 만끽할 수 없는 순간이기에, 불편함 정도는 충분히 감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사람의 걸음과 보조를 맞춘 자동차 또한 벚꽃놀이를 나온 듯 여유롭다.
십리벚꽃길의 백미는 화개삼거리 기점 1.3km부터 시작하는 일방통행 길이다. 쌍계사 방향으로는 화개중학교가, 화개장터 방향으로는 화개초등학교 부근을 최고로 꼽는다. 벚꽃길을 달리다 보면 벚나무 뒤로 짙푸른 녹차밭이 드문드문 보인다.은은한 빛깔의 벚꽃과 녹차밭 그리고 화개천의 조화는 십리벚꽃길에서만 볼 수 있는 매력이다.철이 지나 꽃잎이 우수수 떨어진다고 아쉬워할 것 없다. 벚꽃은 절정일 때보다 마지막이 더욱 아름답지 않은가. 그것은 마치 때늦은 여행자를 위한 축복의 세레나데 같다.

화개천을 따라 이어진 하동의 건강한 밥상

하동 사람들은 재첩을 가막조개, 갱조개라 부른다. 이것은 ‘까만 아기조개’란 뜻으로 재첩의 생김새에서 따온 이름이다. 또한 재첩은 번식력이 왕성해 하룻밤 사이에 3대손을 볼 정도로 첩을 많이 거느린다고 하여 ‘재첩’이라고 불린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재첩은 일급수에서만 사는 민물조개인데 특히 깨끗한 모래를 좋아한다. 하동 사람들은 섬진강 재첩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섬진강 재첩은 껍질이 황갈색에 광택이 나고 크기가 작아요. 반대로 중국산은 껍질이 거무 튀튀하고 광택이 없어요. 맛은 당연히 우리 것이 좋죠. 그런데 둘을 교배시키면 모조리 중국산으로 변해요. 그러니까 우리 재첩을 잘 지켜야 해요.”
7~8월을 제외하고 4월부터 10월까지 채취할 수 있는 재첩은 옛날에는 강가에서 쉽게 캘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수량이 줄어서 배를 띄워 강 깊은 곳까지 들어가 재첩을 채취한다. 이유는 강에 모래가 줄어들면서 바닷물이 역류하는일이 잦아졌기 때문. 염분 농도가 높아지니까 민물조개인 재첩이 살기 어려워진 것이다. 재첩을 채취하는 모습은 섬진강에 인접한 마을에서 볼 수 있다. 그중에서 하동송림 강변에는 재첩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어 이색적이다. 이곳에서는 매년 7월 말경에 재첩축제가 열린다. 재첩을 채취하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배를 타고 강바닥을 긁어 재첩을 채취하는 방법이 가장 일반적이다. 이렇게 하면 단시간에 많은 재첩을 채취할 수 있다. 나머지 하나는 사람이 직접 강에 들어가서 재첩을 채취하는 방법이다. 재첩은 회무침으로도 먹지만 국물이 개운해서 국으로 주로 먹는다. 식당에서 재첩국물을 숟가락으로 떠먹지 않고 그릇째 들이켜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그들은 십중팔구 어젯밤에 술을 많이 마신 사람이라고 한다.
소설가 김훈은 <자전거 여행>에서 “그 국물의 색깔은 봄날의 아침 안개와 같고, 그 맛은 동물성 먹이 피라미드 맨 밑바닥의 맛이다”라고 했다. 과음으로 부대끼는 속을 부여잡은 사람은 소설가의 표현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경상대학교 농업생명과학연구원에 따르면 ‘재첩에는 메티오닌과 시스틴, 타우린 등의 아미노산이 다량 함유돼 있어 간장의 해독 작용을 돕고 간 기능 향상과 피로 회복에도움이 된다’고 한다.

5 어선을 이용해 채취한 재첩을 손질하고 있다. 6 섬진강변에 설치해 놓은 재첩 조형물 7 섬진강에서 채취한 재첩 8 최참판댁 사랑채로 이어지는 협문

5 어선을 이용해 채취한 재첩을 손질하고 있다.
6 섬진강변에 설치해 놓은 재첩 조형물
7 섬진강에서 채취한 재첩
8 최참판댁 사랑채로 이어지는 협문

소설 <토지>의 배경이 된 최참판댁

십리벚꽃길을 뒤로 하고 박경리의 소설 <토지>의 무대가 되었던 평사리로 향한다. 화개장터삼거리에서 섬진강 물길을 따라 9km 정도를 달리면 된다. 언덕배기에 초가와 기와집이 올망졸망 모여 있는 곳은 드라마<토지>의 세트장이 있는 곳이다. 특산품 판매점과 체험공방거리를 지나자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 높이 솟아 있다. 소설 속 공간을 재현한 아흔아홉 칸 최참판댁이다.
발아래에는 고샅길이 이어지는데 드라마 세트장과 실제 마을 사람들이 사는 집이 어깨를 맞대고 옹기종기 붙어 있다. 하동8경에 이름을 올렸다는 말은 괜한 소리가 아니다. 최참판댁 사랑채에는 ‘명예 최참판’ 어르신이 흰 수염을 쓰다듬으며 한껏 여유를 즐긴다. 별당마루에 앉아 연못을 바라보거나 사랑채 누마루에 올라 들판을 내려다봐도 좋다. 솟을대문 너머 두 그루의 소나무가 서로 의지하듯 나란히 서 있다. 소설 속 주인공 서희와 길상을 닮았다. 여행객들이 툇마루에 걸터앉아 ‘토닥토닥’ 다듬이질 체험이 한창이다. 때론 둔탁하게 때론 청명하게 울려 퍼지는 다듬이 두드리는 소리가 한옥에 깊이를 더해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다.
최참판댁을 나와 고소산성 오르는 길목에 자리한 전망대로 향한다.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면 악양 들녘이 바둑판 모양으로 반듯하게 정리된 논이 한눈에 들어온다. 먹줄을 튕긴 듯 질서정연한 풍경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일망무제한 들녘 앞에 지리산 자락인 구제봉에 우뚝하니 서서 바람막이 역할을 해준다. 중국의 명승지의 이름을 그대로 따온 동정호도 들판과 어우러져 한결 멋스럽다. 재첩으로 쓰린 속을 풀 듯 벚꽃과 어우러진 하동의 아름다운 풍경이 뒤엉킨 마음과 생각을 풀어주는 것 같다.

여행 메모

· 하동에서 여기는 꼭!
하동은 한국 차의 시배지로 자타가 공인하는 차의 고향이다. 쌍계사를 못 미쳐 위치한 ‘차문화센터’는 우리나라 차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보고 엄선된 차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 재첩 맛있는 식당
하동원조할매재첩식당(055-884-1034)은 다른 식당에 비해 부추를 듬뿍 넣어준다. 특재 양념에 비벼 먹는 재첩회덮밥도 인기메뉴다. 동백식당(055-883-2439)과 혜성식당(055-833-2140)은 재첩국은 물론 하동 3대 별미라 꼽히는 참게탕과 은어회를 함께 맛볼 수 있다. 특히 혜성식당은 30년 내공을 자랑한다. 하동읍 신기리에는 섬진강 재첩의 명성에 걸맞게 재첩특화마을이 조성되어 있다. 재첩을 직접 채취해 요리하는 재첩 전문점들이 모여 있다.

· 잠자기 좋은 곳
쌍계사나 화개장터 주변에는 숙박업소가 밀집해 있다. 최참판댁 위에 자리한 한옥체험관(055-882-2675)은 4~5인실이 주말에 5~6만 원 선으로 저렴한 편이다.

· 문의
하동군 문화관광과 055-880-23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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