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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순간의 기억을 새기면
스토리가 된다

작곡가 이루마

건반 위 음유시인 이루마는 유학 시절이나 대책 없이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힘든 고비마다 자신을 지켜준 멘토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었다고 말한다.
‘이 정도 밖에’ 못하는 일에 연연하지 않고 ‘남과 다른’ 잘하는 일에 몰두하면 성취의 가능성 이 커진다는 게 그가 깨달은 지혜다.

글 채희숙(자유기고가) 사진 제공 마인드테일러뮤직

클래식으로 가는 편안한 길, 세미클래식

클래식으로 가는 편안한 길, 세미클래식

취업 포털 사이트 사람인이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85.5%가 슬럼프를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낮은 연봉, 익숙한 업무에 대한 권태감, 좋지 않은 인사고과 결과, 직장 동료와의 원만하지 못한 관계 등 그 이유도 다양했다. 이 같은 슬럼프가 왔을 때,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퇴사나 이직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이 같은 문제는 다른 곳으로 직장을 옮긴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다른회사에서도 같은 이유로 슬럼프를 겪게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상황을 회피하려고 퇴사나 이직을 선택하기보다는 슬럼프의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하려 노력해야 한다. 최근에는 ‘슬럼프’와 비슷한 개념의 ‘번아웃 증후군’이라는 말도 생겨났는데, 직장에서 모든 에너지를 소모하고 퇴근후에는 그 어떤 일도 하고 싶지 않은 상태에 빠지는 것을 뜻한다. 체력고갈, 의욕 상실, 업무 부적응 등의 이유로 실수가 반복되고, 이로 인해 자신감과 자존감이 떨어져 실수가 더잦아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 카네기홀, LA 돌비극장,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를 비롯해 폴란드, 러시아, 중국, 일본,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홍콩 등지에서 열린 투어는 한국 뮤지션의 역대 클래식 및 연주 공연 중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하며 티켓 파워를 입증했다. 대중성을 생각한 편안한 음악을 만들다 보니 클래식 진영으로부터 “쉽게 간다”는지적도 받았지만 피아노 입문자들의 교본이 된 그의 세미클래식 음악은 오히려 클래식의 새 지평을 열고 있다. 악보가 어렵지 않고 반복이 많아 연주하기 쉬운 덕분에 포기했던 피아노에 다시 앉는 사람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클래식을 하지 않으면서 클래식으로 가는 편안한 길을 닦은 것이다.

10대 유학 시절의 외로움, 나를 키운 힘

10대 유학 시절의 외로움, 나를 키운 힘

5세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이루마는 11세에 영국으로 유학, 유럽의 음악 영재 산실인 ‘퍼셀 스쿨’을 졸업했다. 이후 런던대학교 킹스칼리지에 작곡 전공으로 입학하여 현대음악의 거장 해리슨 버트위슬을 사사했다. 퍼셀스쿨 재학 시절부터 ‘영뮤지션 페스티벌’에 참여하고, 세계적인 클래식 레이블 DECCA에서 음반을 발매하고, 유럽 순회 클래식 연주회를 열었다. “퍼셀 스쿨에서 만난 친구들은 정말 천재였어요. 저는 천재도 영재도 아닌, 가장 피아노를 못 치는 학생이었지요. 가능성을 보고 저를 뽑았다고 생각하지만 한계와 벽을 더 많이 느꼈지요. 그래서 어린 시절이 굉장히 외로웠어요. 혼자 밥 먹고 영화 보고 피아노 치는 게 생활의 전부였답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 시절의 외로움이 나를 키웠더라고요. 그렇게 외롭지 않았다면 피아노를 많이 치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습작을 많이 하는 그가 언제나처럼 방에 혼자 앉아 자신이 만든 곡을 피아노로 치던 어느날, 지나던 친구가 피아노 소리를 듣고 들어와 “누구 곡이냐”며 칭찬을 했다. 피아노를 칠 때 보다 곡을 만들 때가 더 행복했던 그는 그때 작곡을 선택했다. 스스로를 위축되게 만들던 피아노와 달리 작곡은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2001년 자신의 곡을 직접 연주한 1집 ‘Love Scene’로 데뷔했고, 같은해 12월 2집 <First Love>를 발표하며 이름을 알렸다. 이어 ‘겨울연가’의 OST 곡들을 작곡하면서 ‘감성 아이콘’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기획사가 영세한 신생 업체여서 작곡과 연주를 함께 해야 한다는 조건을 붙였기에 자신 없던 ‘피아니스트’로 먼저 이름을 알렸다는게 아니러니지만, 이후 다양한 음악적 행보로 스스로의 영역을 확장하며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여전히 작곡이 가장 즐거워요. 아티스트들과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아이디어를 얻을 때 강한 자극을 받지요. 연주는 여전히 떨리고요. 하지만 제 음악을 팬들에게 가까이에서 전달 하려면 떨려도 무대에 서야지요.”

언제나처럼 방에 혼자 앉아 자신이 만든 곡을 피아노로 치던 어느 날, 지나던 친구가 피아노 소리를 듣고 들어와 “누구 곡이냐”며 칭찬을 했다. 피아노 칠 때보다 곡을 만들 때가 더 행복했던 그는 그때 작곡을 선택했다. 스스로를 위축되게 만들던 피아노와 달리 작곡은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가장 중요한 자세는 ‘나를 잃지 않는’ 것

가장 중요한 자세는 ‘나를 잃지 않는’ 것

영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해군에 자원, 군악대 복무를 마친 그는 백지영, 에일리, 샤이니, MC스나이퍼, 팀(Tim) 등 여러 가수들과 발라드부터 힙합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곡을 만들고 연주하고 노래로 피처링도 했다. TV와 라디오의 음악 프로그램 진행자로도 활약해 MBC FM4U의 ‘골든 디스크’는 4년째 DJ로 대중들과 소통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에일리 씨의 ‘Higher’가 인기 있었지만, 해외에서는 팀이 부른 ‘River owsin you’가 반응이 좋았어요. 중국 가수가 중국어로 번안해서 부르고, 독일에서 클럽 버전으로 나오고, 상해에서는 지하철 문이 여닫힐 때 연주곡으로 나왔지요. 신기하게 해외에서는 다들 이 곡을 알더라고요. 본격적인 해외 활동의 계기라고 할 수도 있어요.” 올해도 국내외 공연과 앨범 작업 등으로 스케줄이 꽉 차 있지만 그는 “지금까지 해온 것보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더 많다. 빨리 나이 들어 중후한 음악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어쩌면 지금은 외로운 유학 시절을 버티게 해준 힘인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미래를 위해 단련하는 기간일 것이다. “인생의 좌우명이 ‘한계를 알고 최선을 다하자’입니다. 못하는 일에 연연하기보다 잘할 수 있는 일에 몰두하면 성취의 가능성이 커지니까요. 가장 중요한 자세는 ‘나를 잃지 않는’ 것입니다. 작년 전국 투어 제목을 ‘Picture Me’로 정한 것도 나를 그려보는, 나를 찾아가는 음악 여행을 통해 우울하고 힘든 시절을 이겨내자는 격려였습니다. 나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보내는.” 그가 알려주는 효과적인 음악 여행 방법은 음악에 듣는 순간의 기억을 새기는 것이다. 머리로 해석하려고 하지 말고 눈에 보이는 장면과 가슴에 느껴지는 감정을 그대로 새기면 음악이 스토리가 된다는 설명이다. 물론 그 스토리의 주인공은 나 자신이다. 목소리도 미소도 자신의 음악처럼 따뜻하고 섬세한 이루마와 함께라면 꽃샘추위도 무사히 넘기고 평화로운 새봄을 맞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River ows in you. 기다림 끝에는 내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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