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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자동차 이야기

드넓은 대륙에서 성장한 다양한 문화

세계의 자동차 시장과 문화를 얘기할 때 우리는 자연스레 미국을 먼저 떠올린다. 사실 미국은 독특한 환경을 바탕으로
유럽과 아시아와는 다른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냈지만 시장의 영향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로 파급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호황을 누렸던 그들의 자동차 문화는 1970~80년대 석유파동과 환경문제, 그리고 최근의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도 힘을 잃지 않고 성숙된 시장 환경과 문화를 이어가고 있다.

글 박지훈 편집장(월간 자동차생활)

미국의 자동차 이야기

대륙의 풍요로움, V8 엔진

미국차라고 하면 아마도 가장 쉽게 떠오르는 이미지 중 하나가 대배기량 V8 엔진일 것이다. 미국은 V8 엔진을 처음 개발하지는 않았으나 세계 최초로 양산을 시작한 국가이다. 20세기 초, 유럽 고급차들이 주로 6기통을 사용했던 데 반해 미국은 V8의 사용에 적극적이었다. 캐딜락이 1914년 먼저 V8을 히트시켰고, 1916년에는 지금은 사라진 올즈모빌이, 1917년에는 쉐보레가 V8 엔진을 내놓았다.
미국에서 V8 엔진이 보편화된 것은 1932년 등장한 포드 플랫헤드 V8부터였다. 이전의 V8 엔진은 고급차에만 적용 되었으나 이 엔진이 탑재된 포드 모델 18은 최초의 저가형 8기통 승용차로 미국 자동차 발전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포드 모델 18은 이후 포드 V8로 불리며 인기를 끌었고 현재도 많은 핫로드(Hot Rod)들이 이 무렵의 포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핫로드와 V8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자동차 공장이 전차와 항공기를 비롯한 군용물자 생산에 동원되면서 신차 공급에 공백이 생겼고, 당시 미국의 젊은이들은 공급이 중단된 신차 대신 구형차의 섀시를 개조하고 값싸게 구할 수 있는 V8 엔진을 얹어 속도에 대한 갈증을 달래곤 했다. 이런 차들이 하나의 문화를 이루면서 핫로드가 생겨나게 되었고, 이들이 모여 가속 성능을 겨루면서 드래그레이스가 탄생하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V8 엔진에 대한 수요가 점차 증가하자 GM과 크라이슬러, 포드는 잇따라 신형 V8 엔진을 얹은 중·저가형 차를 출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70년대 이후부터는 유류파동과 대기정화법으로 인해 6기통 ·4기통 차들이 늘어났으며, 고출력보다 친환경 성능과 효율이 중요해지면서 오늘날 V8은 고급차 위주로 쓰고 있다. 그러나 부드러운 회전 질감과 넉넉한 토크로 여유로운 크루징을 제공하는 8기통 엔진에 대한 미국인들의 사랑은 아직도 각별하다. 전기자동차 시대가 도래하더라도 많은 미국인들의 가슴속에 V8 엔진은 오랫동안 머물러 있을 것이다.

1 2016년 램 헤비 듀티 V8 6.4리터 헤미 2 V8 엔진 스포츠카 (신구 쉐보레 콜벳)

1 2016년 램 헤비 듀티 V8 6.4리터 헤미
2 V8 엔진 스포츠카 (신구 쉐보레 콜벳)

미국은 디젤차의 불모지

미국은 예나 지금이나 디젤차 불모지에 가깝고, 미국 승용차 시장에서 디젤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1%도 채 되지 않는다. 심지어 대형 화물차도 가솔린 엔진을 쓴 차가 많을 정도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미국은 휘발유 값이 싸다. 경유의 값이 일반 휘발유보다 높고, 때로는 고급 휘발유보다 비싼 경우도 있다. 디젤의 연비가 좋다고 해도 유류 자체의 단가가 높은데다가 차량 가격도 동급 휘발유차보다 비싸기 때문에 유지비 절감 효과가 그리 크지 않다. 게다가 디젤을 취급하지 않는 주유소도 많아 불편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디젤차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사람들이 아직 많다. 70년대 석유파동 이후 미국 시장에도 유럽차를 중심으로 디젤 승용차의 대중화에 대한 시도가 있었다. 그런데 당시의 디젤은 시커먼 배기가스를 뿜어대며 덜덜거리는 존재였기 때문에 유류 가격이 정상을 회복하자 곧바로신차 판매량이 곤두박질쳤다.

디젤 배출가스 기준 유럽보다 높아

다시 유가가 상승하고 환경에 대한 인식이 높아질 무렵 등장한 하이브리드카는 친환경차의 대표주자로 등극했다. 하이브리드카가 미국에서 그린카 타이틀을 얻는 동안 디젤은 여전히 검은 매연을 내뿜으면서 덜덜거리는 차라는 이미지에서 탈피하지 못했고, 엄격한 미국의 배출가스 규제를 넘어서기 위해 디젤 엔진에는 더 높은 비용이 추가됐다. 2005년에 강화된 미국의 디젤 배출가스 기준은 유럽보다 높아 훨씬 높은 수준이다. 디젤이 미국 일반인들의 삶에 어느 정도 파고든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풀사이즈 픽업트럭에서조차 6L급 가솔린 V8 엔진을 사용하는 것이 보통이던 미국 자동차 업체들이 경트럭에 디젤 엔진을 옵션으로 내놓았고, 유럽 승용차들이 디젤의 장점을 홍보하면서 조금씩 시장을 파고든 것이다. 이런 와중에 지난 2015년 말 폭스바겐 디젤게이트가 터졌다. 단순히 제조상의 실수나 원가 절감의 나비효과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속임수를 쓴 것이어서 폭스바겐은 브랜드 이미지에 큰 타격을 받았다. 이러한 속임수의 배경에는 유럽보다 훨씬 엄격한 미국의 배출가스 기준이 있지만, 어쨌든 폭스바겐 사태로 인해 미국에서의 디젤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3 V8 6.7L 디젤 엔진의 2015년형 포드 F-350 슈퍼 듀티 4 8 6.7L 디젤 엔진의 2015년형 포드 F-350 슈퍼 듀티 플래티넘

3 V8 6.7L 디젤 엔진의 2015년형 포드 F-350 슈퍼 듀티
4 8 6.7L 디젤 엔진의 2015년형 포드 F-350 슈퍼 듀티 플래티넘

화끈한 출력의 머슬카

머슬카(Muscle car)는 핫로드와 함께 미국 스피드 마니아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던 존재다. 클래식한 핫로드와 1960∼70년대 번성했던 머슬카는 시대만큼이나 외모부터 차이가 나지만 ‘고출력 V8 엔진으로 뒷바퀴를 굴리는 드래그에 특화된 고성능차’라는 공통점은 여전하다.
머슬카의 황금기는 1960∼70년대였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찾아온 평화기는 베이비붐을 일으켜 1950년대 중반 미국에서는 연간 400만 명의 아기가 태어났다. 1960년대 자동차 메이커들은 이들을 새로운 고객으로 맞이하게 됐다. 풍요롭게 성장한 미국 젊은이들은 고성능차를 한적한 도로로 끌고 나가 드래그레이스를 즐겼다.
머슬카는 양산차 플랫폼에 넉넉한 V8 대배기량 엔진을 얹고 흰 연기를 날리며 직선도로를 질주하는 스트리트 머신이다. 비교적 저렴하면서도 고성능을 내는 미국산 V8 엔진,뒷바퀴굴림에 차체 사이즈는 중형 이상, 2도어 보디라면 머슬카로서 금상첨화다. 머슬카는 그다지 정교하지도 않고 코너링 성능도 떨어지지만, 이런 단점을 극복하고도 남을만한 매력을 갖추고 있다. 물론 그 매력이 극대화되기 위해서는 직선도로가 즐비한 지극히 미국적인 도로 환경이 전제조건이다.
머슬카들의 무한질주는 석유파동, 배출가스 규제, 친환경 바람으로 막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80년대 몇몇 고성능차는 있었지만 고전적인 머슬카의 특징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90년대 초 대형 세단 차체에 강력한 엔진을 얹은 몇몇 차가 나왔지만, 이미 높아진 기름값과 배출가스 규제 때문에 예전 같은 반응은 기대할 수 없었다. 21세기에 와서는 고전적인 특징을 지키면서도 신기술을 투입해 시대 변화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헤미(Hemi)란 이름을 부활시킨 크라이슬러나 캐딜락의 V라인업, 포드의 셸비 GT500KR, 슈퍼 스네이크 등이 머슬카의 명맥을 이었다.
너도나도 연비 좋은 차를 찾는 현실에서 자욱한 연기를 뿜으며 질주하는 머슬카는 비효율을 넘어 폭주로까지 비쳐질지 모른다. 하지만 어차피 사라질 자원이라면 한 번쯤 화끈하게 불태워보고 싶은 충동도 없지는 않다. 다만 이제는 이런 머슬카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보인다.

5 닷지 챌린저 드래그팩

5 닷지 챌린저 드래그팩

SUV, 미니밴, 픽업트럭 그리고 풀사이즈

전 세계 모든 메이커들이 내놓은 대부분의 SUV가 미국에서 팔린다고 할 정도로 미국의 SUV 시장 규모는 엄청나다. 콤팩트와 중형, 풀사이즈 등 차체의 크기에 따라 세분화되는 미국 SUV 시장에서 중형 이상의 크기에서는 미국차의 활약이 돋보인다. 일부 모델의 경우 높은 네임밸류와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스타일, 든든한 힘을 내세워 미국 SUV 시장을 이끌고 있다. 그러나 콤팩트와 중형 SUV 시장에서는 유럽과 일본, 그리고 한국 SUV들이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프리미엄 브랜드의 SUV 수요도 많은데, 때문에 메르세데스 벤츠와 BMW는 자사의 주력 SUV를 미국에서 현지 생산하고 있다. 국산 SUV가 처음 미국에 수출된 것은 2000년 현대 싼타페로, 지금은 현대·기아차 대부분의 SUV가 미국에 수출되고 있다.
미니밴의 인기가 가장 높은 곳 역시 미국으로, 북미는 유럽과 함께 미니밴이 태어난 고향이기도 하다. 1984년 세계 최초의 미니밴이 나왔고 1980~90년대 미국산 미니밴이, 1990~2000년대에 와서는 일본 미니밴이 크게 약진했다. 다만 지금은 미니밴의 주 고객이었던 주부들이 투박하고 획일화된 미니밴의 스타일에 싫증을 내며 상당수가 스타일리시한 SUV로 넘어가고 있다. 픽업트럭 역시 미국에서는 가장 많이 팔리는 세그먼트다. 넓은 화물용 짐칸을 갖춘소형 트럭이면서도 승용차의 역할까지 너끈히 해낸다. 미국 픽업트럭으로는 GMC 시에라와 포드 F시리즈, 닷지 램 등이 대표적이고, 이들 가운데 최강은 포드 F시리즈다. 최근엔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까지 픽업트럭 생산 계획을 발표 하기도 했다. 대중차 시장에서는 일본차와 한국차의 활약이 돋보이지만 픽업트럭 시장에서만큼은 아직 미국차의 영향력이 막강하다.

미국 색채가 강한 차, 풀사이즈 세단

풀사이즈 세단은 픽업트럭 못지않게 미국적인 색채가 강한 차다. 우리나라에서는 차체 크기가 큰 차는 곧 고급차를 의미하지만 미국에서는 풀사이즈 세단이 반드시 고급차를 의미하진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중형급 정도의 패밀리카가 미국에서는 대형차 뺨칠 만큼 덩치가 큰 경우도 많다. 길이 5m를 쉽게 넘기는 큰 차체와 V8 엔진의 넘치는 힘, 출렁이는 서스펜션과 거실 소파처럼 넉넉한 시트가 풀사이즈 세단의 특징. 최근에는 엔진 다운사이징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지금은 차체 크기와 엔진이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현재 미국에 수출하는 국산차 중에서는 제네시스 G80과 G90(EQ900), 기아 K900(K9) 정도가 풀사이즈 크기이지만, 이 차들은 대중형과는 조금 다른 럭셔리카로 분류되고 있다. 풀사이즈 세단과 별도로 길이 5m가 훌쩍 넘는 풀사이즈 SUV와 풀사이즈 픽업트럭이 많은 것도 미국차의 특징이다.

6 미니밴 시장을 개척한 1984년형 닷지 캐러밴 7 풀사이즈 세단 경찰차 (포드 크라운 빅토리아) 8 픽업트럭 (2017년형 램 1500) 9 2017년형 포드 익스플로러

6 미니밴 시장을 개척한 1984년형 닷지 캐러밴
7 풀사이즈 세단 경찰차 (포드 크라운 빅토리아)
8 픽업트럭 (2017년형 램 1500)
9 2017년형 포드 익스플로러

비슷한 듯 다른, 미국의 자동차 문화

하루에도 몇 시간씩 자동차로 이동하는 것이 일상화된 미국은 운전 시 음식을 먹는 일이 많아, 미국에서 판매되는 차에는 컵홀더가 꼭 있어야 하고 그 수도 많을수록 좋다. 평야가 많아 지평선에 해가 걸리기 때문에 선바이저도 중요하다. 햇살이 강한 지역에서는 운전자 대부분이 선글라스를 끼는데 우리나라처럼 윈도 틴팅을 짙게 한 차는 드물다. 시인성이 떨어지는 해질녘에 계기판을 밝게 하거나, 밤길 운전 시 눈의 피로를 덜기 위해 계기판을 어둡게 할 필요가 있어 일찍부터 계기판 조명 조절장치도 써왔다.
우리에게는 낯설지만 미국에서는 벤치시트와 칼럼식 시프트레버도 흔하다. 6인승 승용차의 경우 앞좌석에 3명을 태우기 위해 긴 3인승 벤치시트를 놓는다. 석유파동 전의 미국차는 4명이 나란히 앉을 수 있을 만큼 차체가 넓었지만, 1970년대 두 차례 석유파동 이후 작고 경제적인 차가 만들어지고 무엇보다 승객의 앉는 자세가 중요해짐에 따라, 좌우 지지를 못하는 벤치시트는 쓰임이 많이 줄었다. 요즘에는 일부 렌터카 외에는 벤치시트를 찾아보기 힘들다. 벤치시트는 대개 칼럼식 시프트레버와 짝을 이룬다. 스티어링 칼럼에 기어레버를 단 칼럼식 시프트레버는 센터플로어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고 손을 멀리 떼지 않고도 변속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때문에 벤치시트가 없어진 지금에도 칼럼식 시프트레버는 여러 차종에 남아 있다.

미국 문화가 자동차에 끼친 영향

벤치시트와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는 페달식 사이드 브레이크. 앞좌석에 벤치시트를 얹을 경우 센터플로어에 사이드 브레이크 레버를 놓을 수 없기 때문에 풋레스트 부근에 페달 타입을 만들게 되었다. 센터플로어 공간을 확보할 수 있고 살짝 밟는 것만으로도 확실한 브레이킹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장점. 풋 브레이크 역시 벤치시트가 사라진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으나 최근 전동식 브레이크가 늘어나면서 수가 줄어들고 있다.
이 밖에도 체격이 큰 미국인들이 쓰기 쉽도록 스위치를 큼지막하게 배치하는 편. 우리나라나 일본이 감성적이고 아기자기하며 복잡한 것을 선호하는 것과는 반대인 셈이다. 유럽차처럼 헤드램프 스위치가 스티어링 휠 왼쪽의 대시 패널에 있는 차가 많은 것도 특징. 눈에 잘 띄고 조작하기 편하며 램프의 켜진 상태를 확인하기 쉽다. 반면 우리나라와 일본차들은 대부분 방향지시등 레버에 램프 스위치 기능을 같이 넣는다. 트럭이나 SUV 중에는 아직까지 전통적인 폴 형태의 라디오 안테나를 쓰는 차도 있다. 예전에는 작은 차에도 쓰였으나 지금은 기계식 세차장을 이용할 수 없는 큰 차에 주로 남아 있다. 안테나를 접거나 쉽게 떼어낼 수 없지만 값이 싸고 성능이 우수하며 고장이 나지 않는 장점이 있다. 비슷한 이유로 전통적으로 미국차들은 사이드미러를 자동으로 접는 기능이 없었다. 미러를 접을 일이 없을 만큼 주차 간격이 넉넉하기 때문. 그러나 요즘에는 사이드미러 접이 기능을 넣은 차들이 많아졌다.
미국차는 크루즈 컨트롤도 일찍부터 사용했다. 몇 시간을 달려도 차 한 대 보이지 않는 장거리라면 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 일이 고생스럽기 때문이다. 운전의 피로를 줄일 수 있는 편리함뿐만 아니라 정속 주행을 통한 연비 향상 효과도 있는 크루즈 컨트롤은 사실상 미국 자동차 시장 때문에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 과거의 벤치식 시트 (1962년형 캐딜락 엘도라도) 11 칼럼식 시프트레버 (2017년형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12 넉넉한 수납공간 (2017년형 포드 이스케이프)

10 과거의 벤치식 시트 (1962년형 캐딜락 엘도라도)
11 칼럼식 시프트레버 (2017년형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12 넉넉한 수납공간 (2017년형 포드 이스케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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