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YUNDAI MOBIS

수백 년을 이어온 전통
일상에 스미다

북촌한옥마을과 설렁탕

북촌한옥마을만큼 서울의 과거와 전통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 있을까?
매년 수많은 외국인 여행자가 찾고 있는 북촌한옥마을은
수백 년 전통을 그대로 이어와, 이제는 대중의 생활 터전으로
자리 잡았다. 이곳에서 서울의 대표 음식인 설렁탕을 한 뚝배기 비워내며,
이 마을과 이 음식의 공통점을 찾아본다.

글 성소영 사진 김재룡, 임준형 장소협조 콩지POT지

  • 1 북촌 5경에서 바라본 풍경
  • 2 늦은 밤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 삼청동 골목 풍경
  • 3 카페, 아트숍 등이 즐비한 삼청동 은행나무 골목
  • 4 북촌 8경인 돌계단 길

다닥다닥 한옥이 어깨를 맞댄 북촌한옥마을

설렁탕 맛집들과 이웃한 북촌한옥마을은 외국인 여행자들이 서울에서 가장 많이 찾는 곳 이다. 좁다란 골목과 한옥의 처마 물결, 한복 체험 등 다양한 체험 거리가 많아서다. 주변에 경복궁과 창덕궁, 인사동과 삼청동 등 서울을 대표할 만한 명소들이 굴비처럼 엮여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게다. 북촌은 청계천과 종로의 윗동네라는 뜻으로 경복궁, 창덕궁, 종묘 사이에 있는 가회동, 삼청동, 계동을 연결하는 마을이다. 조선시대 권문세가와 왕족들이 살던 고급 주택단지였다. 1930년대 이후 서울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자 지역의 땅들이 분할되면서 큰 집들이 지금처럼 작게 나뉘게 되었다. 북촌 한옥은 전통 한옥에 비해 많이 개량된 모습이다. 추위를 막기 위해 대청에 유리문을 달고 처마에 함석을 잇대어 빗물이 흘러갈 수 있도록 물길을 만들었다. 북촌한옥마을의 시작은 계동 현대사옥 옆 골목길에서 시작한다. 골목길에 들어서면 북촌 문화센터가 있는데 지도를 비롯한 여러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언덕길을 오르면 잠시 후 창덕궁 돌담이 보인다. 그 뒤로 펼쳐진 궁궐의 모습이 위엄 있다. 담 밖에서 보는 궁궐의 모습이 궁 안에서 보는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이 풍경이 북촌 1경이다. 창덕궁 돌담길을 따라 500m 정도 걸어가면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 가옥에 닿는다. 일제강점기 한옥 살림집의 변화상을 보여주는 이 가옥은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1918년 직접 설계해 41년간 생활한 곳이다.

거대 도시 서울에서 과거로의 여행

2경은 창덕궁 돌담길을 따라가면 나오는 원서동 공방길이다. 옛날에는 조선왕실을 돌보던 나인들이 모여 살았다고 한다. 지금은 아기자기한 소품을 만드는 공방들이 모여 있다. 3경은 가회동 11번지 일대를 일컫는데 일명 ‘박물관 골목’이라 부른다. 그만큼 전통문화를 소재로 한 박물관이나 공방이 많다. 일방통행로를 따라 걸어가면 계동교회와 1968년 문을 연 중앙탕이 모습을 드러낸다. 목욕탕은 47년의 세월을 뒤로하고 2015년 젠틀몬스터 쇼룸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가회로를 건너 돈미약국을 따라 골목으로 들어서면 다닥다닥 붙어 있는 한옥이 이어진다. 까치발을 하고 담장 너머를 내려다보면 가회동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버선코처럼 살짝 하늘로 치켜 올라간 처마가 너울대는 파도를 닮았다. 여기가 4경이다. 5경과 6경은 가회동 골목 풍경이다. 날씨가 맑은 날은 서울N타워가 손에 잡힐 듯 또렷이 보인다. 6경을 뒤로하고 왼쪽 골목으로 들어서면 7경이다. 마지막 8경은 카페거리로 유명한 삼청동길로 내려가는 돌계단 길이다. 커다란 바위를 통째로 조각해서 만들었다. 삼청동은 흔히 은행나무 골목이라 부르는데 카페와 갤러리, 아트숍이 줄지어 있어 늦은 밤까지 활기가 넘친다. 북촌한옥마을은 거대 도시 서울에서 과거로의 시간 여행과 빈티지한 골목 여행을 겸할 수 있어 큰 위안이 되어준다. 수백 년 전통을 이어와 대중의 일상 곳곳에 녹아든 따뜻한 설렁탕 국물과 참으로 잘 어울리는 동네다.

  • 5 뽀얗게 끓고 있는 설렁탕
  • 6 맛깔스러운 배추김치, 3~4일
  • 7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이문 설렁탕의 설렁탕 상차림
  • 8 뜨끈할 때 손님상에 음식을 내야 하기 때문에 주방은 언제나 바쁘다.

풍년을 기원하는 설렁탕

설렁탕이 북촌한옥마을과 잘 어울리는 이유는 전통 음식이면서도 우리와 매우 친숙한 탓이다. 예부터 우리 민족은 농사를 최우선으로 여겼고, 그만큼 풍· 흉년을 결정짓는 날씨가 중요했다. 조선시대에는 임금이 동대문 밖에 있는 선농단에서 풍년을 바라는 제사를 지낼 정도였다. 선농제에는 임금을 비롯해 양반, 농민, 천민 할 것 없이 모두 나와 풍년을 빌었고 그앞에는 적전(籍田, 임금이 몸소 농민을 두고 농사를 짓던 논밭)을 마련해 임금이 직접 밭을 가는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제사가 끝나면 제에 바친 소고기를 요리해 다 같이 나눠 먹었다. 그런데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몰려온 탓에 모두에게 고기를 나눠줄 수 없어서 고안해 낸 방법이 소뼈, 소머리, 발, 도가니, 내장 따위를 솥에 넣고 푹 고아서 고깃국을 만들고 밥을 말아 나눠 먹는 것이었다. 이것을 선농단에서 먹던 음식이라 해서 ‘선농탕’이라 불렀다. 지금의 설렁탕은 선농탕이 변해서 된 것이라는 주장인데, 가장 설득력이 있다. ‘국물이 눈이 내린 것처럼 뽀얗고 맛이 진하다’ 해서 눈설(雪), 짙을 농(濃)을 써서 ‘설농탕(雪濃湯)’이라는 설도 있다. 이외에 몽골에서 고기를 끓이는 요리법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설렁탕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문헌 기록이나 자료가 없어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지만, 동대문구에서는 매년 봄 ‘선농문화제’를 열어 왕이 백성에게 설렁탕을 나누어주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덧붙여 곰탕과 설렁탕을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조금 다르다. 설렁탕은 소뼈를 오랫동안 끓여 국물이 뽀얗고, 곰탕은 고기와 내장을 넣고 설렁탕보다 짧은 시간 끓여 국물이 맑다. 요즘은 식당마다 끓이는 법이 다양해 국물 색깔만으로는 구분하기 어렵다.

서울 대표 음식 설렁탕

1924년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서울에만 설렁탕집이 100개 정도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설렁탕이 서울을 중심으로 식당 차림표에 등장한 것은 20세기 초반이다. 1902년 서울시 요식업 허가 1호를 받은 식당은 ‘이문설렁탕’이다. 김두한이 여기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손기정 선수도 이 식당의 단골이었다. 서울역 뒤편인 잠바위골과 인사동 역시 비슷한 시기에 설렁탕 맛집 거리로 이름을 날렸다. 서울시청 건너편 소공동에 있는 ‘잼배옥’은 1933년에 문을 연 설렁탕 맛집으로 지명이 ‘잠바위골-잠배-잼배’로 파생된 것에 ‘옥’자를 붙인 것이다. 1960년대 택시기사가 많이 찾으면서 유명해진 ‘신촌설렁탕’은 명맥이 끊겼지만, ‘마포양지 설렁탕’과 ‘마포옥’이 양지고기와 국물로 사람들의 입맛을 여전히 사로잡고 있다. 산업화의 물결이 거세지면서 1970년대 서울 곳곳에 설렁탕집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점심때가 되면 넥타이 부대와 작업복 부대가 골목을 누비며 뜨거운 국물로 허한 속을 달랬다. 이문설렁탕 사장의 말에 따르면 설렁탕은 뼈가 중요한데 수소는 누린내가 나기 때문에 암소가 좋다고 한다. 뼈를 손질해서 물에 담가 핏물을 뺀 뒤 물이 맑아지면 삶기 시작한다. 첫 번째 삶은 물은 버리고, 다시 10시간 이상을 끓인다. 그런데 너무 오래 끓이면 오히려 비린내가 나서 맛이 없단다. 식혀서 기름을 건져내고 다시 고깃국물을 넣어 삶으면 비로소 구수한 설렁탕이 완성된다. 생각 없이 먹었던 설렁탕이지만 뚝배기 한 그릇에는 정성이 가득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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