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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의 대중화를 일궈낸, 자동차 회사의 설립자들

자동차 발전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의 노력이 있었다.
자동차를 사랑하는 이들이 수많은 역사를 쌓아 올린 것이다. 그중에서도 자동차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인물들의 이야기를 지금 소개한다.

헨리 포드

(Henry Ford, 1863~1947)

“5%가 아닌 95%를 위한 자동차를 만들어야 한다”

미국 자동차 회사 ‘포드(Ford Motor Company)’의 창설자인 헨리 포드. 자동차를 먼저 발명한 사람도, 만든 사람도 아닌데 왜 그는 ‘자동차의 왕’으로 불릴까? 바로 그가 단일 품종 대량 생산이라는 시스템으로 자동차 대중화에 기여했기 때문이다. 헨리 포드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농사일보다는 기계 만지는 걸 좋아했다. 우연히 증기 자동차를 보고 자동차를 만들기로 마음먹은 헨리 포드. 토머스 에디슨의 전기회사에 엔지니어로 근무하면서, 홀로 내연 엔진을 연구해 32세에 타이어를 사용한 사륜구동 자동차를 만드는 데 성공한다. 이후 동업자와 함께 1903년 포드 자동차 회사를 설립, 부사장 겸 선임 엔지니어 직책을 맡게 된다. 포드의 첫차 ‘A형’이 성공하고, 헨리 포드는 자동차는 사치품이 아니라 생활필수품이라 생각해 대중을 위한 차를 만들겠다고 선언한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T형’ 포드. 일반 대중이 자동차를 구입할 수 있도록 저렴한 가격과 내구성, 정비가 쉬운 단순한 엔진 구조의 T 모델을 내놓기 위해 오직 이 모델만을 위해 생산 공정을 표준화했다. 1911년 컨베이어 벨트를 도입해 노동자들이 일렬로 서서 똑같은 작업을 반복하는 라인 생산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 시스템은 생산 속도를 비약적으로 끌어올려, 자동차 대량생산의 시대를 열었다. 달라진 생산 방식 덕분에 1908년에는 900달러이던 T 모델의 가격을 1914년에는 400달러까지 낮출 수 있었다. 이 자동차 혁명은 결국 귀족과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던 탈 것(자동차)은 누구나 자신만의 자동차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앙드레 시트로앵

(Andre Citroen, 1878~1935)

“시트로앵을 몰고 사하라 사막을 횡단하면 어떨까?”

누구보다 남다른 생각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앙드레 시트로앵은 유럽 최초의 자동차 대량생산 제조업체 ‘시트로앵(Citroën)’의 창립자다. 앙드레 시트로앵은 프랑스 명문 대학인 에콜 포리 테크닉대학을 졸업하고 우연히 발견한 ‘더블 헬리컬기어’로 기어 제작소를 설립해 사업을 시작한다. 더블 헬리컬기어는 ‘V’자 형태의 이빨을 가진 특수 기어 제조업으로 지금 시트로앵을 상징하는 쐐기형 엠블럼은 그의 첫 작품에서 따온 것이다. 1908년, 기어를 공급하면서 알게 된 모르(MORS)에 근무하면서 앙드레 시트로앵은 자동차 제작의 꿈을 키우게 된다. 1919년 시트로앵을 설립, 헨리 포드의 대량생산 시스템과 자신만의 독창적인 생각을 결합해아이디어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는 그해 유럽 최초의 양산차인 ‘타입 A(Type A)’를 내놓아 자동차 대중화 시대를 열었으며, 세계 최초로 ‘셀프 스티어링(Self Steering)’ 기능(U 턴 후 스티어링휠이 알아서 제자리로 돌아오는 기능)을 탑재했다. 1차 세계대전을 겪는 동안 내구성에 대한 요구가 크게 올라간 자동차 시장에서 앙드레 시트로앵은 마케팅을 기발하게 펼치기도 했다. 1921년에는 신차 B2의 단단함을 대중에 선보이기 위해 세계 최초로 사하라 사막을 횡단하고, 1925년에는 B12에 코끼리를 올려 시내를 돌아다니며 안전성을 드러냈다. 1925~1934년까지 에펠탑에 CITROEN 글자를 옥외광고로 설치하고, 자동차 역사상 최초의 애프터서비스를 실시하는 등 이목을 집중시켰다. 1934년에는 자동차 역사상 걸작이라고 평가받는 ‘트락숑 아방 (Traction Avant)’을 선보였다. 세계 최초 전륜 구동차로 유압식 브레이크를 장착했고, 차체와 뼈대가 하나로 되어있는 구조(모노코크 보디)를 처음으로 채택해 안정성과 내구성을 충족시켰다. 이후에도 획기적인 자동차인 ‘2CV’, ‘DS시리즈’ 등 경제적이면서도 멋스럽고, 성능이 뛰어난 상상도 못 할 차들을 선보이며, 시트로앵은 프랑스 대표 자동차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에토레 부가티

(Ettore Bugatti, 1881~1947)

“자동차는 달리기 위해 탄생했다”

우수한 기술과 예술성이 돋보이는 디자인의 ‘부가티(Bugatti)’. 프랑스 알자스 지방에 설립된 이 고성능 자동차 제조회사는 이탈리아 출신의 에토레 부가티가 설립했다. 에토레 부가티는 이탈리아 밀라노의 예술가 가문에서 태어났다. 예술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에토레 부가티는 기계에 대한 뛰어난 이해력과 손재주를 가지고 있어 엔지니어로서 기술을 익혔고, 자동차 디자인에서도 두각을 드러냈다. 이는 아버지 카를로 부가티(Carlo Bugatti)가 증기기관을 탑재한 삼륜 자동차를 제작해 이탈리아 귀족들에게 팔아,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자동차를 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집안 이름을 딴 부가티를 1909년 세운다. 모터스포츠에 관심이 많았던 에토레 부가티는 경기가 열리는 프랑스에 회사를 설립. 자동차 경주에서 자신이 만든 차의 우수성을 인정받고 싶었다. 모든 부품을 손으로 만들 때였는데, 부가티의 차들은 정교함이 뛰어났다. 부품이 완벽히 들어 맞았으며, 연료나 오일 누유도 없었다. 더군다나 부가티에서 만들어진 경주용 자동차는 초창기 그랑프리 자동차 경주 대회에서 상위에 입상하며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1924년 내놓은 T35(Type 35)가 각종 대회와 그랑프리에서 큰 활약을 하며 (1924년부터 2,000번이 넘는 레이스에서 우승) 부가티는 확실히 명성을 굳혔다. 특히 성능이 뛰어나고 외관이 아름다운 T57은 1937년과 1939년 두 차례 르망 24시에서 우승했다. 부가티는 세상에서 가장 빠르고 내구성이 뛰어나고 깊이 있는 예술성까지 지닌 최고의 자동차 회사였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 대전이 지나며, 주 고객층이었던 전 세계 왕족(군주제 폐지)과 부유층(몸을 숨김)에게 차가 판매되지 않아 급격히 회사는 기울고, 생산을 중단하게 되었다. 예술과 기술의 융합을 추구해 가장 빠르고 럭셔리한 차를 만들었던 에토레 부가티. 다행히 실력과 명성이 뛰어났기에 폐업 후에도 부가티란 이름은 지속되었다. 엔진 제작 부서는 다른 회사에서 인수하고, 폭스바겐 그룹이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비싼 럭셔리 브랜드로 부활시켜 최고급 스포츠카를 한정 생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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