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콩과 볏짚이 만났을 때
청국장과 낫토

청국장과 낫토는 삶은 콩을 볏짚으로 발효시켜 만드는 방법이나 영양성분이 거의 비슷하다. 한국의 청국장은 다양한 균이 다양한 맛과 향을 연출하는
본래의 방식으로 ‘특수’성이 강해졌고, 일본의 낫토는 하나의 균으로 하나의 맛을 내는 절제로 ‘보편’성에 가까워지고 있다.
글. 채희숙(<특산물 기행> 저자)
고독한 미식가와 낫토 붐
가수 출신 배우인 기무라 타쿠야는 2000년대 중반까지 일본 연예계를 휩쓸었던 슈퍼스타로 한국 팬도 많다. 역대 일본 드라마 시청률 1위를 기록한 뒤 2007년 영화로 만들어진 <HERO>에서 그는 홈쇼핑 중독에 빠진 중졸 검사 쿠리오를 열연하며 “청국장을 먹어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른다. 부산에서 촬영한 영화 신에는 그리던 청국장을 먹으려다 냄새 때문에 포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2018년, 일본의 인기 TV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의 한국 출장 편이 서울과 전주에서 촬영되었다. 주인공 고로 씨가 전주에서 먹은 음식은 청국장백반. 배우 마츠시게 유타카는 비빔밥과 청국장 그릇을 야무지게 비워낸다. 한국 여행때 <고독한 미식가>에 나왔던 전주의 식당을 찾아가 청국장을 먹었다는, 가격에 비해 푸짐하고 맛있었다는 후기가 일본 블로그에 종종 올라오는 걸 보면 드라마 방영 이후 일본 사람들의 청국장에 대한 관심이 많아진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일본에서 청국장은 아직도 한국 요리 마니아나 가끔 찾는 ‘특이한 요리’ 정도로, 인지도나 보급률이 10년 전과 큰 차이 없이 낮은 편이다. 일본 쇼핑몰에서 파는 청국장은 모두 한국산 수입품이다.
반면 한국에서 낫토는 영화나 드라마에 인기 연예인과 함께 소개된 적이 없고, 일본정부관광국은 한국관광공사처럼 드라마 촬영을 유치하지도 않았다(<고독한 미식가> 한국 출장 편을 한국관광공사가 유치). 그럼에도 낫토의 인기는 수직 상승해 매출이 청국장을 추월했고, 시장 규모는 10년 만에 10배 이상 늘어났다(2017년 기준). 먹방과 요리 블로그에 다양한 낫토 요리가 소개되고, 대형 마트나 쇼핑몰에서도 수많은 제품을 판매 중이다. 일본산 수입품보다 한국산 제품이 더 많이 유통되면서 그야말로 ‘낫토 붐’을 일으키고 있다. 두 음식이 걸어온 길을 들여다보면 이런 변화와 차이가 만들어지게 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좋은 음식은 코에 쓰다!
청국장은 삶은 콩에 볏짚을 깔아 40~50℃에서 2~3일간 보온하면 볏짚에 붙어 있는 자연균인 바실러스 서브틸리스(Bacillus Subtilis)가 번식하며 콩을 발효시켜 만들어진다. 요즘은 볏짚 대신 균주를 배양하거나 구매해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숙성 기간이 몇 달씩 걸리는 된장보다 빨리 만들어 먹을 수 있어 편하고, 콩을 통째로 발효시키므로 영양 손실이 적다. 마늘이나 생강, 고춧가루를 넣고 콩이 드문드문 남아 있을 정도로 찧은 다음 묵은 김치나 야채, 고기, 두부 등 취향에 맞는 부재료를 넣어 되직하게 끓여 먹으면 든든한 한 끼 반찬이 된다. 언제 어디에서 청국장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조선시대 병자호란 때 청나라 군대의 식량으로 쓰이던 ‘전국장(戰國醬)’이 기원이다, 고구려 시기 만주 기마민족이 말안장 밑에 삶은 콩을 넣어 다니다 발효된 것이 한반도로 유입되었다 등의 설이 있다. 고구려에서 ‘고려장’, 신라에서 ‘염시’ 혹은 ‘시’, 발해에서 ‘책성시’라 불렀던 기록이 고전에 나오는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에서 시작된 음식이라는 주장도 있다. 어느 게 맞는지 몰라도 중국에 청국장 비슷한 요리가 없어 많이 인용되는 전국장 기원도 신빙성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청국장은 ‘발효 콩의 여왕’이라 불릴 만큼 영양이 풍부하다. 바실러스균이 증식하면서 만들어내는 생리 활성 물질은 항암 항균, 소화 정장, 골다 공증 예방, 노화 비만 방지, 뇌경색과 심근경색의 원인인 혈전 용해 등의 효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소화 효소와 혈전 용해효소는 실온에 오래 두거나 가열하면 생리 활성을 잃기 때문에 냉장 보관하고 짧게 끓일 것을 권장한다. 맛도 좋고 영양도 많은 청국장이지만 문제는 특유의 냄새다. 끓이면 열을 받아 강하게 퍼져나가는 고약한 고린내 때문에 기피하는 사람이 많다. 그 맛을 좋아하는 사람도 먹고 나면 냄새가 옷에 배는 탓에 중요한 약속을 앞두고는 꺼려진다. 요즘은 인공 배양균을 사용해 악취를 줄인 제품들이 나오지만 청국장은 청국장이다. ‘양약고구(良藥苦口)’나 ‘좋은 약은 입에 쓰다(Good medicine tastes bitter)’는 동서양의 격언들이 청국장에 있어서는 ‘좋은 음식은 코에 쓰다’로 해석된다.
청국장은 ‘발효 콩의 여왕’이라 불릴 만큼 영양이 풍부하다. 바실러스균이 증식하면서 만들어내는 생리 활성 물질은 항암 항균, 소화 정장, 골다공증예방, 노화 비만 방지, 뇌경색과 심근경색의 원인인 혈전 용해 등의 효능을 갖고 있다.
낫토의 균일화가 획일화일까?
일본의 낫토는 크게 아마낫토, 이토히키낫토, 시오카라낫토 등이 있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낫토는 이토히키낫토다. 아마낫토는 콩을 설탕과 함께 졸여 단맛이 강하고, 시오카라낫토는 콩을 소금에 버무려 숙성시켜 신맛이 강하다. 낫토는 삶은 콩을 볏짚으로 발효시켜 만드는 방법이나 영양성분이 청국장과 거의 비슷하다. 차이는 발효에 관여하는 미생물이다. 청국장은 바실러스 서브틸리스 종에 속하는 여러 균이 한꺼번에 발효에 작용하는 반면 낫토는 바실러스 서브틸리스 낫토(Natto)라는 한 종류의 균이 작용한다. 삶은 콩에 낫토균을 주입하고, 잡균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포장된 상태에서 발효시켜 균일한 맛을 유지한다.
낫토 역시 기원이 명확하지 않다. 야요이시대 볏짚으로 지은 집 안에 삶은 콩을 보관했더니 자연스럽게 발효되어 먹기 시작했다는 설도 있고, 센고쿠시대 군용 말의 사료로 삶은 콩을 볏짚에 담아 주었는데 이동 중 발효되었다는 설도 있다. 이후 1906년 일본 농학자 사와무라가 낫토균을 발견하고, 다이쇼시대 북해도대학 교수가 대량생산에 성공한 뒤 청국장과 낫토는 다른 길을 걷는다. 다양한 균이 다양한 맛과 향을 연출하는 ‘자유로운’ 청국장과 하나의 균으로 하나의 맛을 내는 ‘절제된’ 낫토로.
생으로 먹는 낫토는 청국장 끓일 때처럼 심한 냄새를 풍기지는 않지만, 거미줄처럼 끈적끈적 길게 늘어지는 점액질의 식감이 난관이다. 이 점액질에 몸에 좋은 나토키나제가 들어 있으니 젓가락으로 휘저어 점도를 높인 뒤 겨자나 간장, 마늘, 파 등 각자의 입맛에 맞는 부재료를 넣어 먹어야 한다.
낫토는 낫토키나제의 효능을 입증한 연구 결과 덕분에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고, 일본 기업들은 발효에 사용되는 박테리아의 종류를 바꿔 특유의 끈적임을 감소시킨 신종 낫토로 프랑스 레스토랑에도 진출했다. 청국장은 효능을 밝힌 연구 결과가 부족한 편이고, 수출은 미국과 일본의 한인 시장으로 한정되어 있다. 균일화가 획일화인지, 다양성이 지나친 것인지, 태생이 닮은 두 음식의 미래 행보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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