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들의 시간을 바라보다

클로드 모네와 폴 고갱

“시간은 언제나 새것이었다.” 시인 문정희의 책 <살아 있다는 것은>에서 읽은 잊을 수 없는 한 문장이다.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었다.
우리는 늘 시간이 부족하다고 하고, 시간이 왜 이리 빠르게 지나가냐고 말하지만 매일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늘 새것이었다. 시간은 늘 새것으로
시작해 우리로 인해 헌것이 되고, 꽉 채워 주어지지만 우리는 늘 부족하다고만 한다. 누군가는 시간을 붙잡고 싶어 하고 누군가는 같은 시간도 다르게
느낀다. 즉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지만 모두에게 상대적이다. 화가들에게 시간은 어떤 의미였을까? 세상 모든 화가에게도 시간은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그 시간을 엿가락처럼 길게 쓰는 화가가 있는 반면 시간을 한꺼번에 다 잡아 써버리는 작가도 있다.
글. 이소영(소통하는 그림연구소-빅피쉬 대표, <그림은 위로다> 저자)
Impression: Sunrise / 1872년 / 캔버스에 유채 / 48×63㎝ / 마르모탕 미술관
루앙 시리즈 Rouen Cathedral(Sunset / Harmonie bleue et or / Facade)
“벽들이 경탄을 자아낼 만하게 표현되어 있다.” - 폴 시냐크(Paul Signac,1863-1935)
인상주의 대가, 클로드 모네: 흘러가는 시간을 끊임없이 붙잡다
화가 중에 시간을 끊임없이 붙잡으려고 노력한 화가는 클로드 모네가 아닐까 싶다. 어릴 적 교과서를 펼치면 늘 등장하는 그림 중 하나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의 ‘해돋이: 인상’이다. 인상파의 대표 작품이 된 이 작품 속 바다는 몇 시일까? 제목을 보면 해가 뜨는 이른 새벽일 것이다. 이 작품을 비롯해 수많은 모네의 작품은 풍경화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 풍경화 중에는 신기하게도 같은 장소를 여러 번 그린 작품들이 많다. 위 작품은 모네가 그린 루앙성당(Rouen Cathedral)이다. 모네의 나이 52세인 1892년에 그는 2월에서 4월 중순까지 루앙에 머물며 이 연작들을 완성한다. 루앙성당이 보이는 맞은 편 서쪽 정면에 이젤을 세우고 작업을 했고, 숙소를 잡고 창문 밖을 보며 이 장소를 그리거나 필요에 따라 이동하면서 완성했다. 30점도 넘게 그린 이 작품의 완성은 자신의 집인 지베르니로 가져가 마무리했다. 모네는 시간에 따라 같은 대상도 다르게 보이는 것에 대해 탐구하고 싶어 했다. 그가 그린 루앙성당 연작을 보면 하루 24시간이 이렇게 길까, 생각할 정도로 색이 다양하다. 마치 루앙성당의 변신을 보는 듯하다.
모네가 작품 제목을 그냥 ‘루앙성당’이라 적지 않고, ‘루앙성당’, ‘성당의 정문’, ‘아침 햇살’, ‘파랑 조화’라고 지은 것에서 미루어보아 그가 추구한 것은 루앙성당의 모습을 자세히 그리는 것보다는 색과 빛이 건물에 비췄을 때 시각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표현한 것이라 생각한다. 모네는 이 수많은 연작을 통해 빛에 의해 시간마다 변하는 성당의 모습을 증명했다. “벽들이 경탄을 자아낼 만하게 표현되어 있다.” 모네의 루앙성당 연작이 1895년 5월 화상 뒤랑 뤼엘의 화랑에서 전시되었을 때 신인상주의 후배 화가 폴 시냐크(Paul Signac, 1863-1935)가 <주르날>1)에서 했던 이야기다. 모네는 이 외에도 건초더미, 영국의 국회의사당 등 많은 연작을 남겼다. 말년에 자신의 집 지베르니의 일본식 정원에서 수련을 주제로 많은 작품을 남긴 것 역시, 시간의 변화에 따른 같은 대상에 대한 끝없는 탐구다. 어쩌면 모네는 흘러가는 시간 속에 오도카니 서 있는 이런 건축물들을 통해 시간을 붙잡았던 것일지 모른다. 해가 뜨고, 해가 지고, 바람이 불고, 날이 바뀌는 그 모든 시간의 움직임을 진실하게 마주하고 그려낸 작품들 속에서 정지된 시간의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1) 주르날 데 데바 Le Journal des Débats:제2차 세계대전 전에 발행되었던 프랑스의 유력한 일간신문.
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 / 1897년 / 캔버스에 유채 / 139×374.7㎝ / 보스턴 미술관
결국 고갱이 남긴 이 대작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무엇이고, 어디로 가는가?’
인생의 시간을 그리다, 폴 고갱: 삶과 죽음, 인생의 순환
시간이라는 것이 짧게는 하루를 말할 수 있고, 한 달이나 일 년이라는 개념일 수도 있지만 삶 전체의 시간을 볼 때 ‘유아기’ ‘소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의 흐름으로 나눌 수 있다. 한 사람이 지닌 시간을 작품으로 표현한 그림 중 나는 폴 고갱(Paul Gauguin, 1848 ~1903)의 이 작품을 좋아한다. 삶과 죽음의 시간에 대해 생각이 깊어질 때 어김없이 떠오르는 작품인데, 2013년에는 한국에서도 전시한 바 있다. 나는 이 작품으로 강의를 할 때마다 이런 퀴즈를 낸다.

아래의 순서대로 그림 속 존재들을 찾아볼까요?
▶ 그림의 오른쪽 삶을 시작하는 ‘아기’
▶ 열매를 따고 있는 활동이 왕성한 시기의 ‘젊은이’
▶ 왼편에 보이는 ‘노인’
▶ 그림의 가장 오른쪽에서 이 광경을 관조하듯 바라보는 한 마리의 ‘개’

일생을 보여주는 듯한 인물들로 시간의 흐름을 구성한 이 작품은 고갱이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완성되었다. 건강 악화와 팔리지 않는 작품들로 얻은 빈곤, 딸의 죽음으로 인해 고갱은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 죽음 바로 옆에 삶이 있듯 고갱은 이 시기에 인간의 존재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에 대해 고민했다. 제목 역시 고갱이 붙인 것으로, 고갱이 매우 아꼈던 작품이자 그의 작품 중 가장 큰 작품이기도 하다. 고갱이 이야기한 대로 시간의 흐름대로 그림 속으로 여행을 가보자. 그림의 오른쪽에는 이제 막 태어난 아기가 있고, 우리도 그 시절을 겪었다. 중앙에는 높은 곳에 있는 열매를 따는 청년이 보이는데, 우리 역시 젊은 시절에는 목표와 수확에 힘쓴다. 공부하고 사회생활을 하는 과정 모두가 삶의 목표를 이루고 거둬드리는 수확인 것이다. 그림의 왼쪽 윗부분의 동상은 고갱이 지냈고 좋아했던 타히티섬의 전설 속의 여신 ‘히나’의 조각상으로, 여신의 곁에 있는 아이가 고갱의 딸 알린이다. 고갱은 타히티에서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림을 통해 여신의 힘을 빌려 딸을 되살리고 싶어했는지 모른다. 천천히 왼쪽 제일 끝으로 시선을 옮기면 그림의 귀퉁이에서 한 노인이 귀를 막고 불안해하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말없이 바라보는 한 마리의 개가 그림의 제일 오른쪽에 앉아 있다. 나는 이 그림 한 장이 한 사람의 생애의 흐름을 보여주는 ‘인생 시계’라고 생각한다. 결국 고갱이 남긴 이 대작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무엇이고, 어디로 가는가?’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자신 있게 내려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이렇게 말하고 싶다.
“우리는 시간의 한 부분에서 왔으며, 다시 시간의 한 부분으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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