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받는 것은 자기 가치를 확인하는 과정
타인에 대한 인정과 <사기열전>

글. 안상헌(Meaning독서경영연구소장) / 일러스트. 이혜헌
중국의 자객 형가, 영웅으로 재탄생하다
‘실존했던 자객 중 영화로 만들면 가장 멋지게 보일 것 같은 사람은 누구일까?’
중국에서 이런 재미있는 조사를 한 적이 있다. 영예의 1위는 형가(荊軻)였다. 그리고 형가의 이야기가 실제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바로 이연걸이 주연을 맡은 <영웅>이다. 형가는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진나라의 시황제를 암살하려고 했던 자객이다. 물론 그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형가의 목숨을 건 행동은 두고두고 이야기로 전해졌다. 연나라의 태자 단은 자신의 나라를 위협하는 진나라의 왕 정(政, 훗날의 시황제)을 제거하기 위해 자객을 찾고 있었다. 그런 그의 눈에 띈 이가 형가였다. 태자 단은 형가를 찾아가 자신이 타고 다니는 말과 수레를 내주면서 상빈(上賓)으로 모시고 식사도 함께하는 열성을 보였다. 이런 단의 노력에 감동한 형가는 그를 위해 자객이 될 것을 결심한다. 형가는 왕 정이 많은 현상금을 내걸고 찾는 진나라의 반역 장군 번오기의 목과 연나라의 요지인 독항(督亢) 땅의 지도를 들고 진나라로 가서 왕 정을 죽이려 한다. 그러나 그의 시도는 간발의 차로 실패하고 안타깝게 죽임을 당하고 만다. 자객 형가는 <영웅>에서 ‘십 보 안의 거리에 있으면 누구든 죽일 수 있다’는 절대 검객의 이야기로 거듭나 큰 인기를 끌었다. 견자단, 장만옥, 장쯔이 같은 걸출한 스타들이 총동원된 것만 봐도 형가의 이야기가 가진 매력을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역사 속에서 실패한 자객 형가는 오늘에 와서 영웅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옥중에서 집필한 사마천의 <사기(史記)>
형가의 이야기는 사마천의 저서 <사기(史記)>에 등장한다. 사마천은 자신의 주인을 위해 목숨을 바친 다섯 명의 자객 이야기를 <자객열전>으로 묶어놓았다. 왜 하필 사람들을 죽이는 자객들의 이야기를 따로 모은 것일까? 그것은 사마천이 <사기>를 편찬한 이유와 연관이 있다. 사마천은 한나라 무제 때 활동한 인물로 황제를 보좌하고 황실 도서관에서 자료를 수집하던 관리였다. 당시에는 흉노족의 침입이 잦았는데 그들을 정벌하러 갔던 장군 이릉(李陵)이 흉노족에게 포위당해 투항하는 일이 생긴다. 황제는 항복한 이릉과 가족에게 큰 벌을 내리려고 하는데, 사마천은 이릉이 군사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행동임을 내세워 변론한다. 그의 변론은 황제의 노여움을 사고 황제는 사마천에게 궁형(宮刑 : 생식기를 제거하는 형벌)이라는 치욕스러운 형벌을 내린다. 그때 사마천의 나이 마흔여덟이었다. 사마천의 주장은 나라를 위해, 군사들을 살리기 위한 행동은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무제의 생각은 그와 달랐고 오히려 치욕스러운 형벌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이런 상실감에 직면한 사마천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치욕은 죽음과도 같았지만 마지막 순간 그에게 떠오른 것은 아버지의 유언이었다. 자신이 시작한 역사서 <사기>를 완성해달라는 것이다. 그 후 그는 마땅히 해야 할 일에 몰두하는 것으로 치욕을 잊었고, 자신이 몰두한 일의 결과를 통해 극복했다. 이렇게 시작된 사마천의 역사 연구는 옥중에서도 계속되어 주변의 온갖 멸시와 견제를 뚫고 결국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궁형이라는 치욕, 왕에게 버려진 존재라는 멸시 속에서도 사마천이 <사기>를 완성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왕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버려진 삶을 역사 연구와 저작을 통해서 만회하려는 결핍감은 아니었을까? 그리하여 만인들로부터 최고의 역사가라는 칭송을 얻음으로써 자신을 버린 왕에게 무엇인가 보여주고 말겠다는 오기는 아니었을까?
타인은 지옥 그 이상이다
평소 우리는 ‘타인은 지옥’이라는 사르트르의 말처럼 타인을 불편해한다. 타인의 시선에 신경 쓰고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직장인들의 일상은 이것을 잘 말해준다. 직장에서 발을 편하게 책상 위에 올리거나, 인터넷 쇼핑으로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거나, 마음에 담은 생각을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내가 이런 행동을 하면 타인이 어떻게 생각할지 불안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인이 항상 지옥인 것만은 아니다. 타인은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알려주는 정보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는 타인의 인정과 칭찬은 단지 듣기 좋은 말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잘하고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는지를 알려주는 소중한 정보다. 게다가 인정과 칭찬은 나에 대한 긍정적이고 고무적인 이야기들로 나의 존재감을 한껏 높여준다. 사회적 존재인 인간에게 인정과 칭찬이 중요한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철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이 강조하는 것처럼 인간은 사회적, 정치적 존재다.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인간이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만 인간으로서 가치를 느낄 수 있고 자신이 누구인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타인은 나를 확인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다. 이제 사마천이 자신의 책에 인정과 욕망에 대한 이야기를 잔뜩 담은 이유가 이해된다. 그는 <유협열전>, <자객열전> 등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을 통해 인간이 인정받으려는 욕망이 얼마나 중요하게 작용하는지를 드러낸다. 타인은 지옥 그 이상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고, 사회적 삶의 가치를 누구보다 절실히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
인정과 욕망에 대한 이야기의 최고봉은 <자객열전>에 등장하는 예양(豫讓)이라는 인물의 일화다. 예양은 춘추시대 진(晉)나라 사람으로 대부였던 지백(知伯)의 참모였다.
지백의 수하가 되기 전 여러 주인을 모셨으나 능력을 인정받지 못했다. 그런 그를 높이 인정해주고 큰일을 맡기며 신임해준 사람이 지백이었다. 당시 지백은 진나라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지만 조양자를 비롯한 대부들의 공격을 받고 죽고 만다.
몸을 피해 숨어 있던 예양은 어느 날 자신의 주인을 죽인 조양자가 주인의 두개골을 술잔으로 쓰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는다. 분노한 지백은 복수를 결심하고 칼을 품고 조양자의 집으로 숨어들었다. 하지만 군사들에게 사로잡혀 조양자에게 끌려가는 신세가 된다. 조양자가 왜 자신의 집에 칼을 품고 왔느냐고 묻자 예양은 이렇게 대답한다. “지백은 나의 주인이었는데 당신이 그를 죽이고 두개골을 술잔으로 사용한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옛 주인의 복수를 하고 그의 원한을 갚으러 왔다.”
그러자 예양의 기백에 감복한 조양자가 그의 뜻을 높이 사 목숨을 살려준다. 단, 다시는 자기를 찾아오지 말라는 조건을 달고. 그러나 한번 시도로 기가 죽을 예양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온몸에 옻칠을 하고, 숯을 삼켜 벙어리가 되어 다른 사람인 양 행세를 했다. 그리고 조양자가 자주 지나는 다리 아래에서 칼을 품고 기다리지만 조양자의 마차는 다리를 건너오지 않았다.
살기를 느낀 말들이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예양은 다리를 수색하던 군사들에게 붙들리게 되고 다시 조양자 앞에 무릎 꿇는 신세가 된다.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했는데 왜 찾아왔냐는 조양자의 말에 예양은 이렇게 대꾸한다.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고, 여자는 자기를 기쁘게 해주는 사람을 위해 화장을 한다고 했다.[사위지기자사(士爲知己者死), 여위열기자용(女爲悅己者容)] 지백은 나를 알아주었으니, 그를 위해 목숨을 다하여 복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번에는 조양자도 예양을 살려줄 수 없었다. 조양자가 예양을 죽이겠다고 하자 예양이 마지막 부탁을 들어줄 것을 청한다. “당신의 옷을 던져주면 그 옷이라도 찌르고 죽고 싶소.” 그 뜻을 헤아린 조양자가 옷을 벗어주자 예양은 세 번을 찌르고 칼로 자결하고 만다. 예양은 죽어서라도 지백에게 부끄럽지 않은 신하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자신을 인정해준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예양의 이야기는 이후 수없이 회자되어 영웅담의 전형이 되었다.
타인을 인정하지 못하는 이유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 죽는다’는 말처럼 누군가를 알아주고 인정해주는 것은 중요하다. 인정받는다는 것은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증표다. 어떤 사람에게는 인정받는 것이 목숨을 바칠 만큼 중요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런 인정에 익숙하지 않다. 누군가를 인정해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부족하다. 타인을 인정해주면 나 자신이 초라해진다고 느끼는 경우도 많다. 혹은 상대방에게 잘 보이기 위해 거짓말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누군가를 인정해준다는 것은 내가 초라해지는 일이 아니다. 인정한다는 것은 그가 괜찮은 사람임을 확인하는 것이지 나의 초라함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오히려 나의 인정을 받은 사람이 나를 좋은 사람으로 여겨줌으로써 관계가 좋아지는 결과를 낳는다. 억지로 꾸며낸 말이라면 거짓말이 되겠지만 상대방의 장점과 좋은 점을 말로 알려주는 것이기에 꾸며낼 필요가 없다.
작고 소소한 것이지만 상대방의 좋은 면을 드러낼 수 있다면 그것이 삶의 활력이 되고 관계의 자양분이 될 것이다. 사람은 인정받는 것을 통해 자기 가치를 확인한다.
<자객열전>의 또 다른 인물 조말(曹沫)이 그랬다. 조말은 노나라 장수였는데 강한 나라였던 제나라와의 싸움에서 세 번 모두 지고 말았다. 싸움에 진 부끄러움으로 관직을 내놓았는데 그럴 때마다 노나라의 왕은 그의 사직서를 돌려주었다. 그가 능력이 부족해서 패한 것이 아니라 제나라의 군사력이 너무 강해서 진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알아준 왕의 은혜에 보답할 길을 모색하던 조말은 제나라 왕과 만나 일을 벌인다. 제나라 환공의 목에 칼을 들이밀고 빼앗아간 땅을 내놓으라고 요구한 것이다. 놀란 환공이 땅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한 다음에야 물러났다. 화가 난 환공은 다시 노나라를 공격하려 했지만 참모 관중의 만류로 포기하게 된다. 조말은 자신을 인정해준 왕을 위해 목숨을 걸고 자신이 빼앗긴 땅을 되찾아온 것이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예양과 조말 그리고 사마천. 이들의 삶은 인정받음이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자신을 알아준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인정받는 역사서를 남기기 위해 치욕을 감내했던 일들은 그들이 살아야 하는 삶의 이유가 무엇인지를 엿볼 수 있게 한다. 그런 점에서 사마천의 <사기>는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만들어낸 인간의 능력이 최고도로 발휘된 명저가 분명하다. 현대인은 삶의 조건으로 돈을 생각한다. 그러나 옛사람들은 돈보다 귀중한 것이 있다고 믿었다. 대표적인 것이 사람답게 살았다는 느낌이다. 사람답게 살았음은 다른 사람의 인정을 통해서 확인된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을 했다는 증거이고 삶이 명예로웠음을 말해준다. 우리가 고전에서 배워야 할 점이 있다면 이런 점일 것이다. 눈앞에 보이는 현실이나 돈, 지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사실. 인생을 어떻게 볼 것인지는 사람과 상황과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 그리하여 우리가 스스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선택하고 추구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다면 우리는 삶을 괜찮은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사기열전
사마천 저 | 김원중 역 | 민음사
사마천의 <사기(史記)>는 2,000여 년에 걸친 역대 왕조의 사적을 엮은 역사책이다. 그 내용은 52만 6,500자, 130권이나 되는 방대한 기록으로, 역대 왕조의 편년사(編年史)인 본기 12권, 연표 10권, 부문별 문화사인 서(書) 8권, 열국사(列國史)인 세가(世家) 30권과 개인의 전기집인 열전(列傳) 70권으로 되어 있다. 그중 <열전>은 개인의 구체적인 성공과 실패를 추적한 개인 전기로, 사기의 백미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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