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조각한 돌꽃 한 송이
경주 주상절리 파도소리길

지인의 이름처럼 친숙한 ‘경주’에 일 년에 한 번은 들른다. 대릉원에 벚꽃이 피어서, 남산에 진달래가 피어서, 동궁과 월지 야경이
보고 싶어서 등 온갖 이유를 붙여 경주 여행을 계획한다. 이번엔 경주 바다 여행을 준비한다. 경주에 웬 바다냐며 지인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주요 관광지가 도심에 밀집돼 있어서 그렇지, 경주는 엄연한 해양도시라는 사실. 경주 동해안을 여행하며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주상절리와 통일신라의 초석을 다진 문무왕의 이야기를 만나본다.
글과 사진. 김혜영(여행 작가 <주말여행 버킷리스트 99> 저자)
경북 동해안에도 주상절리가 있다
10년 전 경주 양남면 바닷가에 깜짝 놀랄 만한 암반지대가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그로부터 얼마 뒤, 이 지역에 해안 산책로가 조성됐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이 산책로가 바로 ‘주상절리 파도소리길’이다. 율포진리항(하서항)과 읍천항 사이의 바닷가를 걷는 이 길은 약 1.9km로 천천히 걸어도 한 시간이면 넉넉하다. 이 해안 산책로가 조성된 배경에 경주 양남 주상절리군(천연기념물 536호)이 큰 역할을 했다.
제주도에만 있는 줄 알았던 현무암 주상절리가 경북 동해안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일반적으로 주상절리는 수직으로 발달하는데, 양남 주상절리군은 대부분 바닷가에 누워 있다. 전 세계에서 보기 드문 부채꼴 주상절리를 비롯해 상어 꼬리처럼 위로 솟은 주상절리, 기울어진 주상절리 등 기기묘묘한 형태를 띤다. 주상절리 전시장이라 부를 만하다. 양남면에 유독 주상절리가 발달한 이유는 뭘까. 약 2,000만 년 전, 신생대에 들어와 경주, 울산 등 동해안 지역에 현무암질 용암이 광범위하게 분출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뜨거운 용암이 지표면과 만나 빠르게 식으면서 용암의 표면이 가뭄에 논바닥 갈라지듯 오각형 혹은 육각형 모양의 틈(절리)이 생기게 된 것이다. 육각 단면 주상절리는 손으로 빚은 듯 형태가 분명해 볼수록 신비롭다. 마치 연필을 차곡차곡 쌓아놓은 것 같다.
온 가족이 걷기 좋은 주상절리 파도소리길
주상절리 파도소리길은 율포진리항(하서항) 또는 읍천항 어느 곳에서 걷기 시작해도 상관없다. 율포진리항에서 출발하면 오른쪽에 바다를 두고 걷는다. 횟집밖에 없던 율포진리항 선착장에 바다 풍광을 자랑하는 카페가 몇 곳 들어섰다. 방파제 끝에 있는 대형 자물쇠는 연인들이 사랑을 맹세하며 인증 사진을 남기는 포토존 ‘사랑의 열쇠’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해안 산책로가 시작된다. 흙길과 몽돌길이 섞여 있던 원래 지형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고 조성한 길이다. 비탈진 곳에만 나무계단을 설치하고, 벤치, 포토존, 전망 데크, 이정표, 정자 쉼터, 출렁다리 등 꼭 필요한 시설만 두었다. 여러 형태의 주상절리 앞에 친절한 설명을 덧붙인 안내판을 세워놓은 것이 인상적이다. 갈림길이 없어 길을 헤맬 일도 없다. 해안선만 따라 걸으면 되니 맘이 편하다.
산책로 옆 해변은 몽돌로 뒤덮여 있다. ‘차르르 차르르’ 파도가 몽돌을 쓰다듬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걷는다. 바닷가에서 삼각형 모양의 우뚝한 바위 하나를 만난다면 양산할배·할매바위라고 알아채면 된다. 바위 꼭대기에 소나무 두 그루가 뿌리를 내리고 산다. 소나무의 강인한 생명력에 오가는 이들이 감탄한다. 경주에 있는 바위에 왜 양산할배·할매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의아하다.
바다에 핀 돌꽃 한 송이
양산할배·할매바위를 지나면 멀리서 우주선처럼 보였던 부채꼴 주상절리 전망대가 멀지 않다. 예전 군부대 초소가 있어 접근하지 못했던 자리다. 전망대에서 주상절리대 형성 과정을 살펴보고, 전망층에 올라 부채꼴 주상절리 일대의 풍광을 굽어본다. 부채꼴 주상절리는 양남 주상절리군 중 형태가 가장 독보적이고 수려하다. 국내에서 처음 발견된 형태로 각도에 따라 부채꼴 또는 해국 한 송이가 활짝 핀 것처럼 보인다. 에메랄드빛 바다에서 피어난 검은 돌꽃이 경이롭기만 하다. ‘동해의 꽃’이란 별칭이 잘 어울린다.
전망대를 조금 지나자 출렁다리를 만난다. 발걸음을 뗄 때마다 위아래, 좌우로 출렁대는 다리 위에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까르르 웃어댄다. 출렁다리를 건너면 읍천항이 코앞이다. 읍천항 부둣가에 주상절리빵&커피 테이크아웃점이 생겼다. 주상절리 모양 빵은 벌써 양남 특산품으로 자리 잡았다. 달지 않은 빵 속에 제법 굵은 호두 알갱이가 들어 있어 맛이 좋다. 읍천항 마을 담벼락에 그려진 벽화를 감상하며 근처 나아해변까지 걷는다. 나아해변 방파제 끝에 있는 용 모양 이색 등대가 궁금해서다. 죽어서도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던 문무대왕을 상징한 것이 아닐까 상상해본다.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의 수중왕릉
호국룡으로 환생한 문무대왕 이야기
나아해변에서 차로 10여 분 이동하면 문무대왕릉(사적 제158호)이 있는 봉길대왕암해변에 닿는다. 문무대왕릉은 삼국 통일을 이룩한 신라 제30대 문무왕의 바다무덤이다. 바닷가에서 200여 m 떨어진 곳에 길이 약 20m의 기다란 바위섬으로 되어 있다. 문무왕의 호국룡 전설 때문인지 바위섬이 엎드려 있는 용처럼 보인다. 문무왕은 통일 직후 불안정했던 국외 정세가 내내 맘에 걸렸던 모양이다. 유언을 남기길, 자신의 시신을 화장하고, 유골을 동해에 묻으면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고 했다. 유언대로 시신은 화장되어 문무대왕릉 일대에 뿌려졌다. 호화로운 왕릉을 버리고 차가운 바다에 홀로 수장되길 바랐던 문무왕의 심정이 어땠을까. 나라의 안위와 보위를 이을 아들 걱정에 하루도 편치 않았을 것이다. 이런 생각으로 문무대왕릉을 바라보니 단순한 무덤으로 보이지 않는다. 한때 문무대왕릉의 유골 존재 여부가 이슈가 되었던 적이 있다. 2001년 초음파 탐지기 검사 결과 유골 성분이 발견되지 않았다. 유골이 있었다 해도 바닷속에서 1,000년 이상 머물기란 불가능한 일. 조사 결과와 상관없이 문무왕의 호국 정신은 길이 기억될 듯하다.
  • 양남면 읍천항 어촌마을 담벼락에 그려진 벽화
  • 경주 통일신라 삼층석탑 중 규모가 가장 큰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
신문왕이 부왕을 그리워하며 문무대왕릉을 향해 절을 했던 이견대
아버지를 기리는 아들의 마음
문무왕의 아들 신문왕은 문무대왕릉에서 약 2km 떨어진 언덕에 아버지를 기리고자 감은사를 지었다. 사실, 문무대왕이 생전에 왜구의 침략을 막고자 문무대왕암릉이 잘 보이는 용당산 자락에 감은사를 짓기 시작했었다. 문무대왕이 마무리 짓지 못하고 죽자, 아들 신문왕이 부왕의 뜻을 이어 682년에 완공한 것이다. 현재 감은사 전각은 모두 소실되고, 늠름한 기상을 뽐내는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국보 제112호)과 금당 터만 남았다. 감은사는 특이하게 금당 밑에 수로가 있다. 이는 신문왕이 용이 된 문무대왕이 물길을 따라 금당으로 드나들 수 있도록 바닷물을 끌어와 금당 밑까지 연결한 것이다. 첨단과학 시대에는 상상할 수 없는 감성적인 건축물이 아닌가 싶다.
감은사에서 1km 거리에 있는 이견대(사적 제159호)도 문무왕과 관련 있는 유적지다. 신문왕이 문무왕을 장사지낸 뒤 문무대왕릉이 한눈에 들어오는 이견대에 종종 올라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절을 했다고 한다. 어느 날은 해룡이 된 문무왕과 천신이 된 김유신이 이견대에 나타나 신문왕에게 만파식적(万波息笛)을 주며, 만파식적을 불면 용이 나타나 신라를 지켜줄 것이라는 약속을 했다는 전설도 전해온다. 그래서 이견대(利見臺)는 ‘바다에 나타난 용을 보고 나서 나라에 크게 이익이 있었다’라는 뜻을 품고 있다. 지금 세상에선 웃고 말 전설이지만, 신라인들에게는 하늘 같은 믿음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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