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그림에 담긴
봄날 풍경

봄이 와도 봄같지 않은 것은 아마도 미세 먼지 때문일 것이다. 지난겨울은 ‘삼한사온’이라는 말 대신 ‘삼한사미(3일은 추위, 4일은 미세 먼지)’라는
말까지 유행할 만큼 미세 먼지로 몸살을 앓았다. 언제부턴가 눈이나 비가 오는 날씨보다는 미세 먼지부터 걱정하는 것이 일상이 된 요즘.
문득 우리의 옛 그림에 담긴 봄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궁금해진다. 모든 생명이 태어나고 자라는 봄을 몇백 년 전
화가들은 어떻게 표현했을까? 한국 화가의 옛 그림에서 그 답을 찾아보았다.
글. 이소영(소통하는 그림연구소-빅피쉬 대표, <그림은 위로다> 저자)
윤두서 / 쑥캐기 / 17세기 / 모시에 수묵 / 25X30.2cm / 개인 소장
봄에는 쑥 소풍을 떠나자
“엄마 요즘은 쑥 캐러 어디로 가? 쑥이 있기는 해? 봄만 오면 왜 이렇게 쑥이 캐고 싶지.” 나는 어릴 적부터 ‘쑥 소풍’을 좋아했다. 그 시절 엄마는 어린이가 쓸 수 없는 칼을 유일하게 쑥을 캐러 가는 날만 줬다. 봄이 오면 동생과 나는 비닐봉지를 살랑살랑 들고 엄마를 따라 보숭보숭한 쑥을 캤다. 흙을 눌러 땅속에 발을 담그고 있는 쑥을 캐는 작업은 내게 묘한 성취감을 주었고, 동생과 나는 누가 더 쑥을 많이 캐나 내기를 하며 하루를 보냈다. 시골에서는 매일 아침 무엇인가를 채집하러 나갔다. 그리고 그날은 그걸 재료로 음식을 해 먹었다. 호박 된장국, 쑥전, 도토리묵 등 모든 식자재가 동네 안에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조선의 문인이자 화가인 공재 윤두서(尹斗緖, 1668~1715)가 그린 ‘쑥캐기’는 나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전신사조의 자화상으로 유명한 윤두서는 서민의 일상을 포착한 그림도 남겼다. 봄날 언덕에서 두 여인이 쑥을 캐고 있다. 비탈진 언덕을 두리번거리며 쑥을 찾는 눈이 매섭다. 모시에 수묵으로 그려진 이 그림은 색상 때문인지 고운 흙냄새가 난다. 왼편 하늘 위 제비만이 두 여인을 응원하는 한가한 오후다.
정선 / 꽃 아래서 취해 / 18세기 / 비단에 채색 / 19.5X22.5cm / 고려대박물관
몸살 앓고 핀 봄꽃의 유혹
겨우내 추위에 움츠렸던 꽃이 몸살을 이겨내고 꽃을 피우는 봄. 꽃에게 ‘꽃 몸살’은 개화를 위해 거쳐야 할 아픈 과정이다. 겨우내 움직임이 적었던 사람들도 꽃을 보러 가고 싶어 꽃 몸살을 앓는다. 부족했던 광합성을 하며 꽃을 보러 다니려고 마음이 분주한 것이다. 꽃은 크기가 작은 순서대로 핀다. 처음엔 금화 같은 개나리가 먼저 피고, 팝콘 같은 벚꽃과 분홍 치마 같은 진달래와 철쭉, 그리고 공기를 한껏 머금은 듯한 목련이 핀다. 과학자 이정모의 책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에서는 꽃이 피는 것에도 순서가 있다고 말한다. 작은 꽃이 먼저 피는 것은 부지런해야 해서란다. 크기가 작은 꽃은 꿀이 적기 때문에 곤충을 유혹하기 위해 큰 꽃보다 서둘러 핀다는 이야기다. 또 작은 꽃은 혼자 피면 유혹의 힘이 약하기 때문에 우르르 함께 핀다. 이렇게 꽃은 크기 순서대로 몸살을 겪고 봄이면 제 할 일을 하기 위해 등장한다.
여기 ‘꽃 몸살’이 난 노인이 한 명 있다. 노인의 주변에 있는 꽃의 크기가 다 작은 것을 보니 이른 봄인가보다. 노인은 꽃을 구경하느라 바닥에 주저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아마도 짧은 초봄에 만난 작은 꽃들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봄만 되면 우리 할머니는 여기저기 꽃놀이를 다니셨다. 자신의 인생에 봄이 몇 번이나 남았겠느냐며 동네 할머니들과 산이며 들이며 꽃 몸살을 앓으셨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한 이듬해 겨울, 다시는 꽃 몸살을 앓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셨다. 겸재 정선(鄭敾, 1676~1759)의 그림 속 노인도 몇 번 남지 않은 봄을 즐기고 있는 것이리라. 그에게는 지금 이 순간이 최고의 꽃 몸살이다. 술병 주변에 꽃가지를 꺾어 줄지어 놓은 것은, 봄이 흘러갈까 아쉬운 마음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인다.
남계우 / 화접도 / 19세기 / 비단에 채색 / 27X27cm / 삼성미술관리움
남계우 / 군접도 / 19세기 / 종이에 채색 / 127.9X28.8cm / 국립중앙박물관
나비와 함께 춤을
봄이 오면 빠지지 않는 곤충이 나비다. 조선 화가 중 나비 그리기에 가장 심취한 화가는 이호 남계우(南啓宇, 1811~1890)였다. 그는 평생 곤충 학자처럼 수백 종의 나비를 관찰하고 작품으로 남겼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그의 ‘군접도’는 4폭을 다 합쳐 세어보면 150여 점의 나비가 그려져 있다. 심지어 그는 별명도 ‘남나비’였다. 남계우가 그린 ‘군접도’는 다양한 종류의 나비가 있지만 과하지 않은 장식성으로 여성스럽고 세밀하다.
리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화접도’는 작품의 형태가 정사각형이라 창문 밖 나비를 구경하는 느낌이 든다. 추운 겨울 혹독한 날씨로 밖을 나가지 못했던 선조들은 봄바람과 함께 춤추는 나비들을 보며 자유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예부터 나비는 기쁨과 축복을 상징했고 사랑하는 남녀를 꽃과 나비에 비유해 금슬 좋은 부부를 상징하기도 했다. 또한 나비 접(蝶) 자는 80세를 뜻하는 질(耋)과 중국식 한자음이 같아 80세 또는 장수를 의미한다. 고양이와 함께 그려지는 나비는 70세를 맞는 기쁨을 누리기를 바라는 것으로 장수의 의미를 지니고, 국화와 함께 그려지는 나비는 80세가 될 만큼 장수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의미와 함께 그림을 보니 남계우의 <화접도>가 심상치 않아 보인다.
나비들은 모두 원추리라는 꽃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그림 속에 보이는 샛노란 꽃 원추리의 뿌리는 의남초(宜男草)라고 하여 아들을 낳게 해주는 영험이 있다고 전해 내려왔다. 그래서 아들이 아직 없는 부인들은 원추리의 뿌리를 몸에 지니기도 했다. 또한 원추리의 땅속줄기에는 녹말이 많아 옛 사람들은 허약 체질을 튼튼하게 하는 자양강장 음식으로 원추리를 쌀·보리 같은 곡식과 섞어서 떡을 만들어 먹었다. 삶에서 가장 기본이 되고 중요한 다산과 건강을 바라는 마음이 ‘화접도’에 담긴 것이다.
평소엔 자주 보지도 않으면서 탁해지고 나니 유독 맑은 하늘이 그립다. 곁에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은 비단 연인이나 가족에게만 하는 이야기가 아닌 듯하다. 우리는 깨끗한 자연이 곁에 있을 때 최선을 다해 자연을 사랑해야 한다. 봄이 왔을 때 있는 힘껏 누려야 한다. 우리 모두 이번 봄에는 꽃 몸살을 그리고 쑥 소풍을 그리고 나비와 함께 춤을 추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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