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울어야 가정이 건강하다

40세 이상의 우리나라 남자들은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 울어야 한다”고 세뇌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남녀 불문하고
‘울지 않는 남자가 강한 남자’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지요. 그런데 상담 중 눈물을 흘리는 중년 남성들을 만난 뒤로는 ‘한국 남자들이야말로
더 많이 울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의 아버지들이 병드는 이유는 ‘남자는 울면 안 되고, 늘 강해야 한다’는
사회적 강요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거든요.
글. 박상미(마음치유 전문가, <마음아, 넌 누구니> 저자 )
울지 않는 남자가 강한 남자다?
남자의 우울증은 여자의 우울증보다 주변 사람들의 관찰과 도움을 더 필요로 합니다.
남자의 경우 우울증을 남에게 숨기고, 술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아 그로 인한 자살률도 여자에 비해 2배 이상 높습니다. 남자들은 상담센터나 병원의 도움을 받는 것을 ‘패배자’가 된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술자리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우울증을 해소하려고 애씁니다. 하지만 이는 자신의 증세를 은폐하고 외면하는 것일 뿐 증세가 호전되지 않습니다. 특히 혼자 술을 마시는 것은 증세를 악화시키는 위험한 행동이지요.
이런 남자의 우울증은 사회적인 이슈와 연관이 많습니다. 명예퇴직, 감원에 대한 압박감, 경제적인 불안감 등은 피로감을 증폭시키고 깊은 좌절감에 빠지게 합니다. 경쟁에서 밀려나고 능력 없는 남자, 무능한 가장이 됐다고 느끼는 순간 남성들은 우울해집니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아내에게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리고, 대화를 거부합니다.
그러면 아내들은 더 크게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면서 남편을 무능력한 가장으로 몰아붙이곤 합니다. 이렇게 서로에게 상처를 주면서 부부가 함께 우울증으로 빠져드는 것이지요.
혼자 우는 남자들을 안아주세요
박범신의 산문집 <남자들, 쓸쓸하다>는 남자가 어떻게 길러지고 가장이 되고 마침내 허깨비처럼 상실돼 가는지를 담담하게 풀어냅니다. 책 속에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아버지는 또 속으로 저승사자를 향해 외치고 있었을 것이다. 난 지금 못 가. 저 어린 것 때문에 못 가. 나는 아버지야. 애비 노릇 저것 클 때까진 해야 해….”

57세, 젊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저는 이 문장을 안고 며칠 밤을 울었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살아 있는 동안 가족들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엄마는 아버지가 우는 것을 딱 한 차례 본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병원에서 암 선고를 받던 날, 의사가 “담도암입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겠어요. 6개월 정도 남았습니다”라고 말하던 날이었지요. 말없이 앞장서서 걷던 아버지가, 느리게 느리게 뒤따라 오던 어머니를 돌아보고 애써 웃으며 내뱉은 말은 “여보, 나 마지막으로 담배 한 대만 피울게”였다고 합니다. 버스 정류장 표지판 아래서 우리 집과는 반대 방향으로 사라져 가는 버스를 하염없이 바라보던 남자. 담배 연기를 내뱉는 그의 푹 꺼진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 한 줄기를 엄마는 보고 말았답니다. 수년 전 박범신의 <소금>을 읽었을 때, 저는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울지 못한 울음을 다 쏟아냈습니다. 자본주의가 장악한 시대, 돈 잘 버는 아비가 좋은 아비고, 아비의 소금기를 빨아먹는 것쯤이야 당연하게 여기는 시대. 아비는 쓰러져서 “물 좀 주소” 외치는데, 핏줄이라는 이유로 오늘도 우리는 어떠한 미안함도 없이 아버지의 목에 빨대를 꽂습니다. 과연 윤리적인가? 소설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쓸쓸하고 눈물겨운 아버지의 모습은 그의 글 속에 자주 등장합니다. 자신의 소금기를 다 빨려버린 이 시대 아버지들의 이야기.
꿈같은 것은 일찌감치 포기한 아버지, 굴욕과 모욕을 견디느라 쓰러진 아버지의 목에 빨대를 꽂고 단물을 빨아먹는 우리가 읽어야 할 이야기지요. 그렇게 나이 들수록 예민한 감수성 때문에 울고 있는 남자들을 만나며 저는 아버지를 추억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 것이죠.
감정을 표현하는 데 익숙하지 않고 삼키고 참는 것이 ‘사나이’라고 강요당해온 한국의 남자들이야말로 어찌 보면 ‘피해자’입니다. 울지 못해서 마음이 병들고 장기가 병들어서 혼자 온몸으로 울고 있는 남자들.
바로 내 아버지, 내 남편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울어야 내일 웃을 수 있어요
“웃음이야 주고받을 친구는 많지만, 눈물로 마주 앉을 사람은 없더라.”

나훈아의 노래 ‘남자의 눈물’ 중 한 대목입니다. 독일 속담에 ‘남자가 울어야 그 가정이 건강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독일에 있을 때 만난 이웃 아저씨는 웃음도 눈물도 많은 분이었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생기면 언제든지 달려와서 그 얘기를 나누고 실컷 웃었습니다. 속상한 일이 있을 때는 맥주를 사 들고 와서 “딱 30분만 내 얘기를 들어 달라”고 하셨죠. 사고로 아내를 잃고, 자녀들은 유학 가고, 혼자 사는 분이었습니다.
그의 말을 다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저는 남자의 눈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줄줄 흘렀습니다. 그분은 30분이라는 시간을 꼭 지켰고, 다음 날은 더 맑은 얼굴로 모두에게 “할로”를 외쳤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그분이 늘 밝게 웃을 수 있는 것은 가끔 자기 얘기를 하며 실컷 울 줄 아는 용기를 가졌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내일 다시 웃으며 살기 위해서 오늘 울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남자가 울어야 그 가정이 건강하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한때 ‘웃음 치료’가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웃는 것, 물론 좋습니다. 하지만 마음속에 눈물이 가득한 사람이 억지로 웃는다고 아픈 마음이 치유되지는 않습니다. 혼자 운전하거나 방에 있을 때,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실컷 우는 것이 웃는 것보다 마음에 쌓인 슬픔을 쏟아내는 데 더 효과적입니다. 일본의 병원에는 ‘울음치료과’가 있다고 합니다.
또 ‘마음이 괴로울 때 울지 않으면 장기가 대신 운다’는 말도 있습니다. 슬프고 우울한 부정적인 감정들을 쏟아내지 않으면 몸이 병든다는 이야기지요.
감정을 표현하는 데 익숙하지 않고 삼키고 참는 것이 ‘사나이’라고 강요당해온 한국의 남자들이야말로 어찌 보면 ‘피해자’입니다. 울지 못해서 마음이 병들고 장기가 병들어서 혼자 온몸으로 울고 있는 남자들. 바로 내 아버지, 내 남편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눈물은 죽어가는 몸을 살려요
상담을 요청하는 남성들은 50대가 가장 많습니다. 용기를 내어 상담을 신청하고서도 몇 마디 말이 나오기도 전에 눈물부터 쏟아내곤 하지요. 남자들은 힘들다고 말하면 안 되고 우는 것은 더더욱 안 되고, 여전히 강한 남자이자 남편이자 아버지로 끝까지 ‘버티기’ 위해 침묵하다가 마침내 우울증의 수렁에 빠지고 맙니다. 침묵이 미덕이라고 길들여진 덕분에, 침묵하면서 말도 잃고 자신도 잃어가는 것입니다.
영화 치유 수업을 하면 울음치료의 효과를 중년 남성들에게서 자주 발견합니다. 여자들은 생활 속에서 울 기회도 많고, ‘여자가 울면 아름답다’는 소리도 자주 듣습니다. 하지만 울 기회가 없어서 참기만 하던 남자들은 슬픈 영화 장면을 만났을 때 그것을 핑계로 울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울기 시작해야 마음에 숨겨두었던 자기 이야기를 비로소 조금씩 꺼낼 수 있기 때문이지요. 눈물을 흘리기 전까지는 몸이 불안한 흥분 상태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눈물로 내 감정을 배출하기 시작하면 자율신경계는 놀랍게도 안정 상태로 진입합니다. 토호테 아리타 히데오 교수는 ‘큰 소리로 우는 것은 뇌를 리셋(Reset)하는 데 큰 효과가 있다. 실제로 암환자들에게 울음치료를 실시했더니, 면역력이 높아지고 암세포가 작아졌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살기 위해서 더 크게 울어야 합니다. 우리의 감정을 담는 마음 그릇에 좌절, 슬픔, 허무함, 우울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가득 담기면 비워내야 합니다. 그래야만 빈 그릇에 새로운 의욕과 희망을 담을 수 있습니다. 가장 가까이 있는 가족들이 살펴보고 물어보고 들어주고 공감해준다면, 혼자 우는 남자들이 사회 속에서 같이 웃을 수 있는 멋진 중년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남자가 울어야 그 가정이 건강하다.’ 이 글을 읽은 분들이 소문을 많이 내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는 남자들이 부끄럽지 않게, 가끔은 소리 내 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대한민국의 남자들, 소리 내어 우세요. 그렇지 않으면 당신의 장기가 대신 울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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