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유적 가득한
남도 답사 일번지 ‘강진’

전남 강진은 ‘남도 답사 일번지’라 일컬어진다. 다채로운 문화 유적과 옛사람들의 구성진 이야기를 품은 고장이기 때문이다.
또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학자로 꼽히는 다산 정약용의 18년 유배지로도 유명하다. 옛사람들의 이야기와 붉은 동백꽃이
아름답게 피어나는 봄날의 강진 여행은 꿈길처럼 황홀하다.
글과 사진. 양영훈(여행작가)
백련사 동백나무숲속 동백 낙화
조선시대에는 삼남대로가 있었다. 한양과 팔도를 잇는 9대 교통로 중 하나였다. 한양을 출발해 충청도를 지나고 전라도를 가로질러서 제주도까지 이어지는 길이었다. 정조 임금이 세상을 떠난 이듬해인 1801년, 강진 땅으로 기약 없는 유배 길에 오른 다산 정약용(1762~1836)의 고달픈 여정도 삼남대로를 따라 이어졌다.
제11경 정선대에서 바라본 백운동원림 전경. 뒤에 월출산 암봉이 우뚝하다.
월출산 자락의 실낙원, 백운동원림
정약용은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학자로 손꼽힌다. 그는 약 200여 명의 천주교도가 목숨을 잃은 신유박해(1801년)에 연루돼 경상도 장기현(지금의 포항시 장기면)으로 유배됐다. 다산의 셋째 형인 정약종과 매형인 이승훈은 참형을 당했지만, 다산과 둘째 형 약전은 겨우 목숨을 건져 유배형에 처해졌다. 다산이 18년 동안이나 귀양살이를 한 강진 땅에는 그의 흔적과 자취가 곳곳마다 또렷하다.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에 있는 백운동원림도 그중 하나다. 백운동원림은 조선 중기의 처사 이담로(1627~1701)가 처음 조성했는데, 다산은 그로부터 약 150년쯤 지난 1812년 가을에 그곳에서 하룻밤을 묵었다고 한다. 당시 다산의 막내 제자가 이담로의 6대손이었다. 월출산 산행 후에 백운동원림에서 하룻밤을 묵은 다산은 그곳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손수 ‘백운동 12경(景)’을 선정한 뒤에 제자인 초의선사에게 그리도록 한 ‘백운동도’와 자신의 시 13수를 한데 묶어 ‘백운첩’을 편찬했다. 오랫동안 방치됐던 백운동원림이 근래 들어서 옛 모습대로 복원된 것은 순전히 이 백운첩 덕택이다. 문화재청은 지난해 12월 17일에 백운동원림을 국가지정문화재인 명승으로 지정 예고했다.
늘 푸른 강진다원과 국보급 고찰 무위사
백운동원림의 바로 위쪽에는 약 10만 평 규모의 강진다원이 펼쳐져 있다. 월출산의 기암괴석을 배경으로 사시사철 싱그러운 초록빛을 띠는 차밭이 장관을 이룬다. 백운동원림의 주차장에서 약 1.5km 거리에는 천년 고찰 무위사가 있다. 신라 진평왕 39년(617)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고찰이다. 하지만 이 절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은 조선 세종 12년(1430)에 지어진 극락보전(국보 제13호)이다. 사람 ‘人(인)’자 모양의 맞배지붕을 얹은 이 건물은 구조가 매우 간결하면서도 아름답다.
무위사 극락보전 안에는 또 하나의 국보가 있다. 조선 성종 7년(1476)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아미타여래삼존벽화(국보 제313호)가 그것이다.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왼쪽에 관음보살, 오른쪽에 지장보살이 서 있다. 맨 윗부분에도 총 6인의 나한상이 그려져 있고, 그 위에는 작은 화불이 2구씩 배치돼 있다. 뒤쪽 벽체에 그려진 백의관음도(보물 제1314호)도 눈여겨볼 만하다. 떠가는 듯 일렁이는 파도 위에 연잎을 타고 서 있는 백의관음보살이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돼 있다.
천년 고찰 무위사를 찾는 이들의 마음을 훔치는 것은 연륜 깊은 문화재뿐만이 아니다. 춘삼월 이맘때쯤이면 절 초입에서부터 그윽한 매화 향기가 온몸을 휘감는다. 특히 극락보전 앞마당에 핀 홍매화의 자태와 향취는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다산 정약용이 강진에 유배됐을 당시 머물렀던 사의재
‘죄인’ 정약용을 살린 주막집 모녀 이야기
무위사에서 강진 읍내까지는 자동차로 20분쯤 걸린다. ‘대역죄인’이었던 다산은 한나절을 걸었을 거리다. 다산이 강진 땅에 처음 도착했을 당시 주민들은 큰 죄를 짓고 귀양 온 그를 경계했다. 동문 밖의 주막집 노파와 외동딸만 다산에게 각별한 호의와 인정을 베풀었다. 주막집의 작은방 한 칸을 얻은 다산은 ‘생각, 용모, 언어, 행동을 마땅히 바르게 해야 할 방’이라는 뜻에서 당호를 사의재(四宜齋)라 짓고 꼬박 4년 동안 살았다. 지금도 사의재 주막에서는 다산이 즐겨 먹었다는 아욱국에 막걸리 한잔도 맛볼 수 있고, 뒤편의 한옥체험관에서는 다산을 기리며 하룻밤 묵을 수도 있다.
다산은 사의재에 머무는 동안 백련사의 혜장스님(1772~1811)과 교분을 나누는 한편, 아들 학연을 불러 직접 학문을 가르치기도 했다. 1805년 겨울부터는 강진 읍내 뒷산의 보은산방에 거처하면서 주역을 연구했다. 이듬해 가을부터는 탐진강 하구의 목리마을에 있는 제자 이학래의 집에서 기거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도암면 귤동마을에 위치한 해남 윤씨 가문의 산정(山亭)인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겼다. 귀양 온 지 8년째 되던 1808년 봄의 일이었다. 외가인 해남 윤씨 가문의 서적은 다산이 유배지에서 수많은 저술을 남기고 학문을 완성한 밑거름이 되었다.
  • 다산 정약용이 약 10년 동안 머물렀던 다산초당
  • 석문산 석문정 일대의 기암괴석과 진달래
만덕산이 품은 백련사와 동백나무숲
다산이 10여 년 동안 머물렀던 다산초당은 원래 허름한 초가였다. 1957년에 번듯한 기와집으로 복원되었고, 1974년에는 다산의 처소였던 동암과 제자들이 거처했던 서암도 복원되었다. 다산 생전에는 없었던 천일각도 세워졌다. 건물들은 더 커지거나 새로 생겼지만, 다산 생전의 모습 그대로 남은 것도 여럿 있다. 초당 옆의 아담한 연못과 그 한가운데의 석가산, 초당 뒤편의 돌 틈에서 맑은 샘물이 솟는 약천, 솔방울을 태워 찻물을 끓이던 바위인 다조, 해배(解配)를 앞두고 다산이 집 뒤편의 암벽에 손수 쓰고 새겼다는 ‘丁石(정석)’이라는 두 글자 등이 그것이다. 다산이 흑산도에 유배된 형님을 그리며 강진만 바다를 굽어보던 자리에는 천일각이 세워졌다. 지금도 이 누각에 올라서면 강진만의 평화롭고 아늑한 풍광과 그 건너편에 우뚝한 천관산이 한눈에 들어올 만큼 조망이 상쾌하다. 다산초당에서 조붓한 숲길을 20~30분만 걸으면 백련사에 당도한다. 그 옛날 초당의 다산과 백련사의 혜장은 무시로 이 숲길을 오가며 우정을 나눴다.
백련사는 강진만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만덕산(408.6m) 중턱에 자리 잡았다. 통일신라 때인 839년에 창건됐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조선 영조 때 건물 대부분이 불타는 바람에 고찰다운 풍모를 엿보기는 어렵다. 그래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절집 주변을 에워싼 동백나무숲(천연기념물 제151호)을 보기 위해서다. 총 5.2㏊(1만 5,700여 평) 면적에 7,000여 그루의 동백나무 고목이 빼곡하게 들어찬 이 숲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백나무숲 중 하나로 손꼽힌다. 꽃샘바람 불어오는 3월 중하순쯤에 이 숲을 찾으면 정염을 가득 품은 동백꽃의 화려한 개화와 장렬한 낙화를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다.
강진만 유일의 유인도 가우도
백련사는 강진만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다. 호수처럼 고요한 강진만 바다, 그 바다 위에 홀로 떠 있는 가우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인다. 주민 30여 명이 모여 사는 가우도는 이제 섬이 아니다. 두 개의 출렁다리로 육지와 연결되었다. 길이 2.7km의 ‘함께해(海)길’을 따라서 섬 전체를 한 바퀴 돈 다음에는 섬 정상의 청자전망대에 올라야 한다.
사방으로 시야가 훤한 전망대이자 길이 973m의 짚트랙 출발지이다. 해발 95m의 출발선에서 한 가닥의 줄에 몸을 맡기면 불과 1분 남짓한 시간에 가우도를 빠져나가게 된다. 한 마리의 새처럼 바다 위의 허공을 가르는 기분이 짜릿하기 그지없다. 그 밖에 만덕산 줄기와 이어진 석문산(283m)의 ‘사랑+구름다리’와 석문정도 들러볼 만하다. 특히 3월에는 석문정 일대에 산재한 기암괴석 사이로 연분홍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핀 풍경이 환상처럼 아름답다. 산세는 작고 아담하지만, 자연 풍광은 마치 금강산의 일부를 잘라서 옮겨놓은 듯 수려하다. 꽃구경을 겸해서 가볍게 산행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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