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수 없다면 함께할 수 없다

<그리스 로마 신화>와 신뢰

글. 안상헌(Meaning독서경영연구소장)
사랑과 신뢰, 프시케 신화
어느 왕국에 아름다운 세 명의 딸이 있었다. 그중에서 셋째 딸이 가장 예뻤는데 이름이 프시케(Psyche)였다. 그녀가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사람들이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보다 눈부시다고 칭찬할 정도였다. 어느 날 프시케의 부모는 우연히 아폴론 신전에 들렀다가 프시케가 괴물과 결혼할 운명이며, 그 남편이 산꼭대기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신탁(神託)을 받는다. 부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프시케는 신탁을 믿고 길을 떠나 산꼭대기에 있는 거대한 성을 찾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남편을 만난다. 그러나 프시케는 좀처럼 남편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남편이 밤이 되면 찾아오고 날이 밝기 전에 떠났기 때문이다. 가끔 그에게 얼굴을 보여달라고 하면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으니 그 사랑을 의심하지 말고 믿어달라”는 말만 남길 뿐이었다. 하루는 시집간 동생을 찾아온 언니들이 프시케가 행복하게 사는 것에 질투심을 느끼고 신랑이 괴물일지도 모르니 꼭 확인을 해보라고 말한다.
이 말을 들은 프시케는 남편이 잠들어 있는 틈에 등불을 들고 그의 얼굴을 살피는데, 남편이 부드러운 날개를 가진 에로스(Eros) 신이라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그 모습에 반한 프시케가 더 자세히 보려고 등불을 기울이다가 실수로 기름 한 방울을 에로스의 어깨에 떨어뜨린다. 놀라 일어난 남편은 이런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의심이 있는 곳에 사랑은 깃들 수 없다.”
인간관계의 기초, 믿음
프시케 신화는 우리에게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려준다. 사람은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야 하는 사회적 존재다. 관계 속에서 자신을 확인하고 관계를 통해 미래를 계획하고 성취한다. 그리고 이런 관계의 기초이자, 함께 일할 수 있는 조건이 바로 믿음이다. 길을 가다가 모르는 사람과 마주쳤는데 그가 대뜸 “나와 함께 일을 합시다.
그러면 큰돈을 벌게 해주겠소”라고 했다면 그와 함께 일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하고 어떻게 일을 하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오랫동안 만나온 사람이고 어떻게 일하는지 알고 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함께 일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무척 중요하다. 그와 일을 할 때 잘할 것이라는 예측 가능성과 믿음이 있어야 일에 전력을 기울일 수 있다. 맡겨진 일을 잘할지 못할지 알 수 없는 사람과 일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잘해낼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만 함께할 수 있다. 이것은 모든 관계의 기초이자 조건이다. 그런 점에서 이런 질문은 자신을 돌아보는 데 도움이 된다.
‘나는 예측 가능한 사람인가?’
‘나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인가?’
아프로디테의 시험
신화 속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에로스가 떠나고 혼자 남겨진 프시케는 자신의 실수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는 슬픔에 괴로워한다. 그러다 남편을 찾아 나서기로 결심한다. 가장 빠른 길은 에로스의 어머니인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찾아가 용서를 빌고 아들을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사정하는 것이었다. 프시케를 본 아프로디테는 화부터 낸다. 하지만 프시케가 쉽게 물러나지 않자 아프로디테는 자격을 시험해보겠다며 프시케에게 과업을 내린다.
아프로디테가 처음 시킨 일은 자기 신전의 창고에서 밀과 보리 등이 섞여 있는 엄청난 양의 곡식을 따로 가려내는 일이었다. 열심히 노력했지만 끝나지 않는 일에 지친 프시케는 지치고 절망한다. 이때 수많은 개미가 나타나서 곡식을 따로 나누는 일을 도와준다. 덕분에 프시케는 해가 지기 전에 무사히 일을 끝마친다. 에로스가 개미들을 보내 도와준 덕이었다. 두 번째 일은 무서운 양들로부터 황금 양털을 모아오는 일이었다.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사나운 양들 때문에 어려움을 겪던 프시케는 자신을 불쌍히 여기는 물의 신의 도움으로 양들이 잠든 틈을 타 양털을 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곡식을 가려내고 양털을 모았는데도 아프로디테는 프시케를 인정하지 않는다.
모험을 위한 세 가지 조건
신화의 영웅들은 다양한 모험을 한다. 헤라클레스는 열두 가지나 되는 모험으로 자신을 증명하고, 페르세우스는 쳐다만 봐도 돌로 변하는 메두사의 머리를 자르고, 테세우스는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미궁으로 들어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인다. 그런데 영웅들은 왜 이렇게 험난한 모험을 하는 것일까? 모험은 인간이 새로운 조건이나 환경에 들어가는 것과 관련이 있다. 사람은 익숙하지 않은 곳을 꺼린다. 낯선 곳은 위험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용기다. 용기는 새로운 만남, 새로운 과업을 위한 첫 번째 조건이다.
용기로 모험을 시작했다고 해도 모험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세상에 혼자할 수 있는 일은 없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가치 있는 일로 인정받기 어렵다. 가치 있는 일일수록 도움이 필수적이며 그러자면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 모험을 완성하는 마지막 조건은 지혜다. 열심히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현명하게 해야 한다. 무서운 양들을 힘으로 이길 수 없다면 잠들기를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일에는 순서가 있고 타이밍이 맞아야 한다. 이것을 살피는 것이 지혜다.
직장인들의 일상도 일종의 모험이다. 새로운 일을 하고 낯선 사람을 만나야 한다. 이때 용기가 필요하고 다른 사람의 도움이 큰 힘이 된다. 그리고 일을 보는 눈인 지혜가 과업을 완성하게 만든다. 모든 것을 혼자 해내려는 사람은 영웅이 아니라 오만에 빠진 사람이다. 큰일일수록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 그러자면 타인을 애정으로 대하는 마음, 신뢰를 줄 수 있는 태도를 갖추어야 한다. 사람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위해서만 움직이기 때문이다.
아프로디테의 마지막 과업
아프로디테가 프시케에게 내린 마지막 과업은 상자 하나를 가지고 저승 세계로 가서 그곳의 왕비인 페르세포네에게 전하고 그녀의 아름다움의 비밀을 나누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에로스를 만나야겠다는 결심으로 각오를 다진 프시케는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스틱스강을 건너 저승 세계에 도달한다. 그리고 절대로 상자 안을 봐서는 안 된다는 조건과 함께 페르세포네로부터 아름다움을 상자에 담아서 돌아온다.
그러나 상자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호기심을 참지 못한 프시케는 결국 상자를 열고 깊은 수면에 빠져버린다. 상자 속에 있는 아름다움의 비밀은 다름 아닌 수면이었다.
미인은 잠꾸러기라는 말처럼 신화 속에서도 수면은 건강한 몸과 마음의 원천인 것이다. 깨어날 수 없는 수면에 빠진 프시케를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에로스였다. 깊은 잠에 빠진 프시케에게 날아간 에로스는 수면을 상자에 담고 프시케를 깨워 아프로디테에게 가서 임무를 완수하라고 알려준다. 그리고 자신은 제우스에게 달려가 사정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요청한다. 제우스는 아프로디테를 불러 두 사람의 사랑을 인정해줄 것을 명하고 프시케를 신으로 만들어 에로스와 살게 해준다.
변화와 성장은 ‘신뢰’에서 비롯된다
편의점을 운영하는 점주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아르바이트생 관리라고 한다. 갑자기 ‘내일부터 못 나온다’는 말을 쉽게 하기 때문이다. 급하게 사람을 구하기도 어렵고 구한다 해도 교육을 받아야 일을 할 수 있으니 난감할 수밖에 없다. 아르바이트생을 채용할 때 그만두기 일주일 전에 반드시 말을 해줘야 한다고 약속을 받아도 잘 지켜지지 않는다고 한다. 언제 그만둘지 알 수 없기에 중요한 일을 시키기도 어렵고 인간적인 정을 나누기도 힘들다. 하기 싫으면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는 쉬운 생각으로 일한다면 믿음을 얻기 어려울 것이 분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신뢰를 형성하는 법을 알아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먼저 필요한 것이 꾸준함이다. 꾸준함은 반복적으로 하는 것이다. 반복은 안정감을 준다. 꾸준함이 주는 안정감은 상대에게 ‘예측 가능한 사람’이라는 믿음을 준다. 이 예측 가능성이 곧 신뢰다. 항상 같은 행동과 그에 따른 결과를 가져올 수는 없지만, 그것을 유지하려는 꾸준한 행동은 타인에게 신뢰를 준다.
그러나 세상은 예측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때로 상대방의 믿음을 저버려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이 상대방에게 상황을 정확하게 알리는 것이다. 상황을 이해할 때 변화를 수용할 여유가 생긴다. 나의 판단과 상대방의 생각이 다를 수 있으니, 가능한 한 자세하게 상대방에게 상황을 알리는 것이 이해를 구하는 방법이다. 평소 믿음이 형성된 관계라면 상황의 변화를 이해시키기가 수월할 것이다.
믿음이 변화를 받아들이게 하고 솔직한 대화가 새로운 믿음을 형성한다.
그런 점에서 신뢰는 톱니바퀴와 유사하다. 한번 신뢰 관계가 형성되면 이가 잘 맞는 톱니바퀴처럼 오래 유지된다. 설사 예측하지 못한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기존의 신뢰를 바탕으로 조절하면서 더욱 단단한 관계로 발전한다. 상황의 변화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믿음도 확인한다. 그런 점에서 상황의 변화는 신뢰와 믿음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에로스가 프시케를 도왔던 이유는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힘겨운 과업을 수행하려는 용기와 꾸준함을 보아서다.
프시케의 과업은 완성되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말도 되지 않는 일을 시킨다며 아프로디테를 비난하거나 과업을 포기했을 것이다. 그녀가 힘겨운 과업을 떠안을 수 있었던 것은 ‘믿음이 없는 곳에 사랑은 깃들 수 없다’는 에로스의 말을 기억했기 때문이다.
프시케는 믿음을 잃은 자신을 신뢰하게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조직은 혼자 할 수 없는 일을 하기 위해 모인 곳이다. 함께 일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 대한 믿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약속을 지킬 것이다,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저 사람은 믿을 수 있다’는 신뢰가 있을 때 조직은 제 역할을 해낼 수 있다. 그래서 믿음이 있는 조직문화를 만드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것이 바로 상대가 예측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그리스 로마 신화
고대인의 상상 세계가 만들어낸 이야기지만 수천 년이 지난 현대에도 ‘살아 있는 이야기’로 전해지는 고전이다. 철학자와 역사가에게 영향을 주었고, 미술과 문학의 중요한 주제가 되었으며, 과학기술 분야의 용어가 될 정도로 서양 문화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신화집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판본은 토머스 불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로,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신화를 체계적이고 간결하게 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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